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간다(それでも、生きてゆく)
가본 곳은 다시 가기 싫어하는 사람과 유명한 카페나 맛집 등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과 별 취향이 없는 듯 있는 듯 애매한 사람 셋이 여행을 떠났다. 10월 말 제주의 날씨는 적당히 따듯하고 바람도 잠잠해서 느그작 느그작 걸어 다니기 딱이었다. 첫날은 여러 번 먹었던 몸국을 먹었고, SNS에서 유명하다는 전복김밥도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전복김밥은 다시 안 먹어도 될 것 같았고 몸국은 가성비 좋은 한 끼 식사로 여전히 괜찮았다. 커다란 감동을 기대한 것이 아니어서 실망도 적었고 예상대로여서 맘이 편안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생각한 그대로의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의 안정감이랄까!
여행 이튿날은 평소 지켜보던 아이돌의 공연영상이 공개되는 날이었다. 여행지에서도 늦게까지 먹고 마시는 일없이 일찍 잠들어버리는 일행은 화장실과 거실, 방에서 각자 조용히 잠을 깨우고 있었다. 삐사감은 조금 쑥스러운 마음에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최애의 남미공연영상을 황홀한 눈길로 찾아보았다. 몇 번 돌려봐도 멋진 영상을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봐 작게 틀고 보다가 거실로 나가보니 멍한 눈길로 뉴스장면을 쫒고 있는 일행이 보였다. 300여 명, 압사, 구조지체. 현실감이 없는 사건 앞에서 멍해지고 무감각해졌지만, 곧 과거에도 이런 일이 또 있었다는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또 이런 일이?!
숙소 근처에 있던 방주교회 지붕은 그날따라 강렬했던 햇살을 받아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반짝였고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위미리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했다. 괜히 교회 앞 너른 잔디에서 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바닷물을 쳐다보며 한없이 고요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즐겁고 평온한 마음 사이로 불쑥불쑥 떠오르는 희미한 장면들, 잔혹한 사실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는 살인사건 발생 이후 15년이 지난 시점까지 살인자와 살인자(가해자) 가족, 피해자 가족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지난했던 그들의 삶은 답답하고 속상하고 숨이 막히도록 억울하다.
어린아이를 집에 놔두고 일터에 나간 무책임한 엄마, 동생을 떼어내고 친구들과 AV비디오를 보러 나간 오빠, 아이가 날리는 연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데도 여름 더위에 찾아갈 엄두를 내지 않았던,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 아빠, 모두가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수도 없이 떠올리며 15년을 지내왔다.
가해자 가족은 살인자를 키워낸 부모로서 온갖 비난을 받으며 살던 동네를 떠나야 했고 그 이후에도 살인자가족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직장에서는 해고당하고 학교에도 소문이 퍼지면서 잦은 전학과 이사로 생활은 날로 궁핍해져 갔다. 그 누구도 살인자가족과 이웃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혐오로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이렇듯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은 살인사건을 기억하고 잔인하게 떠들어대는 세간의 시선과 입에 이중으로 괴롭다. 결국은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 모두 사건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고 같은 배를 타고 평생 내릴 수 없는, 한 배를 탄 존재들이었다.
사건의 가해자 소년 A(후미야)는 정신적 문제와 범죄구성연령에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보호소에 수감되어 7년 동안 치료를 받고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출소 후에도 범죄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보다는 자신이 살인을 하던 순간, 피해자가 죽어가던 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여 주변의 공분을 산다. 결국 또 다른 살인사건을 발생시키는, 병적으로 살의를 느끼고 제어하지 못하는 난치의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드라마는 후미야가 출소 후에도 여러 차례 살의를 느끼지만 나름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그를 자극하는 말이 15년 전 사건의 트리거가 되었다는 정황을 그린다. 남매를 키우다가 자살한 후미야의 엄마는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말을 남겼고 그 말은 후미야를 괴롭힌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을 다치게 해서 낙태에 이르게 하는 등 불안한 심리를 보이는 후미야에게 드라마는 친절하게 살인의 불가피성(당위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한다.
후미야(살인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죽이기로 결심한 히로키(피해자의 오빠)는 자신의 또 다른 살인이 슬픔과 비극의 반복, 혹은 연속이라는 점에서 중단되어야 하며 다른 결말을 그려나가길 희망하게 된다. 후미야가 제대로 된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존재가 되는 날까지 그를 돕는 일, 그래서 일곱 해나마 열심히 살아간 동생의 죽음이 다른 죽음(히로키의 살인)을 불러오는 불행을 끊어내고자 결심한다.
살인자 후미야를 쫓다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듯한 히로키는 증오는 증오를, 혐오는 혐오를, 살인은 살인을 낳는다며 후미야가 진정한 따듯한 마음을 가질 때까지 지켜보고 구해줄 것이라는 감동적인 말로 설득을 시도한다. 하지만 후미야는 엉뚱한 대답으로 히로키의 선의를 거절하고 히로키와 후미야의 여동생은 아연실색한다. 후미야의 이상행동에 한 사람은 미친 듯 큰소리로 웃고 한 사람은 처첨한 눈물을 보인다.
태어나지 말았다면, 어린아이를 두고 일터에 나가지 않았다면, 친구들과 놀러 나가지 않았다면, 아이 곁을 줄곧 지켰다면.... 이 모든 가정이 사건의 무거움과 남은 자들의 회한을 말해준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끝없이 이 잔인한 가정에 시달리며 삶을 살아간다. 작년 10월의 그날, 우리가 제주에서 따듯한 가을을 즐기던 그 시각에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상성을 벗어난 사건이 일어났고 그때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무의식 중에 제멋대로 떠오르는 무수의 가정 속에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자기를 미워하고 탓하면서 자신을 잃어가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국가에 실망을 넘어선 분노를 표출하다가 지치지는 않았을는지?
드라마를 보는 도중 슬픈 결말을 다시 써보겠다는 히로키의 결연한 결심이 막연했지만 가슴이 울렁대는 설렘이 있었다. 히로키가 사적복수를 멈춰 살인이 살인을 낳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면 그건 오롯이 히로키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슬픈 사건을 끊어내려면, 슬픈 사건의 결말을 다르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는 일상적인 안전이 무너지는 일을 목도하지 않으려면 우린 어떤 일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