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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Nov 18. 2021

기억



요즘에 이런저런 일로 매일매일 할 일 하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가 있어서 당황스럽다. 이렇게 바쁘게 살면 가장 안 좋은 것이 단기 기억이 뿌리를 못 내리고 다 소실된다는 것. 나는 수시로 일상을 적고 사진과 영상으로 정리하고 폴더링하고 한 번씩 보는 게 습관인데 이렇게 훌쩍 한 달이 가버리면 아예 아무 기억이 안 난다. 지난 2주간 사진 찍은 게 별로 없어서 좀 아쉬웠다. 별 거 아닌 잡글도 써두면 나중에 읽기 재밌는데 짧은 메모도 없었다. 그래서 카드 명세서 문자로 들어가서 동선을 더듬으며 밀린 일기를 썼다. 장소와 장소 사이, 소비와 소비 사이에 했던 생각과 스쳐간 아이디어들이 조금씩 복원됐다. 지난주 그리고 2주 전, 3주 전 강렬하게 생각하고 흘려보낸 수업 후의 감상도 다시 떠올랐다. 




기억은 정체성의 근간이고 관계의 증거다. 지금 나를 가장 많이 기억해주는 사람은 누굴까. 페북에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지켜본 사람들이 있다. 가끔 누군가가 예전 포스팅을 재공유하면 그걸 읽던 날의 내가 기억난다.  그럼 좀 안심한다. 이 사람에게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개인이 만드는 자아도 있지만 사회가 빚어주는 자아도 있다. 나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기억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기억 때문에, 사랑했거나 미워했거나 함께했던 기억 때문에 기꺼이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기억은 누구나 누리는 천부적인 능력이 아니다. 애정이 있고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오래된 노력과 훈련의 결과다. 그래서 난 기억하기 때문에 괴롭고 기억하기 때문에 놓지 못하는 사람을 아끼고 믿는다. 나에겐 그들이 안전하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지금 내 앞의 너는 내가 알던 네가 아니구나. 싶을 때도 한 번은 더 붙들고 한 번은 더 노력하고 싶은 것은 아마 네가 아닌 나를 위한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상대가 아닌 자기를 위한 의도로 상대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이, 아직 세상에 많이 남았길 바란다.




내가 아직 너의 좋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고 너를 경멸하기보단 아낀다고 말하면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기억이 기대로 끝나는 건 슬프지만 기억조차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난 그렇게 널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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