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11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와 한 약속을 어겼다. 약속을 어긴 자체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날 그는 해명을 하거나 오해를 풀려고 애쓰지 않았다. 실수에 대한 명확한 사과 없이 그걸 만회하기 위한 노력으로 상황을 넘기려는 행동만 반복했다.나는 대화를 요청했고 그는 말도 없이 어긴 약속에 대한 해명도 없이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가야 한다면서 깍듯하고 구김살 없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나 역시 저녁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그 약속 장소로 가면서도 계속 이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번도 당해 본 적 없는 무례한 태도에 얼이 빠져서 그리고 서운하고 화가 나서 넋이 나갔다. 서운함과 분노에 눈물이 났다.
약속 장소는 멀었고 초행길이었고 난 정신이 없어서 자꾸만 길을 잃었다. 겨우겨우 찾아갔을 때는 이미 많이 늦어서 모임이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그날 간 곳이 여행가 쨍쨍님의 여행 강의하는 곳이었다. 쨍쨍님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밝은 에너지로 좌중에 웃음을 주고 있었다. 다들 즐거운데 난 좀 멍해 있었고 아마도 표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배도 고팠고 머리도 아팠다. 사람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저분은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그게 나의 첫인상이었다.
모임이 곧 끝나고 자리를 옮겨 다들 바로 옆의 전집에 뒤풀이를 하러 갔다. 쨍쨍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오래 하신 여성 여행 가다. 20년 동안 60개국을 여행했고 여행에 대한 책이나 강의를 하고 계속해서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난 사실 쨍쨍님을 잘 몰랐는데 제주도에 여행 갔다가 누군가에게 그분에 대한 얘기를 듣고 페북에서 팔로우를 했었다. 별로 교류는 없었다. 어느 날 쨍쨍님이 내 글을 읽으셨던 것인지 메시지를 보내셨고 책을 보내 주셨다. 몇 달 후에 서울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꼭 가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는 중이었다. 가까이서 본 쨍쨍님은 털털하면서도 다정하셨다. 내가 길을 잃어서 너무 늦었다고 말했더니
"아이고. 너무 힘들면 안 와도 되는데 너무 꼭 다 하려고 할 필요 없는데~."
라고 하셨다. 힘든데 뭐하러 오냐 이런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 지키려고 애쓸 필요 없고 힘들면 안 할 수도 있는 거라는 말이었다. 오해 없이 들리는 말투와 표정에서 이미 그런 대화를 많이 해본 듯한 내공이 느껴졌다. '나보다 훨씬 어른인 이 독신 여성은 어떤 삶을 살아오다가 여기 내 앞에서 내 표정과 말을 읽고 있는 것일까. '
'내가 너랑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하냐.'라는 태도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나와 한 약속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너를 챙겨.'라는 말로 조금 위로를 받았다.
그때의 나는 참 모순적이었던 것 같다.
뒤풀이에 함께한 분들은 서로 아는 분들 같았고 쨍쨍님이 날 좋게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집이 멀어서 나는 먼저 일어났다. 그게 내가 쨍쨍님을 직접 본 유일한 날이다.
제주시 바라나시에서
지금 어디예요?
시간이 흐르고 난 계속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 사람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고 낯을 가리는 나는 넉살 좋게 연락해서 방문하는 건 꿈도 못 꿨다. 쨍쨍님이 집을 사고 고치고 꾸미는 과정은 페북을 통해 봤다. 그러다가 제주도에 사는 '시골책방' 지기님과 페친이 되고 그러다가 시골책방 옆에 있는 '꿈꾸는 섬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과도 친해지고 제주시내의 '커피 동굴' 사장님과도 알게 되면서 제주도에서의 인연이 조금씩 쌓였다. 어떤 사람은 친구로 어떤 사람은 그냥 고객으로 시골 책방 주인인 김 선생님은 나에게 종달리나 대평리 함덕 등 제주도 곳곳을 소개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제주 여행 스킬을 쌓아갈 수 있었다.
가끔 사람들과 인사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지난 봄에도 여행을 왔다가 제주도 종달리를 소개받고 거기서 걸어서 하도리로 넘어가는 도보 여행을 했다. 여행이 모두 끝나고 서울에 돌아와서 여행기를 포스팅했는데 오후에 쨍쨍님에게서 빨리 전화 달라고 메시지가 왔다.
"거기. 어디예요? 나 지금 어디어딘데 오늘 이런이런 행사가 있는데. 같이 갑시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오세요~."
내가 제주도에 혼자 여행 가서 여행 중에 포스팅을 한 줄 알고 챙겨주려고 연락을 주신 거였다. 이미 서울이라서 갈 수는 없었지만 그날에야 내가 제주도에 갔을 때 쨍쨍님한테 연락해도 된다는 걸 알았다.
"쨍쨍님 저 제주도 자주 가요. 다음에 갔을 땐 꼭 연락드릴게요~"
"아이고 내가 제주에 있어야 할 건데~. 다시 꼭 연락하고 잘 지내요~."
쨍쨍 랜드
그리고 다시 몇 달이 지나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인사하러 가도 될지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에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내가 제주도 가 있는 일정 내내 본인은 네팔에 여행을 가 있으니까 쨍쨍랜드(쨍쨍님의 블링블링 하우스 애칭) 쓰라고 하셨다. 장기로 집을 빌릴 사람 구하려고 지금 포스팅했었는데 내 메시지를 받고 바로 게시물을 내리셨단다. 그런데 그때 이미 대평리의 곰씨비씨 게하에 머물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현재 갈 수 있는 날은 이틀 정도. 그래서 장기로 있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양보하기로 했었는데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일정이 조정 되어서 이틀만 있어도 묵어도 된다고.
제주도 대평리에서 3일을 보내고 쨍쨍 랜드로 떠나던 날. 지도를 보니 참 먼길. 우선 함덕에서 시골 책방 지기님을 만나고 버스나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못 미더웠는지 시골 책방 지기님이 아예 데려다 줄 작정을 하고 오셨길래 함께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는데 와... 혼자 여행을 계획하면 초지일관 바다만 찾는 나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겠구나 싶다. 나무와 하늘과 현무암이 계속 이어지는 시골 마을에 도착해서 돌돌돌 거리며 케리어를 끌고 사진으로만 보던 쨍쨍 랜드에 들어섰다. 오렌지빛 현관문 녹색 유리문, 녹색 벽, 붉은 방, 푸른 방, 옷방과 기념품 방 등등... 사진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오니까 그 현란한 색상 가운데서 묘한 통일감이 느껴져서 안정감이 들었다. 쨍쨍님의 지시대로 집에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 밥주고 물주고 이런저런 세팅을 같이 와 주신 분께 인증샷을 부탁했다.
이유 없는 관계
시골 책방 지기님이 가시고 혼자 있노라니 여행 중이라 바쁠 텐데도 쨍쨍님의 섬세한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보물찾기 하듯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즐기라고 여행자의 집이니까 글로 써도 되고 포스팅해도 된다고 어느 방에서 자도 상관없다고 하셨는데 내가 기념품 방에서 잔다니까 거기 옛날 애인들 제자들 편지 붙여놨다고 편안히 지내라 하신다. 딱 한 번 본 사람에게 집을 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기 삶을 스쳐간 모든 사람이 곁에 남진 않았을 텐데 쨍쨍님의 방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들과 연인들의 기억이 모두 같은 격으로 남겨져 있었다. 쨍쨍님에게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지언정 그 기준이 함께한 시간의 무게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낯선 나를 낯설지 않게 여겨주는 거겠지. 사람에게 치이고 지쳐서 마음이 닫힐 때마다 이유 없이 마음을 열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다시 그 문을 열게 하고는 했다. 정말 많은 빗장을 가로질러 놓았던 마음의 벽이 조금씩 꾸준히 집요하게 무너진 데는 타인의 이유 없는 호의가 큰 작용을 했다. 상처는 의심을 부르고 의심은 방어를 낳는다. 그리고 친절과 배려는 희망과 기회를 만든다. 난 정말 오래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피곤했다. 매우.
궁금해
다음날 쨍쨍 랜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면서 사람은 사람에게 어떨 때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곰씨비씨에 있을 때 호스트 언니가 나에게 냥냥이는(내가 야옹이 좋아한다고 이렇게 별명이 지어짐)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냐고 물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볼수록 궁금한 면이 있다는 말을 해줬는데 나도 마침 궁금함이란 것이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람들에겐 정말 중요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알아갈수록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가 있어야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 세계를 확장할 수 있어야 우리는 타인에게 낯섦과 궁금함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궁금함이 끊임없이 생산된다면 관계가 유지되고 이어지지 않을까? 관계가 시작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이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이끌던 궁금함을 어느 순간부터 상대에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하루하루를 서로에게 강요하면서 전혀 즐겁지 않은 안정의 극치를 영원에 못 박는 관계는 서서히 썩어갈 수밖에 없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맺어가는 관계 역시 한 번은 맺어질 수 있고 그 시간이 즐거울 수 있고 누군가 나에게 매력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유지되고 확장되려면 여행 아닌 내 삶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변화해야 가능할 것이다. 내 삶의 충실함이 환영받는 나를 꾸준히 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소중했던 누군가가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긴 흔적은 어떤 형태로든 내 일부가 되게 돼 있다. 그 흔적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의 책임은 상대가 아닌 내가 지는 것이다. 그걸 실제적으로 받아들여야만 원망을 배제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쨍쨍님의 추억이 가득 담긴 그 방에서 친구와 새벽까지 대화를 나눴다. 어떤 주제가 나오든 나는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거기엔 근거가 있고 그 근거는 논리를 만들 거란 생각에 하지만 언제나 왜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이 오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한 그 사람은 몇 년 동안 아무런 사이도 아닌 나이게 반복적으로 일방적인 친절과 실수를 반복했다. 감사함과 원망이 어지럽게 출렁거렸다. 더 이상 지인도 아닌 사이가 된 후에도 그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늘 궁금했다. 난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했고 항상 그 답을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무례도 호의도 이유가 없다. 각자가 선택한 마음의 태도가 그렇게 시켰을 뿐. 어떤 합리도 그곳엔 없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갔던 카페에 가서 이 여행기를 쓰면서 나름의 답을 적어나간다.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다. 지금 내가 선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사람은 모두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과의 역사가 만들었다. 생각이 많으니까 고민이 있고 고민이 있으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삶을 이성적으로 이끌 수도 있는 것이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좋지 않았던 관계를 정리하면서 생각한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다가오는 친절의 건강함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