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간호사

2018년, 간호학과 학생의 일기

by 봄봄

휴학하고 도전했던 약 2년의 방송작가 생활을 토대로 간호학과를 표현해보자면 간호학과는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같다. 학기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경연을 거쳐 최종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비로소 데뷔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고 눈물도 흘리고 추억도 쌓는다. 무엇보다 모두가 함께 치열하게 노력하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감동 코드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그렇게 데뷔해서도 힘들고 지치는 날들이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겠지만 같은 꿈을 꾸며 함께 나아가는 과정이 우리에겐 한 편의 드라마니까.


1. 소속사

나의 소속은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서울에서 유일하게 ‘간호학과’만 있는 대학교이자, 최근 자율개선 대학으로 선정된 자랑스러운 모교이다. 애교심을 바탕으로 바라본 우리 학교의 최대 장점은 작은 캠퍼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강의실, 같은 자리에 앉아있으면 교수님들께서 찾아오셔서 강의해주시니 참으로 황송할 따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캠퍼스의 로망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추억거리를 한가득 만들 수 있는 단란한 학교이다. 뿌리가 깊고 단단한 우리 학교가 나에게 제시해주는 길을 묵묵히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아있으리라.


2. 첫 방송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다시 간호학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학교생활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는 안일하고도 오만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복학 후 설레는 마음으로 첫 강의를 들으러 가던 날의 나는, 이 학교에서의 남은 시간을 성공적으로 보내고 말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로지 열정만으로 4년을 채우기엔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더라. 학기마다 다 읽고 이해하기도 벅찰 분량의 전공 공부를 해야 했으며, 실습을 하면서는 사방으로 눈치를 보며 내 존재 이유를 고민해야 했다. 열정보다도 중요한 건 하루에 8~9시간씩 서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다리와 자퇴서를 제출하지 않을 인내력이었다.


3. 경연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시험 기간이다. 한 글자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열람실에서 일주일간 숙식을 해결하며 공부한다. 밤새 전공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이해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종종 헷갈린다. 그런데 이토록 고생하는 나를 틈틈이 유혹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단잠이다. 누가 내 잠에 꿀을 발라놓은 건지, 너무 달콤해서 한 번 빠지면 도통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도 동기들끼리 서로 깨워주며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시험만이 남아있다. 보통 마지막 시험은 끝나는 데 의의가 있으며 이때부턴 날 괴롭히던 단잠도 싹 달아난다.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모두 끝내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교정을 나서며, 다음 시험은 반드시 미리 공부하겠다는 똑같은 다짐을 한다.


4. 탈락 위기

슬럼프는 조용히 찾아온다. 내가 앞으로도 잘 견딜 수 있을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건지 고민하다가 결국 1학년도 다 마치지 못하고 휴학을 선택했다. 처음엔 개강했는데도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꿈처럼 기뻤다. 하지만 침대에만 누워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법.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던 나는 겁도 없이 방송국으로 뛰어들었다. 다사다난한 방송작가 생활을 영위하면서 선배들로부터 학교는 졸업하라는 말을 천 번째 듣던 날, 2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복학할 때만 해도 학교만 졸업하고 다시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니다 보니 간호학과는 ‘졸업만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실습이 나와 잘 맞는 편이었다. 간호사의 업무에 대해서 잘 모를 땐 공부하는 게 마냥 힘들었는데, 실습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비로소 간호사가 되고자 하는 확고한 이유가 생겼다. 간호사의 세심한 처치에 환자분들이 실제로 호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직업적 가치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더불어 공부를 하면서도 단순히 이론을 암기하기보단, 이유를 알고 실무와 연결 지을 수 있게 되니까 한결 재미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탈락의 고비를 넘기고 데뷔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5. 멘토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리다가도, 가끔은 지쳐서 숨 돌릴 곳이 필요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앞에서 끌어주는 멘토가 있었기에 숨을 고르고 다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담임 교수님께서 학기마다 학생들과 1대 1로 상담을 하며 그 역할을 해주신다. 방송작가와 간호사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에게 교내 방송부를 추천해주신 것도 담임 교수님이었으며,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은 나를 위해 해외 간호사의 길을 추천해주신 것도 담임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은 앞만 보고 직진하는 나에게, 잠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도록 작은 쉼터를 제공해주셨다.


6. 팬클럽

무엇보다 나를 믿어주는 든든한 사람들이 없다면 결코 나 혼자서 이 길을 완주할 수 없을 것이다. 2년간의 휴학을 허락해준 부모님과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건 없이 나를 응원해주는 팬클럽을 실망하게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가끔 무단이탈의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나를 괴롭힐 땐, 내 뒤에 서 있는 나의 팬클럽을 생각하며 다시 정신을 차려보는 것이다.


7. 데뷔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SN을 벗어나서 진짜 RN이 된 우리의 모습을 종종 상상한다. 미래의 우리는 행복할까? 지금을 그리워할까? 4년의 세월을 무사히 견뎌낸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맞지 않는 사람이나 분위기에 당황할 일도 생기겠지만, 다시 일어날 힘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단단해졌듯이, 간호사가 되어서도 원석이었던 우리는 마침내 다양한 보석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날 것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유할 만큼 험난한 간호학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끈끈한 동기들과 함께 각자의 꿈을 위해 나아간다. 우리 모두 힘든 시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잊지 말고 힘을 내서 이 드라마를 해피 엔딩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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