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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09. 2017

그냥 그게 나 같아서,
그 책이 너무나도 나 같아서

나의 흔적을 찾아서

 나에겐 몇 가지 취미가 있다. 첫 번째는 영화를 본다는 것, 두 번째로는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 외에도 이것저것 취미로 삼고 있는 것은 많다. 하지만 주요하게 하고 있는 위 세 가지의 취미들을 보자면 하나 같이 무언가 '흔적'을 남긴다. 영화 보는 것은 이제 취미를 뛰어넘어 현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취미는 여기 '브런치'에서 풀고 있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고등학교 때 들었던 동아리 활동부터 시작하여 나름 역사가 꽤나 깊다. 이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내가 이곳에 살고 있고, 어떠한 것을 하고 있다는 나름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중 요즘 내가 가장 빠져 있는 취미는 '글쓰기'이다. 언제부터 글을 썼는가 생각해보면 명확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그 계기는 기억에 남는다.  

 

 20대가 된 순간부터 나는 아주 큰 사춘기를 겪었다. 누군가와 교류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한참 반항심이 왕왕했다. 그때 나를 찍은 사진을 지금 보고 있자면 눈매가 꽤나 매섭다. 그렇게 나는 누구이고, 사는 것은 무엇이고, 그냥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으로 뒤덮여 있을 때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신세한탄을 하기보단 종이 위에 내 마음을 내비치는 것이 편했다. 그때부터, 매일 쓰진 않았지만 꾸준히 써오던 글쓰는 버릇이 요즘 나에게 취미이자 하나의 탈출구를 만들어준 셈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막연하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종이 위에서 펜을 들고 있자면, 그 새하얀 종이를 더럽힐까 두려워 쉽사리 글을 쓰지 못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그냥 쓴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지 못하더라도 그. 냥. 쓴. 다. 그렇게 그냥 쓰는 행위가 요즘 들어선 나 스스로를 위로해주는 수단이 되었기에. 

 

 예전에 한참 '글 쓰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지금도 유효하지만) 일단 책을 한 권 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일단 꾸준히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는 분량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첫 번째였고, 그 책을 읽은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그래서 한동안 읽지도 않을 책들을 모아두는 사치를 부리기도 했다. 책을 낸다는 것에 로망이 있던 그때, 내가 만약 책을 낼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가정을 바탕으로 떠오른 아주 짧은 생각.




 "나는 그냥 이 세상에 내가 쓴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아.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냥 그런 거 있잖아. 내가 펼쳐낸 세계가 어느 한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 "


 여자는 공상에 빠진 듯 턱을 들어 하늘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자주 가는 그 서점에 말이야. 엄청난 책들이 잔뜩 들어가 있잖아. 내가 알고 있는 책, 어렴풋이 들었던 책, 그리고 전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책. 만약 내 책이 나온다면, 아마 세번 째 말한 책이 되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책. 하지만 그 대부분 중에 유별한 몇 명만이 아는 책. 나는 그런 책이라도 좋을 것 같아. 왠지 그런 거 있잖아, 우리끼리 아는 책."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자는 갸웃거리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그냥 나는 그 정도만이라도 좋을 것 같아. 서점에 있는 그 무수한 책들 가운데 어딘가 구석에 존재하는 책. 아무도 건들지 않아서 먼지가 쌓여 있는 그 책. 혹시라도 누군가 내 책을 사고 싶어도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야만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책, 아니 어쩌면 일하는 직원까지 '그런 책이 있었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찾게 되는 그런 책 말이야.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책."


 친구는 이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그게 뭐야. 그런 책이 무슨 의미가 있어. 아무도 모르고 읽어주지도 않는데, 그럼 책의 의미가 없는 거잖아."


 여자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말을 고르고 있는 듯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그냥 그게 나 같아서. 그 책이 너무나도 나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유명해진 책, 영화화되면서 사람들이 찾는 책, 아니면 유명한 작가가 낸 신간 책. 그 수많은 책을 사이로, 그래도 어딘가 흔적을 내려고 열심히 붙어 있는, 그 자리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 그 책의 느낌이 나 같아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기 나름 열심히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모습이 나 같아서.. 그래서 애착이 간다고 해야 하나?"

 

 말을 끝낸 뒤 괜스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친구를 쳐다보는 여자. 친구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여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여자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굳이 살아가면서 내가 살고 있다고, 존재하고 있다고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그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런 생각. 그런데 요즘엔, 그래도 어쨌든 간에 '흔적'이라는 걸 남겨보자고 생각해. 설사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반대로 생각하면 굳이 의미를 담아서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잖아. '흔적'이라는 게 사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건데."




 그때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러하다.
그냥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이상한 것은 없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괴상한 것이라고.
오늘도 나 스스로를 글쓰기로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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