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2019년이 빠르게 지나갔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12월이었고 갑자기 수업과 북클럽 일정이 비는 상황이 생겼다. 2018년에는 매달 여행을 다녔다. 그보다 2년 전에는 5주 동안 해외에 있기도 했었다.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또 4주간 여행.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랬는지 스스로 신기하게 느낄 정도로 대단한 열정이었다. 그러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정신없고 힘들었던 시간만큼이나 별로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좀 아쉬움이 남았었다. 딱 1주일의 여유를 두고 갑자기 시간이 난 건데 막상 어디로 여행을 가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외로 가자니 심리적으로 좀 지쳐 있었고 국내로 가자니 아는 곳이 없고 이럴 땐 제주도지. 제주도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제주도에 계신 페친들에게 말날 수 있는지 메시지를 보냈다. 일단 봄에 갔다가 너무 좋아서 다시 오려고 마음먹었던 곳. 거기로 가야겠다.
대평리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하는 곰씨비씨 호스트님과 처음으로 통화를 하게 됐다. 내가 어버버 하는 동안 이것저것 제안하시고 걱정하지 말라며 대화가 착착 진행되더니 첫날과 둘째 날 스케줄이 대충 확정됐다. 그리고 호스트님도 알고 나도 아는 <시가 있는 골목 책방>의 저자이자 시골 책방의 주인장이신 수홍님과 신속하게 약속이 잡혔다. 그날 오후에는 여행작가이신 쨍쨍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순식간에 제주도에서의 6일간 일정이 빠듯하게 잡힌 후에 여행 간다고 페북에 자랑을 했더니 마침 페북 절친 영미님이 제주도에 출장을 가신다는 것이다. 서울 살 때는 그렇게 외롭고 대화 나눌 사람도 없는 나였는데(빼고 다 바쁨) 제주도는 나에게 행운의 장소인 걸까. 벌써부터 마음이 좋다. 목소리만 들어도 든든한 호스트님만 믿고 별생각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드디어 오늘 2019년 12월 15일 일요일. 제주도 도착.
제주 국제공항에서 대평리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 600번 리무진 버스를 타고 중문 관광단지 입구에서 내려서 바로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건너가서 53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됨. 카카오 맵에서는 예래 입구로 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환승하는 것이 가장 편함(곰씨비씨 은경님의 로컬 팁!) 배운 대로 중문 관광단지 입구에서 내려 호기롭게 건너편 정류장에 갔더니 모자 쓴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다. 제주도에서 혼자 버스 기다려본 사람? 만약에 제주도 시골 정류장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대화를 하게 되면 일단 간단한 호구조사는 각오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나 대평리 가는데 어디 가는가?"
"저도 대평리 가요. 여기서 531 타는 거 맞죠?"
"어. 그러네. 근데 40분 있다가 온다는데? 허허..."
"40분이요?"
그렇게 제주도 시골버스 배차 간격이 이어준 인연으로 예상된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어디 사는지, 무슨 일 하는지, 나이는 몇인지, 결혼의 필요성 등등. 나랑 제주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나를 제주도 청년과 결혼시키지 못해서 안달이시다... 음. 실상을 아시면 탐탁지 않아하실 것이 뻔하지만 참한 외모와 싹싹한 말투와 생존형 미소를 장착했으니 탐낼 만도 하다.(고 치고) 이런 대화를 사람에 따라 싫어할 수도 있는데 난 너무 좋다. 혼자니까 심심하고 마땅히 할 일도 없는 무계획 혼자 여행자에게 길거리 토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야말로 설화계의 무형 문화재 그 자체다. 웬만한 독서가나 평론가 양 뺨을 후려치고도 남을 재미있는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잘 나가는 펜션 사장이라는 할아버지의 조카 얘기와 함께 할아버지의 가정사가 펼쳐졌다. 원래 대평리에서 민박을 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아프셔서 시내 요양원에 계시는 바람에 이제 민박은 안 하신다고 한다. 할머니 안 계셔서 심심하시겠어요. 했더니 그렇지 뭐 하시는데 쓸쓸한 기색이 스친다. 그리고 더욱더 조카와의 로맨스에 슬쩍 박차를 가하고 싶어 하시는 눈치...
한참 얘기를 나눴고 분명히 20분은 지난 것 같은데 버스 대기 시간이 줄질 않는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택시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할아버지 모시고 같이 대평리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택시비 7천 원은 나온다면서 택시를 보내버리심. 여기서 20분만 기다리면 되는데 뭐하러 길에 7천 원을 버리냐면서 그리고 가끔 버스가 대기시간보다 일찍 온단다. 믿음은 곧 현실인 법. 신기하게 정말로 잠시 후에 버스가 도착했다. 도착했다기보다는 쌩하고 지나갈 뻔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다급히 세우셨다. 와... 로컬의 프로정신이란 이런 걸까. 나는 그냥 멍하니 있다가. 버스가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매의 눈으로 지나가는 버스 번호 다 체크하고 계셨던 것.
차창 밖 풍경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즈음에 벌써 대평리 도착. 할아버지랑 같은 방향이기도 했지만 워낙 친절하셔서 내가 가는 방향까지 데려다주셨다.
"할아버지 댁은 어디세요?"
"우리 집은 바다가 보이지." 자부심 넘치시는 목소리
"여기서 멀어요?"
"아니 여기 곰씨비씨보다는 먼데 얼마 안 돼. 여기 얼마나 있다 가지?"
"3,4일 정도 있을 거예요..."
"어... 그래 여기 바로 앞이 우리 집이야. 지나가다가 놀다가도 돼."
"... 할아버지 댁 어딘지 보고 갈까요?"
얼굴이 금세 환해지시더니 그럴 테냐고 안 멀다고 가자고 하신다. 조금만 더 걸어서 모퉁이를 돌자마자 민박집 간판 자리가 그대로 있는 깔끔한 집이 나온다. 예전에 유명했다는 동굴 민박집이다. 두 채의 건물이 있고 왼 편의 붉은색 건물은 새를 주었고 할아버지는 오른쪽 집에 사신다. 다음은 할아버지께서 설명해 주신 동굴 민박의 유래.
아직 일제 강점기일 때 일본인들은 근처 산 월라봉에 동굴을 파고 잠복해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패전하고 다 돌아갔는데 그때 할아버지는 15세였고 (현재 90세. 정말 정정하심) 할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산에 올라가서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을 찾아서 일본인들이 버팀목으로 쓰던 나무를 떼어다가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굴 민박. 당시에 주변에는 다 초가집이었고 이 집만 제대로 골격이 있는 집이었고 지붕도 대마도에서 기와를 구해다가 얹었다고. 그래서 주변에서 가장 번듯한 집이라 초기에 여행객을 받거나 할 때 꽤 이름 있는 민박이었다고 함. 할머니와 오랜 세월 민박을 하면서 지냈을 텐데 들어와서 차 한잔 하고 가라며 권하셔서 잠깐 들어가 본 집이 참 단출하고 깔끔했다. 할머니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져서 발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여행기도 쓰고 사진도 찍으라면서 엄청 적극적이신 할아버지. 언제든지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는데 017이다. 내 휴대폰에 유일하게 저장된 017 휴대폰 번호. 내가 오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했는데 덕분에 제주도 토박이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역사의 한 자락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마당이 넓고 고양이가 많은 곰씨비씨 게스트 하우스. 멀리 앉아서 계속 쳐다보지만 절대로 만질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10여 마리의 고양이들. 게스트하우스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 고1인 이 집 아들이 들어왔다. 손님이 많이 오가서 그런 건지 천성인지 서울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청소년들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와 말투와 표정을 보고 솔직히 처음엔 내심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원래 아는 사람 대하듯 인사하더니 이거 드릴까요. 저거 드릴까요. 음식을 권하는데 그게 다 본인이 만든 티라미슈와 호두 파이와 카스텔라였다.
"요리하는 분이신가요?"
"아니요. 저 주말마다 여기 마을 회관에서 하는 베이킹 수업 들었어요."
그리고 나 저녁 안 먹었다고 투움바 파스타 해주겠다면서 본인은 배가 아직 안 고프니 기다리라면서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했다. 얼굴은 중학교 2학년처럼 앳된데 어쩜 저리 사람 대하는 게 능숙한지 직업이 직업인지라 자꾸만 신기하게 보게 됐다. 곰씨비씨 2세인 데다가 나한테 이모라고 부르니까 곰비 조카라고 부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 분들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며 치킨을 먹기도 하고 역시나 키가 너무 커서 5학년 같은 3학년 초등학생도 엄마와 잠시 들렀다 가고 뭔가 의견을 나누다가 은경님은 마을 회의하러 가시고 나랑 남자 사장님이랑 곰비는 고양이랑 놀다가 떠들다가 요리를 하다가 글을 쓰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곰비랑 장 보러 편의점에 다녀왔는데 내가 타로를 볼 줄 안다는 것에 너무 흥분한 곰비는 자기 연애운 좀 봐달라기에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니까 그런 거 없고 누구라도 좋으니 그저 있기만 하면 된다고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웃겨서 길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왜 이렇게 진지하냐고 ㅋㅋㅋ 곰비가 해준 저녁은 정말 훌륭했다. 아까 티라미수를 먹어보고 짐작은 했지만 정말 깊은 맛이 나는 스파게티였다. 그리고 서울 살면서 김치 떨어진 지 두 달 되어서 김치가 그리웠는데 오랜만에 먹어본 김치... 와 이 정도면 제주도가 그냥 고향 같은 느낌.
여행 오기 전에는 아무 계획도 없었는데 막상 오니까 정신 차릴 시간도 없고 벌써 만날 사람이 너무 많다. 와서 조용히 책이나 마무리해야지 했는데 에피소드 두 개라도 마무리하면 다행이겠다. 싶다. 좀 전에 편의점에서 사이다 사 가지고 오면서 곰비에게 제주도에서 살면 어떠냐고 물어봤었다. 곰비는 무엇을 물어봐도 즉석에서 답을 한다. 서울에서 오래 국어를 가르치고 청소년과 어른들에게 독서와 토론을 지도하면서 지칠 대로 지쳤던 나는 곰비와 대화하는 시간이 무슨 치료제를 맡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말의 깊이나 내용을 떠나서 그 자유로운 검열 없는 말하기가 너무 좋다.
"뭐... 여기도 계속 살면 익숙해지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그냥 좋은 것도 다 평범해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또 그 평범하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긴 하죠."
"그러네... 그런데 또 계속 제주도에 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는 것이니까 여기 사는 동안은 좋은 곳에서 사는 거라는 걸 알고는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맞아요."
서울에서의 내 삶도 그렇겠지. 나에겐 버겁고 지겹고 지옥 같은 날들이 많았지만 누군가는 너무 살고 싶은 곳일 수도 있고 내가 놓치는 많은 만남과 대화가 도처에 숨어 있는 곳일 것이다. 지난 1년 간 여행을 가서조차 밖에 안 나가고 그냥 숙소에서 쉬고만 싶었었다. 그게 불과 두 달 전인데 이렇게 돌아보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감각적으로 다른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