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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Dec 31. 2020

코로나 이전의 북클럽 일기

2019 마지막 독서모임을 마치며

북클럽 호담서원의 올해 마지막 모임을 했다. 그동안 해 온 독서 토론 중 가장 자유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몇 년 간의 독서 토론 활동 중에는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재미없고 고역인 시간도 많았다. 자기모순을 인정하려 들지도 않으면서 감추지도 않는 사람들은 인정 욕구와 불안이 블랙홀을 만들어서 우주의 에너지를 다 빨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곤 하는데 난 그럴 때마다 참으로 멍청한 대처를 해왔었다. 이제는 내가 그런 상황을 피하거나 사람을 거르는 방법에 조금 능숙해지기도 했고 나나 멤버들이나 많이 성장하기도 했다.

  북클럽을 하면서 성장했다고 하면 독서력이 엄청 늘거나 지적으로 어느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본인의 현실적 독서력을 인정하고 아는 만큼이라도 제대로 소화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는 뜻이 더 강하다. 거품을 빼고 허세도 버리고 강박과 억압도 버리는 것이 진짜 성장이다.

  진행자인 내 입장에서 무엇을 버렸나 생각하면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결과 깊이로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포기했다기보다는 정신을 차렸다는 의미가 크다. 난 완전히 독립된 생활권에서 100퍼센트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내 사고와 언어를 성장시켜 왔다. 허락된 상황이 그것뿐이라서 어쩔 수 없었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과정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독자적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책을 읽었는데  왜 누군가는 명백하게 쓰여 있는 사전적 의미조차 읽지 못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사회심리적 반응에 상당히 민감해졌다. 사람들이 자기의 세계관으로 모든 것을 재구성한다는 것, 공감보단 감정이입이나 투사를 더 많이 한다는 것, 감정이 먼저 결정하고 사고가 나중에 따라간다는 것을 이론이 아닌 호흡으로 느끼고 판단한다. 함께 언어를 연마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각지대가 명징한 인지의 영역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안다.

북클럽 활동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뇌는 사회적 환경에서 더욱 활발하게 반응한다는 것인데 이건 책이나 공부를 통해서 아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 존재는 그냥 뇌의 작용 그 자체였고 그걸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감정과 사고 육체와 삶의 질이 결정됐다. 몇 년 동안 축적되는 지적 활동과 소통의 결과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무서울 정도로 정직하고 잔인하고 경이로웠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일어난 일만 관찰해도 그랬다. 겨우 몇 년 만에 나는 가치관도 관계 형성 능력과 방법도 지적 능력이나 정서 상태도 달라졌는데 독서와 토론이 큰 영향을 끼쳤다. 게으름의 결과는 처참했고 꾸준함의 결과는 예측을 벗어났다.

독서와 토론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냐고 탁상공론 아무리 해봤자 의미 없다. 자기 내면을 드러내고 사고의 틀을 박살내고 가치관의 방향을 틀어버리고 감정을 괴롭히고 이성의 활동에 채찍질을 하는 독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다 못해 망가뜨릴 수도 있다. 독서는 위험하다. 감당 못할 이상을 욕심부리며 흡입하다가 인지부조화에 빠지면 멀쩡하던 사람도 염세주의와 불안의 늪에 빠져 버릴 수 있고 단지 책을 읽고  정직하게 반응했을 뿐인데 삶의 노선이 바뀌어 버릴 수도 있다. 여행이나 직업이나 종교나 철학적 행위가 그렇듯 독서도 사람을 변화시키고 위험하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토론은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신념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을 괴롭혔다. 지금은 그 공평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르게 접근하고 있고 조금씩 점검받는다. 진짜 공평한 것이 무엇인지 진짜 솔직한 것이 무엇인지...

  요즘 함께 읽고 있는 소설은 문학 작품인데도 철학적 서술과 반어 역설이 많고 신판 번역은 좀 어이없을 정도로 오역이 많아서 영문판 대조를 제공해가면서 읽고 있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원어로 읽어야 쉽게 읽혔을 문체라서 (서사를 이끄는 인물 중 한 명 캐릭터가 문법 성애자에 문학적 표현으로 이중삼중 가면을 쓴 사람) 도저히 토론 수준의 문제의식에 도달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그런 생각 자체를 지양했었다. 모두는 공평하고 다들 열심히 읽으면 알아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만 사람을 대했다. 하지만 그건 공평한 것이 아니다.

난 이미 수십 번 읽고 토론하고 글로 쓰고 해체하고 재조립한 문장들. 4시간 또는 5시간의 토론을 위해서 준비한 시간의 총합은 몇 백 시간에 이른다. (과장 없이) 이전의 나는 그런 내가 사람에게서 불러일으키는 당혹감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어제는  정제된 1시간의 강의를 자연스럽게 토론 중간에 삽입시키고 바로 대화로 이끌었다. 이전과 이후의 문제 제기와 다양한 의견의 공방은 나 아닌 멤버들이 담당했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이어졌고 우리가 도달하려 했던 지점에 안착할 수 있었다.

어제 모임을 끝내고 집에 가기 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이제는 제가 갑자기 없어져서 우리가 이 모임을 지속하지 못한다 해도 각자 문제없이 독서를 하고 책모임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그럼요. 지금은 옛날 같지는 않죠."


북클럽 호담서원에도 앞으로는 다양한 성격의 그룹이 만들어지겠지만 장편 시즌을 함께 해온 어제의 사람들은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책 읽기를 배운 사람들이다. 내가 하는 일에 어느 정도의 교육적 코드가 들어 있고 어느 정도의 지도자 양성 과정이었다는 것을 4년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인정하게 된다. 교육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내가 스스로를 그만 부끄러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돌아오면서.

그리고 나 역시 항상 배워야 해서 그 과정에서 늘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상처 주며 성장해 왔다는 것이 미안하고 답답하다. 덜 실수하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만 움츠러들고 나를 더 드러내는 모임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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