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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08. 2017

난요,
이상하게 그런 모습이 참 좋아요

수없이 떠오르는 그 장면에 대하여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갖게 됐을 때 이상하리만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굉장히 반복적이고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그 장면은 밤마다 잠을 깨우기도 하고, 반대로 재워주기도 한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그런 장면이다.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시금 꺼내보았다.




 아담한 선술집의 모습 보인다. 선술집 안의 모든 자리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꽤나 시끌벅적할 법도 한데, 소곤소곤 각자의 대화를 나누기 바빠 보인다. 낮엔 더운 날씨이지만 밤은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이지만 이내 잔잔한 침묵이 흐른다. 여자가 먼저 고개를 돌려 창밖의 풍경을 구경한다. 여자를 쳐다보던 남자 역시 그녀를 따라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한동안 멍하니 돌아다니는 이 없는 어두운 공원을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 얼마 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술 대신 물을 마신다. 그러다 여자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장면에 대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있잖아요. 나는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을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좀 길지만 들어주세요. 한 여자가 있어요. 내 나이 또래쯤으로 보이는 여자예요. 아니면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리려나? 그 여자는 오늘 무척 힘든 하루를 보냈어요. 어떤 게 힘들었냐고 물으면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여자는 오늘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거죠. 집으로 가기 위해 의자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어요. 늦은 시간이라 사람 없이 한산해요. 멍한 얼굴로 앉아서 오늘 하루를 복기하던 여자가 휴대폰을 들어 연락할 사람을 찾아요. 근데 마땅히 연락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계속 주소록 목록을 내리며 사람을 찾다가 한 친구를 찾아요. 그리곤 주저 없이 바로 전화를 걸어요. 뜨르릉- 뜨르릉- 신호음이 들리는데, 한참을 듣고 있는데 그 친구는 받지 않아요. 전화를 끊고 다시 멍한 얼굴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때 지하철이 와요.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서 있는데 여자는 문득 생각해요. 그냥 그 친구를 무작정 찾아가자고. 그 친구가 집에 있던 없던 그냥 찾아가자고. 그렇게 결심을 하고 지하철을 타요. “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이는 여자. 그리곤 고개를 돌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여자는 자신이 결심한 대로 그 친구 집으로 가요. 지하철을 내리고, 카드를 찍고, 계단을 오르고, 어두운 밤을 질러서 친구 집 앞에 서 있어요. 검지 손가락을 들어 벨을 누르죠. 아주 길게. 안에선 아무 반응이 없어요. 그럼 다시 검지 손가락으로 벨을 꾹 눌러요. 그리고 기다리죠. 기다리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신발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때 문이 열려요. 살짝 짜증 난 얼굴로 문을 연 친구는 여자를 발견하고 놀라요. 여자는 내내 어두웠던 표정을 지우고 입꼬리를 양쪽으로 쫙 찢으면서 웃어요. 그러면서 말하죠. ‘나 왔다!’ 친구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해요. ‘너 왔냐’ 여자는 괜히 눈을 찡긋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죠. 여자는 친구 집에 오기 전에 지었던 표정들을 애써 지우며 전화 안 받길래 혹시 고독사 한 거 아닌가 걱정돼서 왔다며 너스레를 떨죠. 소파에 앉으며 여자는 갑자기 배고프다는 말을 뱉어요. 친구는 지금이 몇 신데 밥을 안 먹었냐고 물어요.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생각해요."


 마치 설명하고 있는 여자의 표정을 따라 하는 듯 한참 고심하는 표정을 짓던 여자는 이내 다시 말을 잇는다.


 "‘아... 내가 오늘 뭘 먹었던가..’ 생각해보니 커피밖에 없는 거죠. 친구는 마치 여자의 엄마인 것처럼 혀를 쯧쯧 차며 잔소리 반, 안쓰러운 반을 담은 말을 내뱉으며 부엌으로 가 양은냄비에 물을 넣어요. 그리고 라면봉지를 서랍에서 꺼내요. 여자는 친구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지하철을 기다릴 때 지었던 표정을 지으며 친구의 뒷모습을 쳐다봐요. 친구는 곧 라면을 끓여 양은냄비 채로 먹다 남은 김치와 함께 식탁에 올려두죠. 여자는 라면 냄새를 맡으며 자신이 허기졌구나라는 걸 느끼며 천천히 라면을 먹기 시작해요.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라면을 먹죠. 한 번, 두 번, 세 번... 빠르게 젓가락질을 하던 여자의 손이 급격히 느려져요. 고개를 숙은 채 먹고 있던 여자가 먹는 걸 멈추자 친구는 여자를 쳐다봐요. 여자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보이죠. 여자는 냄비에 얼굴을 박은 채 울고 있어요. 입 안 가득 면발을 밀어 넣은 채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어요. 생각보다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 라면이 너무 따뜻해서, 누군가가 자신을 말없이 바라봐줘서..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요. 친구는 여자가 우는 것을 눈치채고 왜 그러는지 물어요.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들고선 이제 본격적으로 울어보겠다는 듯 소리 내서 엉엉 울어요. 갓난아이들이 우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몸을 파르르 떨면서, 입 안 가득 찬 면발을 다 보여주면서 그렇게 한참을 울어요. 울고, 닦고, 말하고, 다시 흐느끼고, 다독여주고, 진정이 되었다가, 다시 울었다가, 불어 터진 라면을 먹었다가,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가...


 여자가 담담하게 창밖으로 보면서 말하는 동안 여자의 옆모습을 쳐다보던 남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텅 비어진 어둠을 바라본다.  


 "다음 날, 똑같은 옷을 입고 일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여요. 모니터를 응시하며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이죠.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퉁퉁 부은 얼굴이죠. 얼굴이 부운 이유가 두 시간 넘게 울었기 때문인지, 늦은 밤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여자는 어젯밤 친구의 위로를 받고 조금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이처럼 울었지만 그 울어버린 만큼 여자는 힘을 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난요, 이상하게 그런 모습이 참 좋아요. 퉁퉁 부은 얼굴을 의식한 듯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 여자의 옆모습이 참 좋아요."


 말을 마친 여자는 고개를 돌려 술잔을 홀짝인다. 남자 역시 여자를 따라 술잔을 들어 살짝 홀짝인다. 그러다 여자를 쳐다보며 남자가 묻는다.


 "그 모습이 왜 좋아?"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아까 보였던 모습처럼 고개를 살짝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단어를 고른다.


"음.. 예뻐요. 좀 예쁜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 나 같기도 하고, 오빠 같기도 하고,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모습 일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좋고, 예쁘고, 따뜻하고... 슬퍼요."




 이것이 내가 수없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왜 이 장면이 그토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단지 내가 혼란스러움을 느낄 때 그래서 흔들릴 때,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그 고민이 가슴에 꽂혔을 때.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 밤, 위 글의 여자가 나를 찾아온다.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우울한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기도 있지만, 대부분 여자는 퉁퉁 부운 눈으로 나의 어깨를 다독이듯 위로해준다.


끝내 삶이 그러하지 않냐고.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날이 있고.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날도 있고.
그런 날들이 수도 없이 많고, 수도 없이 많이 생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퉁퉁 부운 눈으로 너를 위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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