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다 <황가네 막내딸 편>
오고 가는 길에 혼자서 휴대폰에 질문지를 적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이런 질문이 혹여 상처가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궁금한 것들을 몇 자 적어두었다. 떨리고 설레며 동시에 걱정되는 마음으로 첫 번째 인터뷰 장소는 카페로 정했다. 누군가는 퇴근을 하는 길이기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한 그 시간의 카페는 사람들로 꽤나 북적거렸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말을 미리 말해둔 터라 쉽게 인터뷰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만나서 좀 더 구체적인 인터뷰 취지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나름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질문지를 휴대폰 안에 적어두었던지라, 황당하게도 인터뷰이의 휴대폰를 빌려 녹음을 하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기 앞서 긴장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괜스레 입을 풀었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고 드문 일이다 보니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말들을 한 참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영화를 현실로 착각한 여자'의 첫 번째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Q : 우선, 많이 허술할 텐데 첫 번째 인터뷰를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너무 경직된 인터뷰가 아니라 평소 수다 떨듯이 편안하게 대답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시작되기 앞서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하고 싶어는 이유에 대해서 아주 짧게 설명해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를 현실로 착각한 여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다양한 분들과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요. 타이틀에 대한 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영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영화를 현실로 착각하며 공상, 망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요즘 현실이라는 면에 실제로 살에 맞닿았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방황 아닌 방황을 하고 있는 시기인데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만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 이 시대를, 현실을 살고 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 생각을 함께 공유하며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는, 얘기하다 보니 거창해졌지만 일단 이런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에 저는 개인적으로 본명이 아니라 가명으로 본인의 닉네임을 만들어서 진행해 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혹시 생각나는 닉네임이 있으신가요?
H : 음.. 황가네 막내딸은 어떨까요?
Q :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H : 물론 제가 황씨이기도 하고요. 세상에는 많은 황가가 있고 세상에 많은 막내가 있지만, 저는 사실 지금 저희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계획이 없었는데 태어났고 그렇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저희 집에서 유별난 유년기를 가지고 있고 사랑도 많이 받았기도 하고 그래서 저를 딱 표현하고 지칭하기에 좋지 않을까요?
Q : 닉네임 안에 많은 의미를 담아주셨네요. (웃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지어주신 황가네 막내딸 씨와 인터뷰를 시작을 해볼게요. 가볍게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던가 그런 식으로 편하게.
H : 저는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아요. 일자리를 매우 찾고 있고, 꿈을 꾸고 있고, 꿈을 꾸면서도 꿈에 대한 어떠한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무언가를 굉장히 하고 싶은데 하고 있지 않은 상태?
Q : 그렇군요. 그럼 그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H : 저는 배우가 하고 싶습니다. 저의 꿈은 배우입니다. 배우를 왜 하고 싶은가.. 저는 인간이 제일 어려워요. 제일 무서워하는 종류이기도 하고, 사람이 무서워하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배우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가장 흥미 있고, 무엇보다 저는 모든 일에 흥미가 있지 않아요. 쉽게 질리고 빨리 재미를 잃어버리고. 근데 제가 연수로 치면 벌써 6년째 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흥미를 잃지 않고.
Q : 길게 할 수 있는?
H : 길게 할 수 있고, 싫은 것을 하게 만드는.
Q : 싫어하는 것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덮을 정도로 좋은?
H : 맞아요. 유일한 것 같아요. 뭔가 단 한 번도 그것 대신에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할 용기도 나지 않아요. 아직은.
Q : 그럼 처음 그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사실 제가 이 질문을 역으로 받았을 때 좀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있어서 좀 조심스럽긴 합니다. 누구처럼 큰 사건이 일어나서 팡! 하고 ‘이건 해야 돼!’ 그러한 계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그런 강력한 계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H : 맞아, 맞아요.
Q : 현실에는 그런 강력한 동기보다는 자잘한 동기들이 자신도 모르게 쌓여서 큰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제가 그런 식으로 쌓이고 쌓여서 영화를 좋아하게 되어서. 물론 이건 저의 경우지만요. 황가네 막내딸 씨는 어떠한 경우인지 궁금하네요.
H : 이게 약간 웃긴다고 들릴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연극을 엄청나게 많이 봤어요. 이게 진짜 제 시점인데요. 제 시점에서 저는 이러한 꿈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연극 티켓이 계속 공짜로 생겼었거든요. 저희 엄마 친구 분이 광고 쪽에서 일을 하셨는데 초대권을 계속 주셨었어요. 저희 가족 중에 저 말고는 공연예술에 흥미 있는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그 초대권이 저의 몫이 되었죠. 어렸을 때 제가 유일하게 집에 늦게 들어갈 수 있게 허락받았던 것도 뮤지컬, 연극을 보러 갔을 때였어요.
Q : 공연이 보통 늦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H : 맞아요. 사실 그때는 공연을 보고 ‘배우가 될 거야!’ ‘너무 멋있다.’ ‘소름 끼친다’를 바로 느끼진 못했던 것 같아요. 되려 지금 연기를 배우는 입장이 된 후에 공연을 보게 되면 더 판단이 서는 것 같아요.
Q : 아무래도 어렸을 때 바로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드물긴 하죠.
H : 저희 부모님이 처음에는 배우가 된다는 것에 반대를 하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이 꿈을 꾸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부모님이세요.
Q : 정작 부모님은 모르시고요.
H : 맞아요. 부모님은 모르시죠. 계속 연극 보여주고, 노래 보여주고, 춤 보여주고 하면 나도 모르게 내재되는 거죠. 내가 나중에 저걸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거죠. ‘저게 정말 멋있는 일이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죠. 그리고 지금 연기를 하고 배우면서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서 더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Q : 그렇죠. 아무래도 어떤 일을 하든지 더 다가가면 어렵고 힘들다는 느낌 동시에 더 멋있고 대단하는 마음이 드니까요.
H : 맞아요. 어떻게 저렇게 하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들면 무섭기도 하고. 근데 이건 또다시 제 시점이지만요. 저는 약간 내 인생이 이렇게 짜여 있다고 생각을 해요.
Q : 운명이다.
H : 운명처럼 나에게 그냥. 왜냐하면 제 위로 언니랑 오빠가 있는데 만약 언니나 오빠가 공연을 좋아했더면, 제가 아닌 언니가 지금 저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만약에 엄마가 그 친구 분과 연락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Q : 다른 친구 분과 연락을 하고 지내거나, 아니면 그 친구 분이 광고 일을 안 하셨더라면 공연을 볼 기회조차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H : 맞아요. 그렇다면 저는 공연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 가까이 접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사실 어렸을 때 일부러 공연을 보러 찾아다니는 경우는 드문 경우니까요.
Q : 그렇죠, 아무래도 어렸을 때는 특히 주변에 있지 않으면 일부러 찾아보는 경우는 드무니까. 얘기를 들어보니까 공연을 접하고 꿈을 꾸게 된 시기가 저보다 더 빠르신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때쯤부터 영화를 좋아했다니 보다는 보기 시작한 것 같거든요. 그것도 어떠한 영화가 보고 싶어서 찾아갔다기보다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학생들의 필수 코스처럼.
H :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필수코스처럼.
Q : 시험 끝났는데 가야지. 그러면서 처음 접했었던 것 같거든요.
H : 만원 들고.
Q : 만원 들고. 그때부터 저는 영화에 천천히 관심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을 혼자서 하거든요.
H : 저도 요즘엔 영화를 찾아보려고 해요. 연기를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찾아보는데 사실 영화를 알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영화도 사실 주변 사람들 덕분에 알기 시작한 것이지 그 전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즘에서야 유명한 작품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하고 있죠.
Q : 그렇군요. 그럼 제가 영화를 많이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요. 그럼 아무래도 배우가 꿈이시니까요 연기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저는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노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배우 스스로가 연기를 하면서 자유롭다 라고 느끼면서 연기를 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 스스로가 굉장히 재미있어한다, 즐거워한다 그래서 연기를 하나보다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었는데 어떠한 느낌이 드나요?
H : 저는 '연기를 준비해 와'라는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근데 또 연습을 하면서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그러한 생각을 하면 신이 나요.
Q : 양가감정이 항상 드는 거군요.
H : 그렇죠. 근데 또 신나게 연습해서 준비해놓고 발표할 때 되면 또 짜증이 나요. ‘저 사람들이 날 어떻게 평가할까’ ‘나 이거 재미있게 짰는데 안 웃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드는 거죠. 근데 사실 저는 캐릭터적인 부분이 강화된 연기를 많이 한 편이에요. 이제 제 자랑일 수도 있는데 선생님들이 제가 짜 놓은 연기를 보고 캐릭터 쪽에 센스가 있다는 말을 들었었어요, 이게 제가 많이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웃기는 연기를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까 약간 개그맨 분들과 같은 마음일 수도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웃으면 성공했네. 이런 기분이 들어요.
Q : 걸려들었네. 그런 마음.
H : 맞아요. 내가 짰던 웃음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웃으면 희열이 느껴지는 거죠. 웃을까 기대했는데 웃고 그다음 포인트에서도 웃을까 생각하는데 또 웃고 그러면 흥분돼서 기억 안 나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진지한 연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다는 그 기류, 느낌이 들 때 기분이 좋아요. 어떤 면에선 관종인 것 같기도 해요.
Q : 근데 관종 일 수밖에 없는 직업이기도 하죠. 어떤 점에서 보자면.
H : 그죠. 사람들의 관심이, 시선이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희열 때문에 계속 배우라는 직업을 꿈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아요.
Q : 그렇다면 반대로, 배우를 꿈꾸고 있는 것이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있나요?
H : 지금과 비교하면 어렸을 때가 더 활발했어요, 성격이. 안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더 적극적이었고, 사람 안 무서워했고 그랬었는데, 이걸 하면서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이 무섭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다고 해야 할까요. 근데 직업 상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아무래도 많다 보니까 그런 점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사람이 그렇게 궁금하지가 않는 것 같아요. 저 사람 저 사람이겠지 뭐. 사귀어봤자겠지 뭐. 이런 감정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Q : 저도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듯이 다른 사람도 나를 평가할 거라는 마음. 과연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두려운 마음이 들죠. 일상생활에서도 당연히 적용 가능한 것 같아요. 특히나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한테 항상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더욱 그런 마음이 들 것 같네요. 그래서 더 힘들고 주저할 것 같아요. 그게 성격 상 맞다면 그러한 시선을 더 즐기겠지만 그러기 힘든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버겁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H : 저는 사실 아까 앞에서 말하긴 했지만 원래 사람들과 지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살아오면서 사람들한테 많이 당해서 그러한 두려움이 생긴 것 같아요. 사이비도 끌려가 보고.. 사람을 믿었던 만큼 사람이 나에게 그러한 믿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을 어렸을 때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Q : 아무래도 상처를 받으면 겁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든 점들을 안더라도 좋으니까 계속 이어 나가시는 거군요.
H : 사실 연기라는 것이 전달자고 보는 사람을 위한 것인데 저는 아직 그러한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남을 위해서 연기를 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내가 느끼고 싶은 거 느끼고 싶어서 하는 거지, 제가 진짜로 직업을 삼게 되면 그렇게 맞춰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아직 저는 전달자다 뭐다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나, 나 좋아서 하는 거니까. 사실 좀.. 부모님한테는 민폐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Q : 맞아요. 저와 제 주변에서도 부모님한테 그런 마음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요.
H : 제가 부모님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난 직업 못 가져’ 이런 말 많이 하거든요. 이게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요즘 제가 제일 서러운 게 뭐냐면요. 학원 수업이라든지, 일이라든지 할 일이 끝난 후에 시간이 남잖아요. 집에는 가기 싫고, 갈 때는 없고,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 제일 큰 고민이에요.
Q : 저도 그래요. 집에 있으면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드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딱히 어딘가를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갈 곳도 없고. 집에 있으면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아서 괴로운데 또 밤이 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무서워지는 거죠. 꿈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고, 내 나이는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H : 저는 나가서 방황을 많이 하는 편인데 요즘 카페를 하루에 몇 번을 가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방황할 때 그냥 무작정 걸어요. 한참을 걷다가 카페에서 잠시 쉬고 다시 무작정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걷는 거죠.
Q : 스트레스를 걷는 걸로 해소시키려고 하는 거네요.
H : 많이 걸으면 몸이 힘들잖아요. 그래서 몸이 힘들면 ‘오늘 뭐 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잘 때. ‘나 오늘 진짜 힘드네, 오늘 뭐 했나 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스스로 약간의 안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 저도 생각 정리할 때 많이 걷는 편인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뻐근하면 ‘그래, 그나마 운동이라도 했네’ 생각이 드니까요. 근데 걷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좀 환기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제가 메인타이틀로 걸어놓은 영화란 주제에 걸맞게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보통 ‘인생영화’라고 말하는 영화를 말씀해주셔도 좋고, 그런 거창한 의미가 아니더라도 그냥 최근에 봤는데 영화, 요즘에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면요?
H : 음.. 가능하다면 저는 영화 대신에 연극을 뽑아도 될까요?
Q : 네, 연극에서 뽑고 싶으시다면 연극도 좋아요.
H : 저는 연극하면 딱 두 작품을 좋아해요. ‘잘 자요, 엄마’와 ‘하녀들’. 두 작품 다 처절한 내용이라고 해야 하나.
Q : 두 연극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H : ‘잘 자요, 엄마’는 딸이 간질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요. 그래서 직업을 가질 수 없어요. 그리고 엄마는 굉장히 딸과 반대 성향인 거죠. 연극 내용을 딱 설명하자면 이거예요. ‘엄마, 나 오늘 자살할 거야.’ 말을 한 후에 딸이 자살하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연극이에요. 근데 정말 극 중 딸이 왜 자신이 죽고 싶은지에 대해서 아주 담담히.
Q : 원래 격양되게 말하는 것보다 담담하게 말하는 게 더 가슴이 아프죠.
H : 네, 맞아요. 그러한 점이 계속 이 연극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서 시계가 나오고 초침이 상황에 맞춰서 움직이는데 그런 무대 연출 또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Q : 저는 사실 ‘잘 자요, 엄마’라는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었는데 아직 보진 못했거든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보고 싶네요.
H : 정말 유명한 배우 분들이 많이 나왔어요. 강부자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 윤소정 선생님. 제가 이 연극을 총 3번을 봤었는데 그중에 한 번은 엄마랑 같이 가서 봤었어요.
Q : 저는 이런 연극은 엄마랑 못 볼 것 같아요, 정말. 통곡해 버릴까 봐.
H : 저도 엄마랑 가서 연극 볼 때 울 줄 알았는데 저희 엄마는 바로 주무시더라고요.
Q : 아, 진짜요?
H : 그리고 끝나고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재미있다.’ (웃음) 음. 그리고 ‘하녀들’은 계급에 대한 이야기예요. 약간 고전으로도 볼 수 있는데 마담이랑 자매인 하녀 두 명이 나와요. 하녀 두 명이 마담을 암살하는 내용인데 제가 이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 강렬했어요. 저는 동생 역할을 좋아하는데, 우리 지금 시대엔 계급이 없지만 저는 지금 계급에 대한 차별이 느껴지거든요.
Q : 저도요. 없다고 하지만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죠. 아르바이트만 해도 금방 알 수 있죠, 그런 미묘한 계급 차이가.
H : 근데 이 동생 역은 어찌 보면 가장 처절하게 자신의 계급을 느끼고 그런 자신에 대한 증오심과 동시에 그런 계급을 가지고 있는 마담을 부러워하는 그러면서도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처절할 정도로 표현하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사실은 제가 지금 비루한 것 같아도 SNS상에서는 ‘나 지금 잘 살고 있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이 인물은 그러한 인물은 아니니까요, 그 점이 좋은 것 같아요.
Q : 그러면 두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은 뭐가 있을까요?
H : 음, 어렵네요.
Q : 하나만 뽑기 어렵다면 두 작품 다 말해주셔도 돼요.
H : 음, 그렇다면. 일단 ‘하녀들’에서는 “네 구두에 침을 뱉어라.” 제가 아까 말했던 동생 역할이 하는 대사인데, 자매인 두 하녀들끼리 역할극을 하는데 동생이 마담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마담에게 항상 듣던 말, ‘자신의 구두에 침을 뱉어 깨끗이 닦아라’라는 말을 자신이 마담 역할을 하면서 하는 대사인데 좀 아픈 대사라고 생각을 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잘 자요, 엄마‘에서는 너무 유명한 대사이긴 한데, “알잖아, 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이 대사로 그 사람의 인생이 설명이 되는 느낌이잖아요.
Q : 아, 그러네요. ‘직업’이라는 단어에서 올 수 있는 감정들이 있으니까요. 특히나 ‘직업’이라는 것이 과거든, 현재든 이슈가 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직업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도 생각하거든요. ‘내가 나이 들어 먹고 살 수나 있으려나.’
H : 맞아요, 저도요. ‘과연 내가 휴대폰 요금이나 잘 내고 살 수 있을까’ 그런 걱정.
Q : ‘나중에 자립하면 월세나 내고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고. ‘직업=경제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감정을 함축하는 대사인 것 같네요. 직업을 가져도 힘들고, 직업을 갖지 못해도 힘든. 직업은 갖지 못한 사람은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이 부러워 보이고.
H : 저는 이제 이런 자유로움이 힘든데 또 이런 제가 부러워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Q : 분위기를 좀 바꿔서 질문해보고 싶은데요. 요즘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뭔가요? 요즘 나의 ‘삶의 낙’이 있다면요?
H : 프로듀스 101에서 박우진 데뷔시키기. 그리고 나는 과연 박우진과 연애를 할 수 있을까?
Q : 그 와의 연애가 현실 가능한가?
H : 역시 그렇지만. 연예인은 연예인이고, 팬은 팬이겠죠. 사실 누구나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면 상상을 하게 되잖아요. ‘내가 이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
Q : 그렇죠. 그게 가까운 사람이든, 멀리 있는 연예인이라는 대상이든 상상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처음 프로그램이 방영할 때부터 프로듀스 101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H : 원래 시작하자마자 보기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친구가 자꾸 보라는 거예요. 같이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봤는데 보면 초반에는 아무래도 다들 친하지 않으니까 경쟁심리가 생기잖아요. 그러다 회차가 늘어나면서 다들 친해지니까 자기들이 장난치고 끼를 부리고 그러더라고요.
Q : 이제 편해지면서 자신의 본모습이 나오니까요.
H : 그러면서 더 재미를 붙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친구랑 이거 보면서 얘기를 했는데 ‘나도 누군가를 평가하고 싶었나 봐.’라는 말을 했어요. 평가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투표도 하고 하니까, 내가 만드는 것 같고. 그러니까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Q : 저는 보진 않고 인터넷 기사들은 가끔 봐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기는 꽤 높은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을 평가하고 내가 직접 아이돌을 만든다는 심리를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이제 거의 인터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요. 앞에 말씀드리긴 했지만, 제가 <영화를 현실로 착각한 여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만약에 황가네 막내딸 씨를 본인을 이 타이틀의 형식에 빗대어서 표현을 하자면 어떤 타이틀을 지을 수 있을까요? '00를 00으로 착각한 여자'의 틀로 지어보자면요?
H : 많이 고민이 되는 질문이네요. 음.. 두 단어만 바꿔서 짓고 싶네요. <현실을 영화로 착각한 여자> 요.
Q : 오,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
H :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요. 지금 제게는 영화 같은 일들이 필요한 하루하루인 것 같아요. 이게 나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뭔가 아주 슬픈 일이라도 필요한..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냥 그런 하루들의 연속인 것 같아서요. 언젠간 오디션 프로 우승자처럼 제게도 드라마 같은 일이 생긴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데,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냥 평범한 하루의, 그저 그런 하루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냥 두 단어를 위치를 바꿔서 지어보고 싶었어요. 사실 아직 살아갈 삶이 많으니까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지금 현재 저는 제 인생이 영화 같지 않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은 찬란하게 빛나는 배우였는데.. 그런 생각 때문에? 그래서 <현실을 영화로 착각한 여자>라고 타이틀을 걸고 싶네요.
Q : 음.. 지어주신 타이틀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지금 저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아서 공감이 가면서도 마음이 축축해지네요.. 이제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칠까 하는데요. 우선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 같은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고요. 진심으로 성의 있게 대답해주셔서 황가네 막내딸 씨의 생각을 더 깊게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인터뷰를 떠나서 제 개인적으로도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상은 이 정도로 줄이고요. 나름 시그니처 질문이라고 하고 싶은 '요즘 나의 한 컷'인데요. 제목 그대로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의 한 컷인데요. 이상하게 내가 꽂혀있는 영화 장면, 음식, 풍경 등 자유롭게 저에게 사진을 보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H : 음, 사진첩을 뒤져봐야겠네요.
(잠시 후, 황가내 막내딸 씨는 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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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네, 사진을 확인했는데요. 많은 사진 중에 이 사진을 '요즘 나의 한 컷'으로 보내주신 이유가 있나요?
H : 음, 이 사진은 제가 정말 하루도 안 빼놓고 티몬이랑 엠넷을 들어가서, 로그인을 하고, 또 투표를 하고 이렇게 뭔가를 매일매일 한다는 게 저는 제일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 꾸준히 할 만큼 즐거웠고, 뭔가를 이렇게 집중했던 것도 오랜만이었고, 요즘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순수하게 집중하면서 좋아했던 것 같아서 요즘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지 않을까 싶어서 이 사진으로 선택했어요. 이제 곧 끝나서 아쉬운데 그래도 참 좋았어요.
Q : '삶의 낙'의 내용의 연장선상의 사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취향을 존중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진심으로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나의 한 컷'을 보니까 왠지 웃음이 나면서 열정이 느껴진 달까요.(웃음) 이제 진짜 제가 준비한 질문들은 모두 끝난 것 같은데요. 인터뷰 어떠셨나요. 힘드셨죠?
H : 아니요, 반대로 저는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뭐랄까요. 저는 저 스스로를 잘 몰라서 이 인터뷰를 통해서 질문받고, 대답하면서 제가 스스로를 조금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것 같은? 말하면서 저에 대해 생각하면서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좋았어요. 무엇보다 나름 생산적인 일에 참여를 한 것 같아서 즐거웠던 것 같아요.
Q :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어떤 대가를 드리면서 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아닌데, 흔쾌히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부디 황가네 막내딸 씨의 꿈이 이뤄지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H : 네. 감사합니다! (짝짝)
Q :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짝짝)
첫 인터뷰를 끝낸 후 집에 와서 녹음한 시간을 보았다. 44분이라는 생각보다 긴 시간을 다시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녹음 했을 때의 분위기, 표정, 공기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잠시나마 듣고 깨닫게 된 시간이라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가네 막내딸'이라는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의 조금 다른 생각과 모습을 더 알게 된 시간을 갖게 되어 너무 행복한 첫 번째 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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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