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브릴 May 16. 2019

(여행자를 위한) 자기 주도 학습의 이해

세계일주 에세이 | 이탈리아 나폴리 02







:: 1 ::


고교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한 친구가 있었다.


"도서관 같은 데서, 이런 거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맘껏 해보고 싶어."


유감스러운 사실 한 가지를 고백하자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우수반 제도가 있었다. '특수반', '준 특수반', '평반', 그리고 실업계 학급도 따로 있었다.


'특수반' 학생들은 오전 8시 반부터 일반 수업, 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밤 12시에 스쿨 버스로 귀가해야 했다. 주말이며 방학, 공휴일에도 학교에 나가 보충수업을 받고 자율 학습을 했다. 1학년은 한 달에 이틀, 2, 3학년은 하루 쉬는 날이 있었다.


출처: 뉴욕타임스 / 일러스트: Andy Rementer


학생들은 매월 모의고사를 치러야 했고, 학교에서는 매월 1등부터 60등까지 시험 성적과 등수를 복도에 전시했다. 이 친구와 나는 '특수반' 소속이어서 성적 전시 대상 중에 하나였다.


내 모의고사 점수는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매월' 심각하게 등락을 거듭했다. 늘 성적의 파고(波高)가 엄청났고, 한 번에 30등이 넘게 떨어진 적도 있다.


이런 나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 친구는 사정이 더 심각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름대로 성적이 좋던 친구인데 '특수반'에서는 늘 꼴찌 전후를 맴돌았던 것이다. 이 친구에게는 전시된 '실적'이 아니라 성적이 전시될 수 있느냐 없느냐 자체가 문제였다. 매년 말이면 어김없이 '특수반'에서 '준 특수반'으로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곤 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 사회와 사립 고등학교 시스템, 학부모들 사이에 낀 급식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마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경험한 '공산주의' 폐단과 비슷하다. 시스템 규모가 너무 거대하게 고착화되어 있어서, 고래 뱃속이라도 들어온 듯 모두 개혁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다.


성적이 등락을 거듭하면서, 학교 교육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던 나도 조금씩 욕구를 포기했다. 불안했고, 버텨봐야 결국은 나만 손해였기 때문이다. 급우들 모두 반복해 문제집을 풀고, 암기하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그저 모의고사 점수와 '네임드(named)' 대학 진학만을 목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사실은 우리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 재미와 흥미를 좀더
파고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 자기 선택에 따라 주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녀가 '하고 싶은 공부 맘껏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기쁨을 느꼈다. 이런 생각은 나도 나름대로 하던 것이니까. 어쩌면 사실은 우리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변별력을 증명하기 위해 교과서 구석구석까지 외우는 것보다는, 재미와 흥미를 좀더 파고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교과서 밖 취미와 관심사에 대해 찾아보고, 자기 선택에 따라 주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


고교 시절에는 '그래도 대학만 가면'이라고 다들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아픈 톱니는, '취업 난'이라는 또다른 고래 뱃속에서 대학과 직장까지 모두 맞물려 있는 바퀴로 드러났다. 대학 시절은 비교적 훨씬 낫긴 하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었던 적은 없다.


원본 출처: 텐마인즈(http://www.10minds.com)


'하고 싶은 공부 맘껏 해보고 싶다'는 욕구. 이것은 이미 과장이 된 나에게 아직도 남아있어서, 여행을 시작하고 곧 이번 학기 과목을 짰다.

이해 시리즈 - 문학의 이해, 영화의 이해, 음악의 이해

표현 시리즈 - 문학의 표현, 음악의 표현

교양 시리즈 - 교양 미술, 교양 인문학, 교양 심리학, 교양 무용


이 쯤에서 내 직업이 뭐였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컨설턴트였다.




:: 2::



이튿날, 내 생각은 거의 한 가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해안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경치가 좋고 고요했다. 잠깐씩 어딜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생각만 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의 미궁에 빠져 있었느냐, 그것은 '이해'의 개념에 관한 것이었다. '이해 시리즈' 과목으로 '문학의 이해', '영화의 이해', '음악의 이해'를 마련해두었는데, 도통 '음악의 이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저거 다 이해하나?"


어딘가에서 재즈가 흘러나오면 아빠는 종종 나에게 묻는다. 아빠는 재즈가 좋은 줄 모르겠다는데 난 재즈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 저런 질문은 너무나 당혹스러워서 나는 매번 머뭇거린다.


"'다 이해한다'는 게 뭐야?"


아빠 답변도 매번 변하지 않는다.


"듣고 좋다고 느끼면 이해하는 거지, 뭐야."


그러면, 으응, 대답하지만 나로서는 늘 이 말을 납득하기가 어렵다.


출처: 영화 <위플래쉬>


나는 시각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시각적 음악이란 청취 시 시각적 공감각을 일으키는 음악을 말한다. 흔히 알려진 사례로 드뷔시(Claude-Achille Debussy)의 음악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인상주의 회화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을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이 장면을 만들어내고, 곡의 흐름에 따라 서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운명 교향곡>의 경우, 청천벽력같은 운명이 찾아오고, 마음의 풍랑을 겪다가, 안정을 찾는 내용으로 곡이 진행된다. 불을 끄고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서 1악장부터 4악장까지 관람하듯 듣는다.


여기서 특별히 클래식 음악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곡들에 '객관적인' 작품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 해설 없이 음악을 들으며 '본' 장면들은 결국 작품 해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을 내가 그 곡을 이해했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만약 이것이 '이해'라면, 같은 음악을 듣고 누구나 비슷한 장면을 떠올린다는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오스트리아의 예술에 관해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이 굉장히 융성했던 나라이다. 그런데 문학과 미술 면에서는 이에 비해 예술사에서 비교적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에곤 쉴레(Egon Schiele) 외에는 특별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 이유가 뭘까?

*지나가면서 읽은 내용이라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다면 덧글 부탁드립니다.


오래 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문학과 미술을 억압하고 대신 음악을 장려하는 정책을 썼다고 한다. 이 때는 유럽 여기저기에서 한참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왕가의 체제 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예술 정책을 펼친 셈이다. 이 때는 아직 현대 추상 미술이 없었던 시기이니 문학과 미술 모두 어떤 분명한 대상, 또는 사건을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으로는 뚜렷하고 객관적인 무언가가 형상화 될 수 없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듣기만 하고 누가 그것이 나폴레옹임을 알겠는가.




:: 3 ::



나폴리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카스텔 델 오보(Castel dell'Ovo; 달걀성)'라는 중세 요새에 다녀왔다. 안에서 미술 전시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유럽은 유럽인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의 시커먼 요새 속에서 열리는 전시도 작품 수준이 상당했다.


⋯⋯라는 말이 무색하지만 사실 미술은 보는 눈이 없다. 예술 감상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인데 미술은 유독 '멍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서울 사는 동안 가끔 전시회를 방문했고 미술을 즐겨보려고 노력했다.


원본 출처: Osvaldo Petricchiuolo 웹사이트(http://www.osvaldopetricciuolo.it)


카스텔 델 오보의 전시 중에서는 'Osvaldo Petricciuolo'라는 나폴리 예술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서울 사는 동안 조금씩 노력한 효과가 있었는지, 작품을 보면서 단순히 호불호를 느끼는 것 외에 이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A를 이렇게 표현했구나', '저기서는 B를 이렇게 표현했네', '누구누구랑 비슷한 걸 보니 무슨무슨 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모양인데', 하면서.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작품 해석에 제한되어 있어서, 마냥 감탄하면서도 미적인 쾌감은 전혀 늘어나지 않은 듯했다. 뭐랄까, 마치 몽테뉴와 베이컨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들은 지겹기로 유명한데, 지루함을 견디며 읽고 있노라면 한 번씩 좋은 내용과 표현들을 보고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극도 받고 기쁨도 느끼는 것이다.




:: 4 ::


출처: 영화 <스쿨 오브 락>


'문학의 이해'라는 개념을 두고 생각하면, 나는 '그럭저럭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의 이해'라는 개념을 두고서는, '이해가 매우 부족한 수준이지만 조금씩은 이해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음악을 이해한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음악을 들으며 희노애락과 호불호의 감정을 겪는 것 외에,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저 부분은 어디서 영향을 받았고, 하는 따위를 볼 수 있는 안목(眼目)을 기르는 걸까? 하지만 작품 해제들이 단순히 내가 얻은 음악적 경험을 정답 확인하듯이 보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곡은 기억하되 무슨 음악 사조인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는 없도록 음악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음악을 이해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식없이도 그 음악들을 듣고 이미, 혹은 금세 질려버릴만큼 많이 거쳐왔다면, 그런 지식들은 쓸모가 있는 거며, 또 갖춰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알고 헤아릴 수 있어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이해한다'는 단어를 쓴다. 그러면 아빠 말씀대로 곡을 듣고 좋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이해한 것인가? 나는 아이돌 음악이나 트로트를 들을 때 시끄럽고 갑갑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이해를 못해서인가?


정말이지 '이해'라는 건 뭘까? 이해에 관해 생각하는 와중에 '본다', '보인다'라는 '시각적' 표현은 왜 또 이리 반복해 등장하는 것일까? 문학을 읽으면 영화보듯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미술은 애초에 시각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을 듣고도 시각적 심상을 얻을 수 있다면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무언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과정 자체를
'이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도통 모르겠다. 세계일주 첫 국가인 나폴리에서도 몰랐고, 세계일주를 마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폴리 여행은 '스누징 르네상스'의 테마이니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나 한 번 더 되새겨 보자.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일본인 작가.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이탈리아에 관한 다양한 저작을 내놓았다.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폭발,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어쩌면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무언가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과정 자체를 '이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알면 알수록 알게 되는 건 모른다는 사실 뿐이니까. 덧붙이자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을 두고 내 친구 하나는 '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