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is 의 독거 에세이 4 ㅡ 동화가 아닌 현실, 독거
어제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다. 기본적인 청소, 빨래, 설거지가 두세 번씩 돌아갔고 가구 옮기기, 서랍 정리, 서류 정리, 업무 정리, 각종 요금 납부, 식재료 정리... 새벽 4시 반까지 해도 일이 안 끝나서 그냥 쓰러져 잤다. 책 리뷰도, 영화 리뷰도 뒤로 밀리고... 내일은 꼭 책을 읽자고 다짐을 하고서...
아침에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읽었다. 짧은 생활 만화가 연이어진 형식인데 치매노인 부양가족, 편부모 가정의 미혼 손녀, 독신녀 등 다양한, 사회에서 소수가 아니지만 소수 취급받는 사람들의 담담하고 깊은 고민이 그려진다. 작가는 69년생 오사카 출신이고 수필과 만화로 30~40대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여성 혐오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이 일본의 독자들에게 준 울림은 따스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가끔 SNS에 올리는 사색 하는 글과 화려한 여행 사진, 그럴 듯한 저녁 식사와 책 얘기들은 분명히 내 얘기지만 내 생활의 일부일뿐 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몇 달만에 어쩌다가 한 번 있는 외출 사진에도 예측 불가능한 부러움과 상상이 덧붙여 해석되고 몇 년 동안 고민하고 쓴 글도 휘리릭 원래 글을 쓰는 재능이 있어 그런 것이 돼 버린다. 실제로 어떤 친구가 자꾸만 나를 부러워하며 결혼하면 얼마나 힘든지 나열하며 세상에서 가장 힘든 건 본인이라는 사실을 강요해서 요즘엔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혼자 사니까 편하겠다. 마음대로 쉬고 여행 다니고 귀찮게 하는 사람 없고...나의 24시간이 자유로 꽉 들어찬 것 맞다. 동시에 그 모든 자유에 대한 책임도 꽉꽉 들어찼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밝고 어두운 것엔 경계가 있지만 그것을 반영하는 피사체는 하나다. 밝음만 강조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일종의 억압이고 부정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부러움을 표현하는 말들이 불편했다. '넌 원래 잘 하니까'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뭔가를 시키고 나를 치켜세우고 박수를 쳐줬다. 본인들은 안락한 의자에 편히 앉아 내 노력의 결과물을 취하면서... 세상에 원래 뭘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나를 아꼈던 사람들은 일관된 반응을 보여줬다.
힘들었겠다. 수고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이해한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넌 잘하는 게 많잖아. 난 네가 부러워. '라고 말하길래 물어본 적이 있다. 뭐가 부러운지 왜 부러운지. 그가 부러워하는 내용에 나의 노력이나 귀찮음의 무게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과정을 생략한 결과의 화려함에 눈이 부셔 눈이 먼 것일까. 그 친구가 보는 나는 전혀 내가 아니었다. 나와 만나 얘기하면 재밌고 편하다며 자꾸만 연락을 해왔지만 정작 본인은 대화를 위한 어떤 화제도, 일상을 읽어내는 어떤 성찰도 없었다. 정말로 그 친구는 내 얘기를 듣기만 했다. 한 번도 먼저 대화를 이끌지 않았다. 난 어느 비오는 날 커피숍에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남이 저지른 일 땜빵할 일이나 많지.
짧은 기사, 간단한 컷툰을 읽어내는 데에도 처절한 삶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엔 더더욱 느낀다. 알지 못하는 삶에 대한 '쉬운 환상'이 당사자들에겐 유리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알아야 하는 이유는 모르는 이들 때문에 멀쩡하게 똑같이 힘든 일상을 버티는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쉬는 날이었고 쉬는 날 독거인들은 돈 버는 날 하지 못해서 밀린 집안일을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 있어서 쉬는 날 제대로 못 쉰다면 가족과 떨어진 사람은 가족이 곁에 없어서 쉬는 날 제대로 못 쉰다. 독거인이라 힘든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될지언정 독거인이라 시간이 많아서 도움이 되진 않는다.
타인의 눈으로 자기를 바라볼 줄 모르고 나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위험하다.
너무나 선명한 현실과 막연한 환상을 비교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독거인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는 살고 있는 당사자조차 정확히 인지하기 어렵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타인은 오죽할까. 부디 가족 중심적인 삶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독거인의 삶을 천상의 삶으로 칭송하기 말아주기를...
책 속에서 40살 회사원 여성이 13년 만에 사귄 괜찮은 남자친구에게서 임신 가능성 진단서를 받아달란 요구를 받는다. 여성은 알았다고 하고 낭성에게 같은 것을 요구한다. 남성은 '나도 필요해?'라고 말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여성은 남자 친구와 헤어질 것을 결심한다.
'뿌리가 다른데 같은 꽃이 필 리가 없잖아.'
그녀가 차라리 미혼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삶의 형식이 다르더라도 적어도 삶의 태도는 같아야 연대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독거가 뭐라고 계속 이 주제로 글을 쓸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살아보지 않은 이상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일상이 우리의 상식이 되는 방법은 서로를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에겐 의미 있는 작업이다. 독거인은 미혼이란 뜻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것을 명확히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고 난 그런 의식과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의 의식과 언어엔 책임이 있다. 난 나를 규정하는 환경을 향해 나를 똑바로 보여줄 책임을 다하고 싶다. 아무리 투덜거려도 각자의 삶에는 남과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함이 있다. 그걸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경을 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부러움의 표현은 신중해야 하고 한정적이어야 한다. 부러워하기 전에 본인의 전제가 사실인지 환상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결혼하지않아도괜찮을까
#마스다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