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
아이는 여섯 살이 되도록 자기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태생적으로 소식이 체질이었던 아이는 모유 수유가 순조롭지 않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모유를 포기하고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분유 역시 잘 먹지 않아 육아서에 나오는 분유 양에 미치지 못했다. 초보 엄마는 항상 불안했고 초조했다. 육아서 <삐뽀 삐뽀 119>를 바이블 삼아 탐독하고 먹고 싸는 양에 집착했고 월령별 과제(목 가누기, 뒤집기, 앉기 등)를 기간 안에 하기를 학수고대했다.
아이는 엄마의 간절함을 알 턱이 없었다. 당시 분유는 성장에 따라 4단계까지 있었는데 아이는 분유통 몇 개를 비우지 못하고 4개월을 맞이했다. 개봉 후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비워지지 않는 분유가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분유값 벌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직장인의 푸념이 마냥 부러웠다. 분유를 대체해서 이유식을 시작했지만 이유식의 반은 버려지고 반은 엄마가 먹었다. 뱃속에 있을 때가 그나마 편하다는 말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날도 이유식은 한 시간가량의 실랑이 끝에 아이의 침으로 묽어졌고 개수대에 처박혔다. 아이는 지쳐 잠들어버렸다. 어지러운 집안을 대충 치우고 작은방 PC앞에 앉아 이력서를 손보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https://youtu.be/4vPeTSRd580
많이 울고 또 울다가 아이가 깨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 방에 들어가 싱긋 웃는 아이를 껴안고 또 울었다. 잠들기 전에 잘 안 먹는 아이를 혼내고 다그쳤던 기억에 엄마는 우는데 아이는 잠으로 잊은 건지 맑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듣는 동안 영화의 장면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세츠고가 품고 다니던 드롭스 깡통, 물을 부어서라도 깡통에 남은 단맛을 보려던 간절함,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의 죽음을 차례대로 목도하게 되는 세이타의 그렁그렁한 눈망울……
엄마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만 2.5세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로 뛰쳐나갔다. 많이 후회했지만, 그때 살길은 그것뿐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다시 만난 일과 사람들에 피곤하고 지쳤지만, 육아보다는 참을만했다. 아이의 하루가 궁금하고 신경 쓰였지만 울지 않게 되어서 좋았다.
일의 연장이라는 회식을 갔을 때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일관계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른 인식으로 냉랭한 분위기였고, 특히 독도문제를 두고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한국은 시마네현 타케시마의 날 선포를 전쟁 선포와 같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회식 자리가 길어지고 술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 독도를 화두에 올렸다.
그냥 하루는 일본이, 하루는 한국이
가지는 걸로 하지 뭐
일본인 부장은 특유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좌중의 동의를 구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인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비록 작고 하찮아 보이는 섬이지만 식민 지배를 받아본 국민이 느끼는 울분에 대해 앞뒤 재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술이 좀 과해서 그랬는지 그때부터 술이 오르기 시작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대한민국 국민 대표도 아닌데 멋대로 본인의 감정을 모두의 감정인양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다.
일본인 직원들은 뜨악해하면서도 가볍게 웃어넘기면서 그 자리는 끝났다. 시끄럽고 늙은 오바상(아줌마)이 술이 과해 흥분해서 날뛰는 거라고 치부했겠지만 그날 삐사감은 진지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손바닥과 손날이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좌중을 설득하려고 온갖 정보와 지식을 쥐어짜고 그것으론 부족함을 느꼈는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연신 탁탁 쳐가며 말을 이어 나갔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그것이 확실한 증빙과 증인이 존재함에도 강제는 자발로, 피해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것을 보면, ‘강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삐사감이 만난 몇 안 되는 일본인 친구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과오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믿는 것에 추호의 의심은 없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역사적 사실을 의심하고 진실을 추궁하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깐.
국토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잃었던 국민이 느꼈던 감정은 후세대의 몸과 마음에도 유전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이 얘기는 모두를 하나의 맘으로 추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자를 조각내어 너 하나 나 하나 나눠 먹듯이 사이좋게 지내자는 부장의 친절한 웃음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우린 다음번에 만날 때도 깍듯이 존경의 말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어떤 면에서 <반딧불이의 묘>는 비열했다.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을 전쟁희생자로 등장시켜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좋은 전쟁은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그들로 다시 한번 알린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발발한 전범국가라는 사실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일본이라는 국가폭력이 타국의 국민뿐 아니라 자국의 군인과 민간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전쟁의 진상임을 이 영화를 보는 순간 깡그리 잊고 당시 일본에서 희생된 세츠고와 세이타만을 애도하게 했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다분히 정치적이고 의도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쟁 피해만을 연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교묘하고 은밀한 시도들이 사람 좋은 얼굴로 사이좋게 타국의 땅도 나눠 갖자는 말을 함부로 내뱉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그런 말을 다음 세대가 듣고 또 다음 세대가 듣게 될까 봐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반딧불이의 묘>를 다시 보다가 십수 년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소환되었고, 어젯밤 이 글을 다닥다닥 써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초록창을 보니 오늘이 ‘독도의 날‘이란다. 예지력 비슷한 것이 생긴 것은 아닐 테지만 가끔 발생하는 신묘하고 우연적인 상황에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