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기 전에

送り人(Goodbye)

by 초록지붕 B사감

2015년 우리는 추모관에 방문했다. 오후의 햇살이 로비 가득 비치고 성당과 납골당이 한 건물 안에 있었다. 조부모와 40대에 일찍 생을 마감한 아빠 형제들은 선산에 묻혔다. 그들이 떠나고 40여 년 동안 집안에 흉사가 있을 때는 이장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 5기의 묘는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멧돼지가 파헤쳐서 몇 차례 다시 정돈해야 했고 겨우 명절에나 찾아가거나 그마저도 남의 손을 빌려 벌초하다 보니 극진한 마음으로 성묘하는 일도 점점 줄어가고 있다.


부모님은 본래 이 선산의 한자리를 차지할 예정이었지만 우리 형제의 사후관리를 걱정하여 추모관을 생각해 냈다. 마침 천주교 신자(냉담자 한 분을 포함하여)이니 성당을 바로 곁에 두고 있는 납골당이 건립되자 바로 견학에 나선 것이었다. 작은 네모 상자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납골당은 그것의 층수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생긴 것도 가격도 아파트와 똑같아서 저층이나 최상층을 제외한 중앙, 즉 자식들이 얼마나 찾아올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이 편안하게 서서 바라볼 수 있는 단이 가장 비쌌다.


납골당을 보러 가기 전에 들었던 무거운 마음은 관계자의 가격설명에 실소가 터졌다. 아파트랑 똑같다니….

사실 사자는 중앙홀과 달리 빛이 덜 들어오는 납골당의 어느 위치에 있든 마찬가지 아닐까?! 남아있는 물건을 돌아다니며 보다가 갑자기 부동산 임장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 자리는 좀 높지만, 창문이 가까우니 해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고, 여긴 로열층인데 안쪽이라 너무 어둡네… 도대체 사자에게 빛과 통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중앙으로 해서 좋은 건 단지 사후에 찾아오는 자식들이 머무는 짧은 순간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닌가!




다이고는 갑작스러운 오케스트라 해단으로 무리해서 구입한 첼로를 처분하면서 연주가의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 그는 '여행 준비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광고를 보고 여행대리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엉뚱하게 '편안한 여행(죽음)을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되고 부인에게는 관혼상제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며 얼버무린다. 생계유지를 위해 주변에는 알리지도 못하는 납관사의 일을 하게 되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친구의 질타와 타박에 일을 그만두려고 사장의 방을 들어간다.

식물로 가득한 사장의 방에서 사장과 다이고는 복어의 정소를 먹는다. 살아가는 인간은 생명이 가득한 것을 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미안하고 면목 없지만 그것을 소금을 쳐서 숯불에 구워내면 너무나 맛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죽은 자를 정중하고 아름답게 단장하는 염습 일을 하면서도 크리스마스에는 상위포식자답게 게걸스럽고 포악하게 닭을 뜯어먹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납관하는 일에 익숙해진 다이고는 스승에게 배운 그대로 엄숙하고 정중하며 정확한 손길로 고인의 마지막을 단장한다. 납관 의식을 참관하는 유족은 그 어느 때보다 고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고마워한다. 사후 몇 주가 지나 벌레들에 훼손된 시신도, 화목했던 가족에 둘러싸여 키스 세례를 받는 사람도, 죽는 순간까지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목욕탕 할머니도, 모두 똑같은 정중함으로 납관하는 의식은 아름답게 느껴졌다. 보통의 일, 좀 더 괜찮은 일을 하라는 주변의 업신여김에도 다이고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납관 의식으로 느끼게 되는 특별한 감정 상태에 있지 않았을까?


다이고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어려서 헤어진 아버지와 뒤늦게 만난다. 아버지의 납관 의식 중에 발견한 작고 맨질맨질한 돌은 다이고와 아버지가 마음을 교환하던 돌 편지였다. 이 돌을 움켜쥐고 있던 아버지의 손을 펴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잊은 채 살아가던 다이고는 아버지를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짧지만 따듯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오랜 시간 지배하던 갈등과 미움이 해소된다.


다이고와 마찬가지로 긴 시간 반목하고 단절된 채 살아가던 가족이 죽음 앞에서 무겁게 짓누르던 미움의 근원을 잊고 사자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성소수자 가족은 납관 의식이 끝나자, 그동안의 혐오 감정에서 벗어나 사자에 대한 사랑을 오롯이 느낀다. 죽음 앞에서 허용되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자식의 죽음으로 더 이상 혐오할 대상이 없어진 것에 대한 후련함은 아니었다. 사후 무력하기만 한 사자의 장례방식을 사자가 생전 원하던 대로 허락한 것을 보면 죽은 자식이 선택한 가치에 대한 뒤늦은 수용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그런 마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죽음만이 인간을 깨우치게 하는 걸까? 살아서 함께 있는 동안 그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죽음앞에서 살아남은 자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사자를 미화하기도 한다


아, 나도 이 사람이 납관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었어...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납관사가 되어 아내를 직접 염습한 사장, 그가 염하는 모습을 지켜본 여자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의 일을 돕는 직원이 된다. 사후 무력한 상태에 놓인 사자의 마지막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이지만 영화에서처럼 납관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는 일을 모두가 견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염습과정에서 기절하여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을 적이 있기에. 항상 상상과 현실은 다르니깐.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 과정에 이미 규격화된 절차들이 있지만 8년 전 추모관을 확정한 것은 모두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사후에 조금은 덜 헤매고 결정에 혼란이 없도록 미리 준비해 준 부모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햇살이 가득한 추모관과 고요하고 간소한 성당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도 했으리라. 이런 곳이라면 자식이 자주 찾아주지 않아도 부모님은 가끔 들러주는 다른 가족들의 발자국과 기도, 미사에서 울리는 찬송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영화 <おくりびと, Goodbye>에서처럼 시종일관 아름답고 고요하고 찬찬하게 죽은 자를 다음 세상으로 통과시키는 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영원히 살 집을 장만했다는 뿌듯함이 분명히 있었다.


오랜만에 추모관 계약서를 찾아보다가 아버지가 자신의 세례명을 잘못 기재한 것을 발견했다. '하상 바오로'가 '화상 바로오'로 둔갑한 사실을 발견하고 한참을 웃었다. 분명 신을 받아들인 건 엄마의 강압이 작용한 것이어서 세례명은 있으되 성당에는 아주 가끔만 그것도 억지로 가는 냉담자는 자신의 세례명이 가물가물했던 모양이다. 이런 평소의 행동이 엄마에겐 분명 '화상'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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