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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ul 26. 2023

삐사감룩의 완성(feat. 안경)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고도근시가 되어버렸다. 시력은 2차 성징과 함께 별안간 나빠졌고 칠판 글씨는 물론 길거리에서 할머니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두 살 위 언니는 사춘기를 제대로 겪으며 벽을 팝스타의 사진으로 도배하였고, 같은 방을 쓰던 나는 강제적으로 매일 그들의 얼굴과 몸을 보면서 바비인형 같은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그들의 영향으로 언니는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했고 나는 짧고 굵은 팔다리를 항상 옷으로 가리고 외출하였다. 더불어 한창 성장하기 시작한 앞가슴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탓에 등은 점점 굽어갔다. 거기에 두꺼운 안경을 착용하면서 외모 콤플렉스는 절정에 다다랐다.


  안경은 작은 눈은 더 작게, 코는 무겁게 눌러 더 낮게 했다. 여름엔 더운 날씨를 더 덥게 해 주고 겨울엔 앞을 부옇게 만들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가뜩이나 소질 없어 힘들었던 체육시간은 안경이 더해져 나머지공부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체력장 시험을 치르는 날에 사정을 아는 선생님이 종목마다 따라다니며 내 점수를 조작해서 졸업할 수 있게 힘썼다.


  얼굴의 반은 가렸던 안경에서 해방되기로 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눈을 까뒤집어 렌즈를 끼우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집어넣자마자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왔다. 눈은 충혈되고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 서걱거림에 괴로웠다. 하지만 다시 잠자리 안경을 쓴 형편없는 외모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렌즈 착용 시 동반되는 눈의 피로감이나 관리하는데 드는 귀찮음, 안경보다는 비싼 비용 등을 감수하고서 30년을 고수했다. 20대 시절에도 옷차림이나 화장은 10분 이내에 모두 끝마치고, 장신구도 많이 착용하지 않았다. 귀걸이의 경우도 샤워하다가 분실되어 몇 번 교체했을 뿐 꾸미는데 공력을 들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나에게 렌즈 착용은 자신을 꾸미는  ‘최소한의 치장’이었다. 안경을 쓰고 밖을 활보할 때는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눌러쓰고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나는 안경 쓴 성시경을 좋아하고 유재석처럼 안경이 오히려 얼굴을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일 년여 전부터 눈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맞이한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갑자기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흘려내려 모든 옷주머니에 화장지뭉치를 준비해서 다니게 되었다. 첫 번째 방문한 안과에서는 코뼈를 뚫어 눈물관 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과격한 진단을 했다. 어차피 보존적인 치료나 일시적인 증상의 호전은 있겠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은 냉정했다. 단번에 대학병원에서의 수술을 받아들일 수는 없어 다른 병원을 전전했고 인터넷에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어떤 간단하고도 유효한 치료법이 있을지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면서 1년여를 보냈다.


  그동안 주변에선 왜 또 우는지 의아해하거나 병원에 가보라고 권하거나 갑자기 두꺼운 안경으로 외출하는 내 모습을 낯설어했다. 엄마는 본인도 ‘눈물흘림증’을 앓았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나는 그 반응이 서운했다. 아이는 노화가 진행되던 엄마의 얼굴이 안경 착용으로 더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애써 부인하면서도 렌즈를 끼면 훨씬 예쁘긴 하다고 결국 실토했다.


  나는 안경을 쓰면 내 외모가 상당히 달라진다고 느낀다. 마치 영화 <슬픔의 삼각형>에서 발렌시아가와 H&M를 입었을때 보이는 모델들의 표정만큼 말이다. 그렇지않아도 딱딱한 사감같이 차거운 인상을 안경이 완성하는 느낌마저 든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렇다.

https://naver.me/xuCp6pQj

  

  최근에 눈물관에 실리콘을 삽입하면서 더 이상 희로애락과 상관없이 눈물을 훔치지는 않게 되었다. 증상이 완전히 개선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질병에서 다소 해방되었다. 내게 갑자기 닥쳐온 이 질환은 렌즈를 끼면서 긴 세월 눈을 혹사한 것이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안경을 쓴 내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 년 동안에 두어 번 렌즈를 착용했다. 한 번은 멋진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였고 한 번은 갑자기 며칠 동안 증상이 호전되었을 때였다. 아직도 욕실 서랍장에는 쓰다 남은 렌즈가 여러 개 남아있다. 외투마다 남아있는 눈물 젖은 휴지뭉치를 발견할 때면 헛웃음이 난다. ‘뭣이 중헌 지’ 모르고 살아왔지만 오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그럭저럭 살아간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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