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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Oct 24. 2020

코로나 이후 첫 제주여행

아랍 식당과 고양이와 회

한 달에 한 번은  꼭 거주지를 이탈해 돌아다니는 버릇을 들여놨는데 2020년 봄에 갑자기 닥친 코로나 때문에 거의 1년을 여행은커녕 본가에도 못 들른 채 살았다. 원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직업인데 생각해 보면 올 한 해는 내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고 계획에도 없던 일은 정말 많이 일어났다.

구름이 멋졌던 제주 공항


클래스 101에서 어른들을 위한 비밀 동화방 클래스를 오픈하게 되면서 8월에 기획하고 9월에 촬영하고 영상 편집과 자막 작업까지 달려오는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다. 쉬는 날은커녕 일하는 날은 밥을 먹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잘 못하고 지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어차피 이렇게 할 거 나 혼자 하려고 했어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과 함께 하든 그룹과 하든 혼자 하든 어차피 일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가장 많은 상상을 가진 사람 가장 많은 책임을 가진 사람이 진행하고 마무리 짓게 돼 있다. 그런데 왜 혼자서는 그렇게 나를 제한하고 살았을까. 그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에너지에 비해 나는 열정이 너무 적다.


 어쩌면 이런 모든 과정이라는 것은 자기 객관화를 위한 시도로서의 의미가 더 크단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는 몇 천분  분량의 영상 편집과 자막 작업 커리큘럼 작성을 빠른 시간에 뚫고 나오면서 많이 배웠다.  이 일을 같이 한 북클럽의 단 한 명의 스탭과 많은 대화를 했는데 우리가 합의를 본 것은 일을 그만두거나 안 하려는 옵션이 아예 없는 사람만이 반드시 일을 완수한다는 것이었다. 그만둘  거면 시작도 안 하고 대충 할 것이면 안 하고 마는 성격이어야 일을 마무리 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서 약 3일 분량의 작업 분량을 남기고 다음 주 화요일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온라인 클래스 오픈을 앞두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왔다.

제주 공항에는 나를 ''귀한 손님'이라며 마중 나오신 시골 책방 지기님이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나오자마자 나를 바로 알아보셨다. 지난번 여행 때는 버스가 너무 안 오는 데다 사람도 많아서 정말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버스도 바로 오고 자리도 많았다. 제주시내에 있는 아살람 레스토랑에 갔다. 아살람은 예맨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하는 아랍 전통 요리를 하는 곳이다. 내가 육식을 하지 않아서 선택된 식당이었다.


식당 가는 길에 길고양이에 정신 팔려서 잠시 놀다가 들어갔는데 우리 빼고 네 개의 테이블에 모두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 우린 볶음밥, 콩요리, 샐러드 등 한 다섯 가지를 시켰다. 둘 다 아점만 먹고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 정말 배가 고팠다. 그래서인가...  정말  맛있었다. 솔직히 음식 이름엔 관심이 없어서 맛있게 먹기만 했는데 이쪽 요리로는 기본 요리인 요구르트를 넣어 만든 콩요리가 진짜 풍미가 장난 아니었다.  모든 요리가 풍성한 향신료의 은은함과 짜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서 담백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이국적인 향과 정말 그 지역의 서민들이 다닐 것 같은 자연스러운 인테리어 때문에 여행지 도착 한 시간 만에 외국에 와서 하루는 더 지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 정도 지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들렀던 깔끔한 현지 식당들이 떠오르면서 여러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원래는 구름이 너무 예뻐서 노을을 꼭 보려고 했는데 식당에서 정신 못 차리고 먹고 떠들다가 시간을 놓쳤다. 그래서 내일 일정을 위해서 일찍 숙소에 들기로 하고 버스를 타고 조천리로 들어왔다. 조천리는 이제 내가 제주도 오면 반드시 가장 먼저 들르는 아는 동네가 되었다. 아는 사람들도 있고 아는 식당과 카페도 있고 아는 산책로도 있고... 그런데 아쉬워서 조천 포구 산책을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시골 책방님을 따라서 여기저기 누비다 보니 시원하고 좀 강해진 바닷바람이 들었다. 이럴 줄 알고 든든하게 감싼 탓에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정말 몇 십일 만의 휴일이라서 너무 맘이 편안했다.


포구로 들어서자 고양이들이 회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정말 진풍경이었다. 두툼하고 넉넉한 회가 펼쳐 저 있고 고양이들이 익숙한 듯 흩어져서 먹고 있었다. 좀 놀고 싶어서 애걸복걸했으나 잘 먹고 잘 살아서 그런지 곁을 주지 않았다... 아까 아살람 식당 근처 고양이들은 막 애교도 부리고 친하게 굴었는데... 더 놀다 올걸... 아무튼 그래도 조금 옆까지는 다가와 줘서 살짝 감동.


조용하고 운치 있는 밤 골목을 돌아서 숙소에 돌아왔다. 숙소는 조천리 꿈섬 게스트 하우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도미토리 룸이 1인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4인실을 예약했는데 나 혼자만 묵는다는 것을 와서 알게 됐다. 꿈섬 게스트 하우스도 조천 오면 꼭 들르는 곳. 거기서 테라스 일몰 뷰가 가장 아름답다. 화장대 열면 저렇게 개인 용품이 섬세하게 구비돼 있음. 1인실 겨우 2만 5천 원인데 너무 미안하다...

이렇게 첫 밤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10 시도 안 됐는데 이제 자야 겠다. 너무 피곤하다. 여기 오느라고 밀린 일 하느라 며칠 못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수업까지 하느라 너무 달리다 왔다. 솔직히 아까 이거 쓰기 시작하면서 내적 갈등이 정말 심했다. 너무 피곤한데 그냥 잘까 하는 생각을 두 단락 넘게 쓰면서도 계속했다.  역시 글 쓰는 건 쉽지 않다. 단순한 기록인데도...


내일은 함덕에서 브런치를 먹고 산책을 하고 바다 풍경을 즐기다가 조천에 와서 지난번 들렀던 맛있는 낙지볶음 집에 갈 계획이다. 벌써 침 고인다. 고양이 간식을 많이 사들고 올걸... 후회가 된다.


여행 오니까 좋다. 파도 소리도 바닷바람도 조용한 밤공기도... 도미토리 들어가서 영화 봐야지~


어른들의 비밀동화방 가기


한 점 집어드신 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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