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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Sep 28. 2017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그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얼마 전 공원에 갔었다. 그저 조용한 공간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고 싶었다.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노래를 틀어놓은 채 한동안 하늘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제법 선선해진 날씨를 느끼며 기분 좋은 마음으로 공원을 찾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시끄럽진 않았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와 함께 나와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기 바빠 보였다. 가을바람을 느끼며 돗자리 위에 앉았다. 사람을 구경하고, 하늘을 구경하고, 바람을 구경하고, 나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냄새, 바람에 흔들리며 기분 좋은 냄새를 뿜고 있는 나무 밑에서 한동안 누워있었다. 그냥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떠한 것을 한 것보다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가 그토록 바라던 하늘이었다. 여자는 한동안 생각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늘만 보고 싶다고. 누군가의 말을 듣고, 표정을 읽고, 행동하는 것을 판단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냥 그저 나인 상태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와 동네 공원을 찾았고 간식을 나눠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서 돗자리 위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여자가 말을 꺼냈다.


 "내가 생각보다 사람을 참 좋아하나 봐."


 여자와 함께 하늘을 보고 있던 남자가 여자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내가 사람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사람한테 정도 안주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더라고.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기대하고 있더라."


 고개를 돌려 남자와 눈을 마주치는 여자. 괜스레 코를 찡끗거리며 웃는다.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래서 안 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마음을 많이 줬더라고. 그래서 지금 힘들지 않나 싶어. 나름 벽을 치면서 내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주지 않으려고, 의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 전혀."


 고개를 돌려 다시 하늘 쳐다보는 여자.


 "그냥 그런 척하는 거였어. 괜찮은 척, 안 힘든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당당한 척, 담담한 척."


  말하고 있는 여자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남자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말을 고르다 이내 여자를 따라 고개를 돌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남자와 여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까르르 웃는 아이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던 남자의 발소리가 잦아지고 산책을 나온 강아지의 발소리로 사라지고. 선선하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는 동안 두 사람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정적을 깬 것은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였다. 탁- 소리를 내며 여자 옆에 떨어졌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떨어진 도토리를 집어 만지작거렸다.


 "나는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여자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보다가 아예 몸을 옆으로 돌려 남자의 옆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나도 무서워하더라. 싫어하더라고. 내 편이 있어야 편안해하더라고. 나 너무 애 같지?"


 남자 역시 여자를 따라 몸을 돌려 여자를 마주 보며 대답한다.


 "아니, 전혀. 나도 그런 걸."


 남자의 말에 살짝 미소 짓는 여자. 들고 있던 도토리를 남자의 손에 건넨다.


 "요 며칠을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바보 같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불쌍해. 혼자서 엄청 끙끙거리고 있었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니까. 지지 않으려고, 무너지는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고, 상처받았다는 거 티 내지 않으려고. 혼자서 끙끙."


 별안간 자신의 손을 들어 주먹을 쥐어 보이는 여자.


 "이렇게 주먹을 쥐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아무도 내 손을 펴지 못하도록 꽉- 힘을 주고 있었어.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들키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꽉-. 근데 있잖아, 이렇게 힘을 주면 줄수록 내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나는지도 모르고 있었어. 그냥 무식하게, 바보같이 손을 이렇게 꽉 쥐고 마음을 숨기면 되는 줄 알았나 봐. 그래서 바보같이 계속 이렇게 힘을 주면서 안 보여주겠다고 숨기고 있었는데 그 일이 다 끝나고 나서 혼자가 되었을 때 천천히 손을 펴봤는데 손바닥에 멍이 들 정도로 내 손톱자국이 남아있더라. 아닌 척, 괜찮은 척 꾸며낼수록 혼자 계속 손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나한테 상처를 내고 있었어. 손톱자국이 멍처럼 파랗게 될 때까지. 근데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야, 끝날 때까지."


 손톱자국이 난 자신의 손바닥을 어루만지는 여자. 그런 여자의 손을 바라보던 남자가 말을 꺼낸다.


 "힘을 좀 빼면 되지 않을까. 그냥 좀 티 나면 어때. 힘들고 아프고 상처받은 거 그냥 좀 보여주면 어때. 다들 그렇게 살잖아. 상처받은 거 말하고, 위로받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살잖아, 다들"


 남자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고르다 입을 뗀다.


 ".. 힘을 빼면 다 괜찮아질까. 그럼 알아줄까. 그럼 더 이상 나한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다들 '그렇구나',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하면서 내 마음을 알아줄까. 근데 그럼 이제 나를 울보로 보지 않을까. 나 원래 마음을 놓아버리면 울어버리잖아, 바보같이. 목소리 막 떨리면서 그냥 애기들이 서러운 거 말하듯이 그렇게 말하잖아. 그게 더 바보 같잖아, 그게 더 멍청해 보이잖아."


 다시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 여자. 괜스레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자의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남자.


 "그냥 강해지고 싶은가 봐.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난 그런 말에 상처받지 않아, 흔들리지 않아, 아프지 않아.' 그렇게 강한 척하고 싶은가 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들 나를 동정할 것 같아서. 내가 그때 울어버렸다면, 힘들다고 하소연했더라면, 그만 하라고 따졌더라면. 나는 그냥 견뎌내지 못한, 동정해야 하는 약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렇게 힘을 주고 있었나 봐. 다들 경쟁하듯이 말하고, 자신의 논리가 정답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 거기에 휩쓸려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다 보여 주게 될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냥 힘 만주고 있었나 봐."


 "그리고 너무 기대했나 봐, 의지하고. 그래서 지금 내가 더 힘든 거 같아. 차라리 마음을 주지 않았더라면, 정들지 않았더라면 이런 미움, 상처, 그리움, 아픔 같은 거 없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앞으로 덜 아프려면 마음을 주고 싶지 않은데, 정말 그러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 입을 삐죽거린다.


 "사실대로 말할까. 나 그럴 자신 없어. 마음 주지 않을 자신 없어. 주지 않으려고 노력은 할 건데. 마음이라는 게, 정이라는 게 내가 조절한다고 조절되는 건 아니잖아. 난 이번에도 안 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돼버렸는 걸. 그래서 걱정이야. 또 아파질까 봐. 그리고 또 애처럼 너한테 이렇게 투정 부리면서 징징거릴까 봐."


 여자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던 남자가 살짝 미소 짓는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는다.


 "좀 징징거리면 어때. 나도 너한테 그러는데. 다들 그러는데. 그렇게 사는 건데. 상처 난 거, 아픈 거, 서운한 거, 미운 거, 슬픈 거. 다 이렇게 말하고 투정 부리고 징징거리면서 그러면서 사는 건데. "


 그때, 도토리가 남자 옆으로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도토리를 집는 남자. 여자가 주었던 도토리와 함께 손에 올려놓더니 만지작거린다.


 "이렇게 풀지 않으면 너무 힘들잖아. 혼자서 끙끙거리면 속상하잖아. 삐죽한 마음 보여주면 어때. 그런 마음, 생각, 상처 다 털어내면 어때. 그냥 나는 네가 그 일에 대해서, 그 상처에 대해서 깊게 가져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아마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이 계속 있겠지. 그래서 힘들 거고 또 상처받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행복해진다는 게 사실 어떤 의미인지 나도 잘 모르지만. 그냥 아프고 다치고 상처받더라도 조금만 아파하고 힘들어하다가 다시 웃으면서 털어버렸으면 좋겠어. 이 도토리처럼 다시 마음이 동글동글해지면 좋겠어."


 말을 끝낸 남자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자의 손에 도토리를 쥐어준다. 도토리를 받은 여자는 손 안에서 도토리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는다. 어느새 하늘의 빛은 짙어졌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떠났지만, 바람은 여전히 여자와 남자를 감싸 앉아주고 있다.






 이 글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자, 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그리고 그대를 응원하는, 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하는 말. '행복'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네가, 내가, 그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 자신도 모르는 새 무릎에 든 멍을 보고 서러워서, 슬퍼서 눈물 흘릴지라도. 조금만 아프길, 조금만 상처받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곧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무릎에 든 멍이 서서히 사라지듯 그렇게 상처가 아물길 바라며, 응원하며 그대들에게 쓰는 짧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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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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