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함께하는 그들은 좌로 5분, 우로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결혼 이후 흩어져 살았던 우리는 하나하나 엄마 곁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해,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보는 것을 너무 오랜만이라고 말하며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다.
여느 날처럼
차 막히는 금요일 퇴근길, '저녁은 뭘 해 먹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띠링하고 카톡 알람이 울린다.
“닭볶음탕 했으니 모여!”
동생의 카톡호출에 우리는 후다닥 모여들었고
식사를 끝내고 시작된 우리의 티타임을 제치고
티비에서 나오는
쏠톤을 장착한 쇼호스트 모습에 우리의 시선은 멈추었다
"태국 푸껫 단 하루 특가 499,000원!"
언니의 환갑여행을 스위스에서 보내기로 하고 곗돈을 모으고 있던 우리는 동시에 으응~? 하는 눈빛을 보냈고 한참이나 이른 환갑잔치를 위해
자동주문전화 080-000-0000을 눌러버렸다.
항공권과 리조트만 있는 저렴한 여행상품을 덜컥 예약해 놓고 ‘가이드 없이 정말 괜찮을까? 심지어 중국에서 경유까지 해야 하는데?’ ‘아이들까지 일곱이나 되는 이 인원을 다 데리고 난 어쩌자고 이 사달을 낸 걸까 ‘
출발 당일, 인천공항의 분위기는 우리 모두를 흥분시키기 시작했고 사람들 손에 들린 캐리어의 바퀴 소리들이 더해져 심장은 쿵쾅쿵쾅 나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터넷을 뒤져 모은 정보들을 떠올리며 여권과 e티켓을 손에 들고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짐 가방들을 맡긴 후 출국 게이트를 찾아 앞장을 섰다.
아무 탈 없이 기내식과 음료수도 야무지게 챙겨 먹은 후 경유지인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니, 한결
여유로워진 내 목소리에 나 스스로 놀라며 환승게이트 출입에 필요한 여권과 티켓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러 부~운 여권이랑 티켓 꺼내서 보여 줄 준비 하세요~”(상당히 리드미컬 한 목소리 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그때, 등 뒤에서 동생과 조카의 목덜미 서늘한 얘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려야~ 엄마 여권 줘~” “무슨 소리야 엄마가 갖고 있잖아~”
동생과 난 눈이 마주치자마자
둘러멨던 백팩을 홀라당 뒤집기 시작했고 몇 초가 흐른 후 인천발 비행기에 놓고 내렸다는 사태 파악을 마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뛰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타고 온 비행기를 찾기 위해 죽어라 달리는데 두 다리는 누가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한참을 달리다가 똑같이 생긴 게이트 앞에서 두 다리가 풀려, 뛰기를 멈추고 생각했다. '어쩌지? 어쩌지? 젠장 머릿속이 하얗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일단 환승게이트 데스크로 가서 안 되는 중국어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니하오, 에멀 전시, 로스트 패스포트, 씨에 씨에, 영어와 중국어 총동원에 손짓 발짓해 가며 세 자매의 쑈는 시작되었다.
구석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 낯빛을 보니
더 한 쑈도 할 판이었다.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35분 후 출발인데 저마다 바쁜 직원들은 우리에게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무례한 그들에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고 나의
언성은 높아졌지만 머릿속으론 `다 틀렸구나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지켜보던 언니가 한발 나섰다.
언니는 씩씩하게 내 옆을 지나더니 데스크 직원에게 아주 상냥하게 한국말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휴~ 우리가 처음 여행을 오다 보니 이런 실수도 하네요 도와주세요~ 우리 애들도 저렇게 걱정을 하고 있네요 씨에 씨에”
언니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꼭 잡은 직원 손을 놓지 않았다.
직원은 그제야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는 투로 “티켓!”이라고 말하며 무전기를 집어 들고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얘기한다.
Found it!
무빙카를 타고 나타난 직원의 손에 들려있는
여권을 보는 순간, 난 무릎이 왜 꺾이는지를 몸소 경험했다.
다음날 오후, 후텁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
썬 베드에 나란히 누운 우리 세 자매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여유롭게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