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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pr 11. 2022

요즘 부쩍 엄마가 나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말임씨를 부탁해>_영화가 끝나고 엄마에게 괜스레 전화를 걸었다.

말임씨를 부탁해

요즘 부쩍 엄마가 나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당신 스스로 거뜬히 하던 일을 혹여나 틀리지 않았는지 묻고 또 묻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장 보러 나가기 전 장바구니를 챙겼는지 묻는 자잘한 일부터 취미 생활 중 하나였던 인터넷 쇼핑을 결제하는 방법을 새삼 물어보거나 무언가에 문의를 남겨야 할 때 어떻게 남겨야 좋을지 묻는 일까지. 언제나 앞장서서 엉성한 내 모습을 채워주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린아이 같은 눈망울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엄마의 낯선 모습을 마주할 때면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냉정한 마음 하나가 피어오른다. 여태까지 충분히 스스로 해왔던 일이면서 왜 굳이 나에게 부탁하고 있는 거지. 왜 자꾸 나를 귀찮게 만드는 거지. 변화하는 부모를 따라가기엔 이기적인 자식은 아직 너무 철이 없다.


남 같은 가족, 가족 같은 남
85세 정말임 여사의 선택은?

85세 대구의 꼬장 할매 정말임 여사는 자식 도움 1도 필요 없다며 인생 2막을 내돈내산 나홀로라이프로 즐기려 했건만 이놈의 몸이 말썽!

오랜만에 외아들 종욱의 방문 탓에 팔이 부러지고, 이 사고로 요양보호사 미선을 들이게 된다. 엄마 걱정에 CCTV까지 들이는 아들과는 마음과 다르게 모진 말만 오가고, 요양보호사는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영 맘에 안 든다. 그렇게 마찰과 화해를 반복하던 중 종욱 가족이 불쑥 찾아온 명절날, 묻어두었던 관계의 갈등이 터져버리는데….

가족이 뭐 별거야? 이제 함께 살 테니
 “우리 말임씨를 부탁해!”


영화는 종욱에게 온 전화를 받는 말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오랜만에 말임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종욱은 말임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는다. 먼길을 내려오는 종욱에게 혹여나 짐이 될까 필요한 것이 없다 단호하게 말하는 말임의 말에도 종욱은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말임을 귀찮게 한다. 귀찮게 구는 종욱과의 통화를 끊은 말임은 내내 종욱에게 투명스럽게 굴던 말과는 다르게 오랜만에 오는 종욱의 방문이 무척이나 반갑다. 종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집을 정리하던 말임은 들뜬 마음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해 팔이 부러지게 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종욱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은 말임은 아들이 자신을 위해 집에서 지내려 하는 것도, 자신을 돕기 위해 요양보호사를 고용해 돈을 쓰게 만드는 것도 모두 불편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지내려 노력해보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늙어버린 몸은 말임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종욱의 의견을 따라 요양보호사인 미선과 함께 지내게 된 말임은 아들보다 더 격 없이 대하는 미선이 영 못마땅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자꾸 마음이 간다.


내가 일하는 곳에 엄마와 비슷한 연배를 가지신 어르신 한 분이 계신다. 어르신이 처음 일터에 들어와 일에 적응하기까지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 그리고 처음 경험해보는 일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보였던 어르신께 계속 마음이 쓰였던 건 그 모습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 맺힌 모습 속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들었던 엄마의 말이, 일터에서 엄마의 피곤한 모습을 지켜보았던 순간이, 피곤함과 긴장감에 기절하듯 자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어르신을 만나게 될 때면 조금 더 마음을 쓰곤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종잡을 수 없다고 엄마를 떠올리며 어르신께 마음을 잔뜩 쓰면서도 막상 집에 돌아와 엄마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부터 툭하고 튀어나오고 만다. 이 정도는 엄마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어르신께 쓰던 상냥한 말과 마음은 이미 한참 전에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툴툴거리는 철없는 딸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왜 이리도 가족은 가깝고도 먼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걸까.


몸이 좋지 않은 엄마를 돌보는 미선은 병원과 말임의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병원의 작은 간이침대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며 잠을 청하는 미선은 낮에는 말임을 간호하고 밤에는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간호하기 바쁘다. 말임을 간호하면서 말임에게 필요한 것을 턱턱 지원해주는 종욱을 보며 자신 역시 엄마에게 아낌없이 효도를 하고 싶지만 실상은 밥 한 끼 값의 음료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버럭 화부터 내버리고 만다. 병원비 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생활 형편에 미선은 몰래 말임의 음식에 손을 대고 말임이 선물 받은 옷을 탐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일을 하기 위해 돌봐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하던 말임의 존재는 미선에게 조금씩 더욱 큰 의미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설에 혼자 남겨진 말임을 위해 손수 전을 만들어 함께 나눠먹는가 하면 아픈 말임을 발견하고 간호를 해주며 천천히 또 다른 가족의 모습으로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한다.



종욱은 말임에게 여러 번 말한다. 엄마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그저 다치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가만히 있어달라고. 그럴수록 말임은 종욱에게 보여주려는 듯 더욱 스스로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미선의 도움 없이 밥도 잘 차려먹고 집안 청소로 깔끔히 정리해놓고 혹여 아들에게 짐이 될까 봐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강구하기도 한다. 종욱이 여러 번 반복하는 잔소리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 그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었다. 힘들면 하지 마. 괜히 몸 아프다고 하지 말고 그냥 좀 쉬어. 나중에 내가 할 테니까 그냥 둬. 모두 애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말들은 사실 그저 내가 편하기 위해 했던 핑계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 핑계 같은 말로 엄마의 의지를 모두 꺾어내 버린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난 뒤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졌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언제나 당신을 위해 시작된 일이었음에도 어딘가 자주 어긋나 버리고 마는 마음을 영화를 통해 들켜 버렸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리고 비로소 어떠한 바람 없이 함께 남은 생을 보내게 된 말임과 미선은 천천히 가족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저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지켜봐 주는 관계로. 함께 시간을 나누고 밥을 나누며 추억을 만들어가는 관계로.


* 포스팅은 영화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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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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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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