brunch

매거진 사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Feb 04. 2018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향하여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서 영화 리뷰를 시작하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에겐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한 번만 보게 되는 영화와 한 번만 볼 수 없는 영화. 지금 추천하려는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이다. 또, 그런 영화도 있다. 꼽씹을수록 새로운 것들이 신기하게도 계속 튀어나오는 영화.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영화의 여운과 두 번째 봤을 때 느껴진 영화의 여운이 전혀 다른 영화. 오늘 내가 마음을 먹고 추천하는 이 영화가 그러하다. 처음 봤을 때는 A라는 인물의 상황이 더 가슴 절절하게 와 닿았었는데, 두 번째 봤을 때는 그 상대편에 있는 B라는 인물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가 되는 그런 영화.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기준에선) 영화가 끝난 뒤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영화 안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더 명확해지고 확고해지는 영화. 그리고 삶의 순간들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말했던 대사 혹은 인물들이 겪었던 상황이나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공감이 될 때 나는 그 영화에 매료돼버린다. 물론 내가 현실적이고 일상성이 짙은 영화를 좋아해서, 그것이 취향이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첫 영화는 무조건, 레볼루셔너리 로드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 애정하고 강력히 추천한다며 구구절절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이 모두 '나'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나오는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모습은 영화 안에서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나에겐 두 인물은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 같아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덕이 죽 끓듯이 바뀌는 나의 감정 변화에 따라 하루는 에이프릴이 되어 나의 행복을 찾아, 나의 꿈을 찾아 달려보자 힘차게 말하면서도, 또 하루는 프랭크가 되어 꿈을 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애 같다, 철없다 느껴지며 현실에 수긍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나에겐 인생영화는 없었다. 좋아하는 영화는 무척이나 많지만 정말 '인생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딱 하나의 영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알게 된 후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 인생의 주제와도 같다 말할 수 있는 나의 '인생영화'가 생겼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첫눈에 반한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뉴욕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두 사람. 모두가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는 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그들의 사랑과 가정도 평안해 보이지만, 잔잔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을 원하는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의 이민을 꿈꾼다. 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것에 들뜨고 행복하기만 한 두 사람.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려는 찰나 프랭크는 승진 권유를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파리로 가고자 하는 에이프릴, 그리고 현실에서 좀 더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하는 프랭크.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두 사람.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미리 말해두지만 이 영화는 결코 달콤한 사랑이야기도, 낭만이 가득한 연애 이야기도 아니다. 되려 보고 나면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에 가깝다. 누군가는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그래서 더욱 비극적이다 말할 수 있는 이 영화의 뒷맛은 참 쓰지만 그 쓴 맛이 내 인생에 참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당신이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살아갈 것인가 혹은 파리로 떠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두 갈레의 길 중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끝은 어떠한 모습인지 꽤나 묵직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에이프릴 이야기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글을 굉장히 좋아하는 팬인데 그의 영화 평을 구경하던 중 영화 <더 리더>의 코멘트를 통해서 처음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좋은 연기. 그래도 윈슬렛은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오스카를 받았어야 했다.) 궁금증이 생겨 찾아본 이 영화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때마침 아니, 때때로 흔들리는 나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특히나 영화 속 에이프릴의 모습이 나의 모습 같았다. 나는 한 때 '꿈이 없다면 인생을 살아 무엇하나'라는 다소 냉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 '꿈이 없으면 죽음을 달라'라는 지금 생각하면 다소 우스운 생각까지도.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 마음속에 확 들어온 인물은 에이프릴이었다. 잔잔하지만 너무도 평이한 일상 속에서 먼저 꿈을 꾼 이는 그녀였고, 그 꿈을 행동으로 옮긴 것도 역시 그녀였다. 끝내 그 꿈이 이루지지 못했을 때, 그 꿈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해 저지른 그녀의 선택 역시 그녀가 품고 있는 꿈에 대한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비록 극단적인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에이프릴의 확고한 마음이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지금 꿈을 꾸는 것이, 그 꿈을 버겁더라도 가슴에 계속 품고 있는 것이 당신의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라고. 그래서 나는 마지막 에이프릴의 극단적인 선택까지 납득이 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해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것을, 그 꿈을 한순간에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애초에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꿈'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온 이상 그것을 외면하는 일은 꿈을 꾸는 일보다 더욱 가슴 벅찬 일이니까 말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프랭크 이야기

 이 영화가 참으로 묘하다고 느껴진 이유는 내가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 때문이다. 처음 내가 봤을 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은 아마 나의 심리적인 변화에 따라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꿈'을 포기하려는 준비를, 예행연습을 하고 있을 당시였다. 꿈같은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달콤하지도, 그리 행복을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그때 나는 이 영화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이젠 프랭크의 마음이, 눈빛이 내 마음에 꽂혔다. 그가 처음 꿈을 꿨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의 들뜬 모습이,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말에, 예상치 못한 좋은 제안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끝내 꿈을 포기하기로, 다시 현실에 안착하기로 마음먹은 다음에도 여전히 씁쓸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그때의 그 모습까지 나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듯 보였다. 내가 처음 꿈을 꾸고, 마음이 수도 없이 흔들리고, 꿈을 포기하는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나의 상태와 너무도 같아 보였다. 사실 나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프랭크의 행동을,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들떴으면서, 그렇게 행복해했으면서, 진정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이런저런 걱정에, 유혹에 흔들리고 있는 프랭크의 모습이 한편으론 답답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참으로 우습다. 나의 마음이, 생각이 달라지니 프랭크의 행동과 마음이 이렇게 절절하게 이해가 되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도 나 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나같이 흔들리며 선택을 해나가는 이야기이니까.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영화는 내용적인 면을 제외하고도 한 번쯤 찾아볼만한 이유가 가득하지만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연기'이다. 이 영화의 주연부터 조연까지 몰입도를 더해주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은 이 영화에서 아주 폭발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초반과 후반에 나오는 부부싸움의 장면에서 두 배우의 연기는 가히 압권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왜 영화 <더 리더>의 코멘트에서 굳이 레볼루셔너리 로드 속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를 이야기했는지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굳이 대사를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기운으로 에이프릴의 심리를 뛰어나게 표현한다. 그 외에도 이웃 캠벨 부부로 나오는 캐서린 한, 데이빗 하버의 연기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제3자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처음 휠러 부부(에이프릴과 프랭크)가 파리로 아예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밀러(캐서린 한)의 모습을 보면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중요한 이야기의 주제를 맡고 있는 듯한 기빙스의 가족들의 연기들도 영화의 의미와 재미를 더해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향하여

 이 영화는 모두에게 공감을 살 순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결코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지금 꿈을 꾸는 그대에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되어주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이다. 분명 이 영화는 새드엔딩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위로해주는 구석이 있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저 그렇게 흔들리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또 그렇게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듯해서. 그리고 영화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아주 가까이에,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꿈을 꾸는 사람, 꿈을 꾸며 흔들리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 꿈은 그저 꿈으로만 봐야 한다는 사람까지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영화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동시에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져준다. 끝으로, 영화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던 생각 하나가 있다. 우리 인생 속에서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어떠한 것이, 어떠한 모습이 혁명의 길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그 모습은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사월 인스타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