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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Dec 07. 2023

2022년을 돌아보며

2023년에 올리는 2022 에세이

2022 열두 달 베스트 모음집

1월 - 야누스의 달


1월은 영어로 January다. 이렇게 쓰고 보니 웃기다. 누가 모른다고… 아무튼 1월의 이름은 야누스라는 존재에서 유래했다. 야누스는 앞뒤가 모두 얼굴이다. 1월이 야누스의 달인 이유는 지난해를 떠나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성격이 있고 여전히 지난해의 기분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8세에 학교에 입학해서 지금까지 학제에 맞춰 생활해 왔기 때문에 3월이 돼야 새 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이번만큼은 1월이 바로 뭔가를 시작하는 달이었다. 유료 독서 모임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공간을 오픈하게 된 것이다.   


     시작 - 강남 호담서원 오픈   

 이 공간을 오픈한 것은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내 동화 콘텐츠 관련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었고(이 콘텐츠에 대해서는 끝도 없는 제안과 조언을 듣는다.) 그 조언을 신중히 생각하느라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 과정에서 공간 오픈에 대한 제안을 받았지만 솔직히 자신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난 모객에 대한 압박감과 열등감이 아주 심하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았다.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로운 강의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솔깃하게 할 콘텐츠들을 기획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영업을 하는 건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동업을 제안한 사람이 내가 자신 없어하는 부분은 다 해주겠다면서 나는 내가 잘하는 영역만 하면 된다고 해서 같이 하자고 했고 그래서 독립적이지만 협업을 기반으로 한 그림으로 공간을 오픈하게 됐다. 그때 시작부터 진행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냥 처음부터 내가 마음먹고 어떻게 할지 내 몸에 맞게 기획하고 구상했으면 좀 늦어지더라도 덜 고생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랬으면 난 영원히 시작을 안 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1월의 나는 그렇게 앞으로 펼쳐질 일도 모른 채 그저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 이젠 어떻게 될지 예측도 안 되는 그 코로나라는 벽 앞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북클럽이 그냥 사적인 모임으로 축소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무엇이든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완전히 망해봤자 월세만큼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시작했다.  

사업자 등록, 청소, 가구 들이기,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시작한 몇 가지 등록(이건 지금 생각하면 전혀 내가 하는 일과 맞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끝없는 청소… 입주 청소를 했지만 청소 상태는 개판이었고 오래된 건물인 데다가 이전 입주자가 입주 내내 청소를 거의 안 한 듯해서 실내 공기질이 좋지 않았다. 작업실에 오면 붙박이 가전제품과 싱크대와 베란다와 타일 구석구석을 몇 시간씩 청소해야 했다. 사람들이 크게 작게 선물들을 보내줬고 하나하나 배치하며 예쁘게 꾸며지는 공간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이 공간에 사람들을 채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압박감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심 같이 일하기로 한 사람들과 힘을 합치면 뭐든 다른 그림들이 많이 생길 거란 기대도 있었다.


매주 회의를 하고 외부 협력자와 일하기로 한 것에 집중하느라 호담서원 일은 자꾸만 미뤄졌다. 난 1월에 시작을 하려면 11월에 기획이 끝나고 12월에 홍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최소 두 달 일찍 생각을 하는데 1월이 다 가도록 수업과 강좌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회의도 다른 사람 사정으로 자꾸 캔슬되고 뭔가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드문드문 지인들이 방문했지만 원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로 혼자서 작업실을 꾸미는 일을 열심히 했다.    


작업실 운영 관련하여 여기저기 통화하거나 처리할 일들이 있었는데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일을 많이 겪었다.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직원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거나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는 듯한 기분. 하지만 강남 한복판의 대형 오피스텔인데도 아주 조용했고 환기도 잘 되고 입주 전에 바닥과 벽지도 다 새로 해서 공간은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지금까지도 여기 온 분들은 공통적으로 호담서원이 참 아늑하다고 말한다.   


     마무리   

1월에 노매드 호담서원의 마지막 시즌 종강을 했다. 2021년에 진행한 시즌은 <어린 왕자>였는데 정말 좋았다. 마지막 모임을 하면서 멤버들이 파티도 해 주고 제자였던 회원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와서 대접해 줬다. 코로나에 이리저리 치인 지난 2년은 나에게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기간이었다. 좋았던 건… '아. 이제 다른 사람들도 아무도 못 만나네' 이런 같지 죽자는 느낌?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의 장애 앞에서 코로나 때문인지 내가 하기 싫어서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나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는 한 그룹에 3명밖에 모일 수 없었고 난 주말에 일이 제일 많기 때문에 운영할 수 있는 그룹이 한계가 있었다. 오랫동안 이용했던 세미나실 있는 카페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더 이상 모일 곳이 없는 한계에 부딪쳤을 때 강남 호담서원을 열었다.

그래서 야누스의 달에 어울리게 지난 시절을 함께한 분들과 새 공간에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 너무 의미가 깊었다. <어린 왕자>는 내가 ‘오후 세 시의 여우’라는 이름으로 독서 모임을 만들고 내 가명을 호담으로 짓게 만든, 나와 인연이 깊은 책이다.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임과 갈등, 상대방의 절박함의 의미를 가르쳐준 것처럼, 그러면서 자신도 그 사막의 외로움을 달랬던 것처럼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내가 북클럽에 쏟아부은 의미이자 정체성이다. 이름이 나를 이끌어서 동화라는 세계를 열게 하고 호담이라는 이름에 안착하게 해 줬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해 준 음식을 먹고 축하 선물을 받아서 배치하고 같이 케이크를 자르고 커피와 차를 나눈 시간들은 언젠가 이 공간을 떠나게 돼도 잊히지 않을 행복한 순간이 됐다. 춘천에서 살다가 독립해서 서울에 온 사건 이후 가장 큰 사건이 올해 1월 호담서원 오픈이다.    


     송구영신 트립   

코로나 이후 집에 잘 안 갔던 나는 설 연휴에 파주 근처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가는 길에 새 해를 맞이하는 사진도 찍고 뭔가 왜 돈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는 전시 공간을 겸한 아늑한 한옥 카페에서 몸도 녹이고 검은 고양이가 허겁지겁 츄르를 먹는 밥집에서 밥도 먹고 사진 찍을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이용할 때마다 감탄하는 토요코인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가벼운 등산도 하고 추위에 떨며 밥도 먹고 예쁜 카페에 가서 잠깐 다이어리도 정리하고 또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그때는 겨울이라 너무 춥고 난 추운 걸 싫어하고 따뜻할 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돌아보니 그때 여행 다녀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들었던 음악과 햇살, 당시 나를 열받게 한 사건에 대한 성토의 시간, 가는 곳마다 몇십 장씩 찍었던 사진, 한 해가 시작되었다는 느낌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봤던 노을,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가족과 전화로 했던 새해 인사들이 생각난다. 내년에도 어떻게든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과 좋은 곳으로.


2월 - 적응과 계획의 달

 

     첫 원데이 클래스   

하염없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일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나는 나대로 원데이 클래스를 시작했다. 옛날에 같은 교회 다녔던 후배, 그 후배와 함께 온 사람, 101 심리 동화 클래스 수강생이었던 분, 우리 멤버가 추천해서 온 분 등등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했고 동화도 처음 분석해서 오픈한 <황금새>였는데 너무너무 즐거운 토론이었다. 이 동화에도 여우가 나온다. 여우는 주인공의 많은 일을 해결해 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알려주지 않고 기준만 알려준다. 주인공은 계속 실수하고 일은 점점 커진다. 사람들은 ‘왜 완벽하게 알려주지 않냐’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동화를 분석할 땐 이미 쓰인 것을 해석해서 소개하는 거라서 나도 꽤 명확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정말 좋은 조언이 무엇인지. 인간을 성장시키는 조력자의 자세는 무엇인지.


새로운 공간을 오픈하고 한 달을 지나는 시점에서 <황금새>를 읽고 좀 더 명확하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소화해 냈다면 덜 스트레스받고 더 겸허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모든 인생은 각자의 몫인데 나는 항상 너무 겁이 많고 날 도와줄 여우가 없으면 시작을 못 한다. 어차피 시작하고 나면 나 혼자 할 일들이고 어떻게든 이어가면서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소심함이다. 동화 속에서 여우와 주인공은 헤어짐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아무리 의지가 되고 나에게 도움이 된 존재여도 결국 좋은 만남은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돼 있다. 1월이 지나면서 난 이런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1월의 원데이 클래스는 몇 회에 걸쳐서 진행됐고 참가자들마다 감탄을 하면서 좋은 반응을 보였다. 난 네이버 카페와 오픈 카톡창과 홈페이지 등등 여러 가지 정비를 마무리했다. 아빠들끼리 모인 온라인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QnA 줌미팅을 요청해 와서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북클럽 홍보를 위해서 내 소개 겸 하는 거라서 무료로 진행했다. 남성분들만 이렇게 많이 모아 놓게 얘기해 본 적은 없어서 개인적으로도 흥미롭고 의미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이입 : <오자크>   

2월에 내내 넷플릭스 드라마 <오자크>를 봤다. 처음에는 전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내 스타일이 아닌 아저씨가 주인공이고 내가 몰입할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궁금해서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재밌었다. 주인공은 정직한 사람이다. 일도 잘한다. 그런데 한순간에 잘못 생각해서 마피아를 돕는 일을 하게 됐고 이후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닥치는 대로 살아남는데 집중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새로 구축되기 시작하는데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는 곳이 오자크라는 호수다. 주인공은 마피아에게 처형당하기 직전에 엄청난 집중력으로 아무 말이나 지어내서 오자크라는 곳에서 돈세탁을 하고 모든 것을 복구할 수 있다고 둘러댄다.


도시에서 지내며 한가로운 시골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던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는 곳일 뿐이었던 오자크는 낙원의 이미지에서 지옥이 되고 다시 낙원이 된다. 주인공은 자기가 선하다고 믿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담보하진 않으며 수없이 많은 사람의 삶을 구원하는 척하며 망가뜨린다. 난 이 주인공의 복잡성에 몰입하면서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시시때때로 나는 내 삶이 뭐라고 규정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하필이면 있지도 않고 설명하기도 힘든 새 직업을 왜 만들었는지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게 된 것이 도저히 내 선택 같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 비혼, 가족 없는 도시라는 거주지, 소속 없이 진행하는 일, 그에 걸맞지 않은 깊은 연구와 탐구의 시간들, 나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과의 끈끈한 연합체. 왜 이렇게 하나같이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것들로만 똘똘 뭉쳤는지 매 초마다 불만과 불안이 올라온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선택을 받은 것 같은 어리둥절함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 없이 제안을 하고 그 제안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는 무책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다 나도 모르는 선을 긋게 되고 그다음에는 어쩔 수없이 다음 그림을 그리게 되는 2022년 2월을 지나면서 뭐라고 시스템을 만드느라 아등바등했던 내가 오자크의 주인공들 같았다. 이유고 목적이고 모르겠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보는 것, 지금 돌이켜 보니 내가 2월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신 무장을 많이 했던 거였다. 2월은 이렇게 새로운 캐릭터들을 발견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3월 - 선택과 집중


     시즌 시작   

3월엔 호담서원의 새 시즌 단편책담 - <아이들>이 시작됐다. 이 시즌을 구상하면서 나는 사람들의 어린 자아를 정리할 만한 작품들을 골라서 계절과 시기에 맞게 재배치했는데 아직 멤버들이 많지 않아서 매 시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건 너무 힘들지만 덕분에 이렇게 하나하나 억지로라도 공부하고 정리하게 되는 건 좋다. 새 시즌에는 2월에는 지난 시즌에 참여하지 않으셨던 김쪼님이 다시 신청을 해서 온라인 클래스가 부활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더 이상 신청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원데이에 오려다 못 왔던 델마 님이 온라인을 신청해 주셨고 한 명만 더! 하는 심정으로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남해에 사는  블랙듀님께 따로 연락을 해서 권했다. 너무나 신기했던 것이 카톡하나 보냈는데 바로 입금하고 신청. 이렇게 호담서원에는 한 획이 된 안정적인 온라인 그룹이 탄생했다.   


     미국 김쪼님 만남   

김쪼님과는 101에서 댓글로 처음 알게 됐는데 글몸씨도 생각의 방법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정성스레 피드백을 주다가 우리 북클럽 멤버가 되었는데 단편책담 성격이 그렇다 보니 한 시즌이 너무 버겁게 느껴져서 한 시즌 쉬고 이번에 다시 신청. 그런데 3월에 한국에 잠깐 오는 바람에 나도 잠깐 보게겠다. 작업실 옆에서 샌드위치 먹고 같이 들어와서 차 한 잔 하고 홈웨어 선물도 받았다. 역시 원래 보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김쪼님 덕에 온라인이 열린 거라 아직도 고맙다.



4월 - 도전과 실망

     추리 소설   

4월에는 인천에 있는 도서관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되는 4회짜리 수업을 했다. 지난 1월 여행 때 사 왔던 <추리 소설의 역사>와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 몇 권을 읽고 원래 강조하고 있던 인지 발달에 관련된 내용을 종합하여 카레를 만들고 PPT를 만들었다. 이 강의는 도서관 활동가들 대상 강의였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내 강의를 듣고 점수 같은 걸 채우고 어쩌면 내 강의로 어디 가서 수업을 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강의 반응은 좋았고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했다는 면에서 뿌듯했지만 내가 하는 일의 깊이와 노동 강도,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1회성으로 끝나고 내가 그 기회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답답했다. 피피티 자료가 캡처될 수도 있고 강의가 녹음될 수도 있는 건 좀 불안했다. 도서관 강의비로 최고 임금으로 받았다. 사서님이 아주 프로페셔널했고 친절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좋았다.

     생일   

난 언제나 생일에 축하를 많이 받고 모임도 많은 사람이었다. 일정한 모임에 소속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삶을 접고 나서는 삶에서 사교라는 것이 사라진 기분이다. 절친이라 생각했던 애와 헤어지고 나서 더욱 생일은 혼자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지인들이 생일 낮에 만나자고 했다. 나한텐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와 친했던 서울 애들은 늘 남는 시간에 날 만났고 난 그게 서운했었다. 일부러 일을 빼고 낮에 만나서 따뜻한 봄날의 기분을 흠뻑 느꼈다. 그날 저녁 다른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도 만났는데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없어서 이제는 헤어진, 절친이었던 두 친구가 떠올라서 씁쓸했다. 저녁에는 아무도 만나지 말 걸 그랬다. 아직도 돌이켜보면 이 날은 좋은 기억에 찬물이 부어진 느낌이다.


그리고 며칠 후 생일인데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밥 먹는 시점부터 갑자기 본인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을 얘기했다. 나는 자기랑 비슷한데 자기와 달리 너무 잘 사는 것 같다고 했고 그 이유를 대는데 남 얘기 듣는 기분이었다. 확 거부감이 들었다. 내 생일이라고 만나자고 한 건 상대방인데 나한테 밥을 산 것도 아니고 모바일 쿠폰 커피 한 잔이라도 선물한 것도 아니었다. 우울증 같아 보였다. 적극적으로 상담을 권했다. 같이 있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이런 만남 감당도 안 되고 힘들다고 말했다. 저녁까지 먹고 헤어진 것이 난 최대한 배려였지만 내가 더 친절해야만 했을까.


4월은 이런 일이 특별히 많았다. '최소한 이건 알겠지. 그래도 내가 월드 비전도 아닌데 이만큼 하면 어느 정도는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은 마지막 선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상황. 예를 들어 몇 년 동안 알고 지냈고 성실하게 상대방에게 관심을 쏟았는데도 내가 쓴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든지. 내가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본인이 받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표현한다든지 그런 일을 겪으면 이 사람 눈에는 내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따지기 치사하고 아무렇지 않아 하기엔 너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일과 삶과 나 자신이 완전히 일치된 이런 삶에 대해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이는 시기였다.



5월 - 무기력력  

     여행   

4월 말에 몇몆 사건으로 너무 지쳤기 때문에 5월에 원데이 클래스를 안 했다. 그러면서 2주 동안 사람을 안 만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에 이어 큰 기대를 안고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항상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분과 만나기로 해서 보장된 일정이 있었고 조용히 쉬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날씨도 안 좋고 가는 카페마다 문을 닫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자꾸만 뭔가 결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마지막 일정으로 미뤘던 지인과의 만남이 캔슬됐다. 경미한 우울증상이었던 것 같다. 그때 북클럽에서 자꾸 눈물 바람이 나는 일이 벌어지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 많았고 동업자는 아예 대놓고 일을 안 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회의가 드는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14일 동안 대화다운 대화를 못하고 친교다운 친교는 전혀 못 누린 무기력증에 빠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춘천에라도 다녀왔어야 했지만 일에 치어서 그러지 못했고 기분이라도 전환하려고 시간이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 정신력이 소진되고 끝나는 상황이 자꾸 반복됐다. 그러면서 나는 왜 내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못하는지에 대해 서글픈 생각에 빠져들었다. 뭔가 나를 소진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아빠 모임 해체   

아빠들의 독서 모임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나에게 리스크가 많았다. 1시간 반씩 진행하기로 하고 책정한 수업료. 하지만 늘어져서 끝나는 상황 반복. 다른 시즌과 다르게 돌아가는 복잡성. 이미 있는 모임을 맡은 거라서 호담서원 분위기기로 진행하기 힘든 것. 토요일 밤에 진행하는 불편함 등등 그래도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것을 감내하고 열심히 했는데 연속해서 지각 사태가 벌어졌고 그냥 안 하기로 결정했다. 속이 후련하다. 누군가가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입장 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중단 결정을 했을 때 열심히 성실하게 했던 분들이 더 미안해했다. 몇 분은 너무 괜찮았는데 진짜 아쉽다. 어떤 모임을 맡을 때는 강사로만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 스타일로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다.

     독서   

<설탕의 역사>

<성녀와 마녀> <괜찮아, 사랑이야> <근친 성폭행, 감춰진 역사>, <내 주변의 사이코들>

<한낮의 우울>

이러는 와중에 심리, 뇌과학 관련된 책.  많이 읽었고 여성 수난 관련하여 성폭행 관련된 심리, 과학 도서와 문화 인류학 쪽 책을 묶어서 읽었다.


6월 - 재정비의 달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삶이면 얼마나 편할지 매일 생각한다. 재능이  많은 편이고 일에서 성과를 늦게 낸 적이 없고 항상 전임자들이 하던 것을 넘어서는 구조와 결과를 만들어 왔으니까. 하지만 부당하거나 비합리적인 노동은 못 견딜 것 같긴 하다. 코로나를 지나서인지 작업실을 냈기 때문인지 불편한 친구를 정리해서 그런 건지 우울한 생각이 항상 소나기처럼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잡다하고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들이 많이 터졌다. 마음을 다잡고 다회권 이벤트를 시작했고 덕분에 다음 달 모임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겼다. 하지만 이걸 정비하고 세팅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너무 소진됐다. 남들도 다 이렇게 일 하나? 6월까지 쓰다 보니 나에겐 퇴근이 너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7월 하반기 준비  

  글쓰기 클럽   

이 날은 비가 많이 왔다. 한 시간을 쭉 집중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카톡도 보고 싶고 인스타도 보고 싶고 뭔가 꼼지락거리고 싶었다. 한 시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어떤 나이든 사람들

글쓰기 클럽을 오픈하면서 몇 사람에게 실망한 달이었다. 자기들을 내가 챙겨야 한다는 식이고 아무것도 주의해서 읽지 않고 유료 서비스에는 관심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싸거나 무료인 것만 신속하게 따라와서 신청하는 게 너무 얄미운데 규칙도 안 지키길래 다 잘라버렸다. 이 사람들을 대하면서 세상의 상식과 나의 상식의 충돌. 그리고 자기에게 이로운 것과 사랑받는 것으로만 세상을 계산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본인이 남에게 이로운 영향을 받았다면 자기가 채워 줄 몫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 회로가 아예 없는 사람들…


8월 - 변화들

     머리   

머리가 너무 풀려버려서 파마와 탈색을 했다. 내가 원래 하려던 스타일이 아니어서 아직도 당황 중이다. 8월은 비가 정말 너무너무 많이 왔다. 전국적으로 수해가 나고 강남에선 집에 못 가는 사태도 있었다. 여행 계획이 있어서 출근 안 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강남에 난리가 나서 만약 출근했으면 여행 못 갈 뻔했다.   

     수업   

방학이라 평일 낮에는  청소년 독서 수업을 진행했다. 시간대가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꼭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  


문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이건희 개인전을 봤다. 지인이 같이 가자고 제안해서 간 건데 너무 좋았다. 돈이 많으면 개인이 못 가질 게 없구나 싶고 이걸 다 기증한 건 또 뭔가 싶고 그 모든 걸 두고 갔으니 허망하다 싶기도 했다. 문화와 취향, 각자의 삶의 밀도가 동등한 사람이 만나면 대화가 피곤하지 않다는 것도 너무 실감이 났다. 신선한 변화였다.  


     계약 파기   

두 건의 도서 출판 계약을 취소했다. 내가 쓴 글이 회사 단위의 큰 출판사에서도 좋게 평가되는지 보고 마케팅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집필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약 2주 뒤에 대형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9월 - 친구

지난 12월에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편지 때문에 추억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한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인데 내가 서울 오면서 멀어진… 이제 나이 들어 그때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어보니 나를 너무 아끼는 마음이 느껴 서서 펑펑 울었었다. 그날 쓴 페북 글을 옮겨 본다.


내일 만날 친구에게 쓸 엽서를 찾다가 어린 시절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같은 학교를 나와 첫 절친으로 3년 동안 내내 등하교를 같이하고 (아침저녁 내가 전날 읽은 책 얘기를 해 줬었다. )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6년 내내 일주일에 한 통씩 꼭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 아빠 때문에 지옥 같던 청소년기를 버티게 해 준 창구 같았던 존재. 우리 아빠와 달리 이 친구의 아빠는 참 다정하고 딸에게 져주는 아빠였고 의식은 못 했지만 내심 그게 나에겐 열등감이었던 것 같다. 그 애는 사리가 밝고 똑똑했다. 어리숙한 나와는 좀 달랐는데 우린 같은 동네여서 언제 친구가 됐는지 기억이 안 나게 친해졌다. 아마 내가 이끌린 쪽이었을 거다. 친하면서도 조금 어려워한 기억이 있다.

대학 졸업하고 우즈베크에 가 있는 동안 나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준, 교회 사람이 아닌 친구. 임용 준비하느라 돈이 없을 때 밥도 화장품도 사주고 부담 없이 미안해하지 않으며 만나도 됐던 친구. 내 생일에 전화를 세 번이나 했는 내가 없어서 통화를 못했고 내가 이메일을 잘 안 해서 썼다는 편지. 같이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같이 가보자고 보고 싶다고 힘내서 잘 살자고 요즘 살이 쪘고(하나도 안 쪘는데)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쓰여 있다. 아픈 내 동생 안부와 부모님 안부를 묻는, 내 가족과 연애를 다 아는 친구. 두 장의 편지에서 20대 중반인데도 성숙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의 깊이가 읽힌다. 난 그 시절 이걸 알았었나?

나는 어쩌다 이 친구를 잃었을까. 친구의 결혼과 육아의 물결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는 동안 나는 서울에 정착하기 바빴고 좀 더 손을 내밀던 친구를 내가 점점 잊었다.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이 든 지금에야 편지에 밴 친구의 외로움과 나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느껴진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난 참 무심한 사람이었다. 슬프다. 이런 사람이 나에게 있었구나. 나에게 사랑을 쏟아준 사람이 많았구나.


이 일이 내내 마음에 숙제처럼 걸려 있었는데 카톡으로 추석 맞이 인사를 여기저기 보내면서 용기를 내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고 목소리 듣자마자 뭔가 너무 웃겨서 서로 한참 웃었다. 내가 편지에서 느낀 그 느낌대로 내 친구는 참 안정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 살고 있었다. 추석에 집에 안 내려갔기 때문에 못 만났고 그 이후로도 못 내려가 시 아직 못 만났지만 마음이 든든하다.  



10월 - 제안과 실천  

사건의 지평선

10월에 여행을 계획하고 그날만 고대하면서 9월을 꾸역꾸역 버텼는데 뭔가 자꾸 동선이 꼬여서 차분한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10월은 뭔가 마음만 분주한 달이 됐다. 10월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역주행이다. 아주 오랜만에 가사가 외워질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며 그 공간이 내 마음에 새겨지게 두었다. 사건이라고 해석되니까 한국어로는 좀 어감이 다르게 와닿지만 그 지평선이 상징하는 이중적인 속성이 너무 공감이 됐다. 가까이 존재하고 하나와 다르지 않았던 존재들이 그 지평선을 경계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아주 멀어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가깝기 때문에 설명되는 현상. 이별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망가질 때까지 버티다가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사람에게 지치다 보니 그런 감정선들을 잘 표현한 이 노래가 너무 좋았다.


엄청나게 노력해서 클래스유 새 영상 강의 시리즈를 촬영했고 유튜브 새 시즌도 촬영해서 오픈했고 호담서원 홍보 영상도 찍어서 편집해서 하나씩 업로드했다. 20강밖에 안 돼서 여유롭게 11월 내내 편집하면 일주일 정도 여유 두고 오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1월 - 집중과 준비

 

     영상 강의 오픈   

원래 천천히 오픈하려고 했는데 클래스유 쪽에서 급하게 연락이 오는 바람에 전화 온 날 오픈하게 됐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12월 18일 바로 전 날인 17일까지 겨우겨우 편집을 마쳤다. 19일에 편집할 하나의 영상만 빼고 두 번의 인코딩을 거치는 10분 정도의 강의 23강의 편집, 섬네일 제작, 수업 설명 및 미션 제시까지 모두 마쳤다. 원래 더 일찍 할 수도 있었으나 고집스러운 디테일과 삽입 영상, 포인트 자막의 다양성 등등 회를 거듭할 수돌 몇 강 이전의 편집이 아쉽게 느껴져서 몇 번씩이나 새로 편집해서 다시 업로드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도 영상 클립 하나 더 괜찮은 거 발견하면 첫 단계부터 다시 편집하고 영상 재업로드 중이다.


이 일 하면서 내가 참 타협이 안 되는 스타일의 업무 습관이 있다는 걸 더더욱 알게 됐다. 그리고 오픈하자마자 사 준 분들에게 너무너무 고맙다. 1년 내내 관계에 치이고 피해 의식에 빠져서 슬픔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비싸면 비싸고 싸면 싼, 6만 원 정도의 돈을 쓴 분들에게 더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강의는 잘 안 팔리고 있고 이렇게 내용이 좋은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열심히 홍보 방법을 고민 중.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팬덤이 두텁고 그래서 구매 유도도 잘 된다는데 난 …   


     피해의식   

글을 쓰다 보니 지난 1년 공안 내가 관계에 심한 허탈감을 느꼈고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는 것이 더 확인된다. 11월에 <회복 탄력성>을 읽으면서 나의 회복 탄력 지수를 체크해 봤는데 나는 자기 조절 능력, 대인 관계 능력, 긍정성 모두가 상위 7% 내에 드는 사람인 것으로 나왔다. 이 테스트 중에 자아 확장성을 체크 하는 항목이 있었는데 이건 내가 타인과 연결된 있다는 느낌에 대한 나의 느낌에 대한 점검이었다. 그 내용을 점검하면서 내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이나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 순간 삶의 행복지수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는 없다는 생각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지금은 여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정비했지만 그것을 논리적으로 다시 정리하고 건강한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과 별개로 이 순간 나는 매우 외로웠고 분노와 원망 속에 무력감을 느끼며 한참 울었다는 것을 기록해 둔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건 난 나의 장점이나 매력, 능력을 보며 그것만 취하고 느끼는 사람보다 사실적인 관심과 표현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감사와 애정을 느끼고 그에 보답하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그에 맞는 사람만은 곁에 두겠다고 다짐해 본다.  


     보상   

내가 단지 일을 책임 있게 했다는 것 만으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 준, 약하고 작은 아이들. 스티커와 사탕과 핫팩을 선물 받고 충전받은 기분이 아직도 영화처럼 계속 리플레이된다.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의 문제다. 너무나 뚜렷하고 확신 있게 애정을 보여준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초등학교 1, 2 학년 아이들은 칠판 지우는 걸 정말 좋아한다. 칠판 지울 사람~ 하면 정말 번개 같이 손을 들고 다 튀어나와서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저 맨 위의 글씨까지 싹싹 닦는다. 그럼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뭔가 행동 유도를 할 때 이따 칠판 지움권을 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하는데 대체 칠판 지우는 게 왜 그렇게 좋은지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본 적이 있다.


칠판 지우는 게 왜 좋아? 했더니 하나 같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도움을 준 기분이 좋아요! 도움을 줬잖아요!"라고 답했다. 그게 자기에 집중된 행동이든 뭐든 간에 앞에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되면 뿌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자꾸만 하고 싶어 진다는 게 뭉클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고 싶은 마음이 다치지 않아야 계속 다정할 수 있을 텐데 그걸 지켜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가 점점 무뚝뚝해졌는데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피해의식이 내 좋은 면도 다 깎아낸 것 같아서 다시 보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이번 주에 항상 일찍 오는 2학년 B군이 반짝이는 스티커를 꺼내어 만지작거리길래 예쁘다고 했더니 선생님 가지란다. 너 쓰려고 가져온 거 아니냐니까 자긴 스티커가 조금도 필요 없고 쓰지도 않는단다. 어찌나 단호하던지. 내가 매주 새 스티커를 사서 붙여주니까 내가 스티커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챙겨 온 것 같았다.(실제로 스티커 좋아함) 세상에 어쩜 이렇게 다정할까. 이런 애들을 매주 보니까 세상에 좀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호담서원 원데이 클래스가 있었는데 페친도 오시고 일하면서 만난 분도 오시고 원래 회원도 오시고 재신청해서 오신 분도 있었다. 특히 오늘은 참가하신 분들이 모두 내가 한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었단 말을 하고 가셨다. 뭔가 어린이들이 나에게 뿌려준 씨앗이 열매를 맺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나도 칠판을 지워서 뿌듯한 기분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니 정말 멋진 일이다. 내 노트엔 B군이 준 반짝이는 스티커도 있고.

초 1.2 수업을 처음 시작한 날. 유치부 교사 몇 년의 경력을 믿고 안심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었다. 90분씩 두 번 수업하는 내내 '나도 말 좀 하자!!!'라는 생각만 했다. 난 어디 처음 가면 엄청 눈치를 보는 성격이라서 내내 상황 파악을 했는데 이게 나의 어설픔  때문인지 아이들의 상태 때문인지 시대의 변화인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지 뭔지 판단이 안 됐다. 진짜 징글징글하게 말이 많았고 질서도 없었다.


그래서 매주 어떻게 내가 주도권을 잡을 것인지 연구하고 반응이 좋은 건 극대화하고 조금이라도 지루한 것 같으면 어떻게든 개선시켰다. 아무리 어려도 초등학교 5학년만 넘어도 이런 걱정 필요 없다.  웬만한 아이들은 정성 담은 지적 권위를 보여주면 한 시간 만에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변하니까. 이렇게 어려운 걸 이렇게 쉽게 설명하다니! 이제까지 느껴본 적 없는 머리 쓰는 기분! 공부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 거 순식간에 느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8세? 9세? 얘네한테 난 그저 마스크 쓴 수없이 많은 선생님 중 한 명일 뿐. 얘 내가 무슨 간절함이 있어서 내가 달라 보이겠는가. 내가 아무리 잘해 봐야 원래 그런가 보다 하겠지. 난 그야말로 초년생보다도 암담한 경력만 많은 누군가일 뿐. 그래서 ox퀴즈 만들고 내용 디테일에 집착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나와서 쓰고 손들고 따지고 맞히려고 안간힘을 쓰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경쟁을 좋아하고 자기만 잘하는 걸 좋아하고 수업에 패턴과 규칙이 있는 걸 좋아한다. 난 그 패턴과 규칙을 아이들이 만들게 했다. 청소년에게 그렇게 해왔듯이. 지금은 쉬는 시간 지키고 인사할 줄 알고 수업 순서도 알고 등등등~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많이 벌어졌다. 새침해 보이고 반항심을 보이고 공격적인 어투가 있던 애들이 연속으로 몇 학기 걸쳐 신청해서 수강을 했다. 쉬는 시간에 괜히 옆에 서 있다가 은근슬쩍 무릎에 앉았다. 뭔가 나로선 어린이와의 친밀한 접촉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어색했지만 (청소년 수업은 절대 터치를 안 한다) 아이들의 그런 표현은 오전 수업의 배고픔을 잊게 해 줬다. 하루종일 가르치는 분들 거의 마법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깨에 손만 얹고 머리 한 번만 쓰다듬어도 자세가 달라진다.


첫 학기가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1학년 2학기 때 처음 만나 이제 딱 한 주만 남은 여자 아이가 있다. 정말 인형 같이 생겼고 표정 변화도 없고 잘 안 웃는다. 발표도 비협조적이고 맨 뒤에 앉아서 수업 듣는 걸 좋아한다. 수업을 억지로 듣게 듣나 보다 했다. 그런데 1학기 때도 또 들어왔다. 가끔 늦어서 알게 됐는데 어머니는 토요일에도 출근하셔서 본인이 알아서 챙겨 오는 것이었다. 동물을 엄청 사랑해서 모든 활동지에 동물 이야기를 쓰고 그림으로 잘 표현한다. 발표는 잘 안 하고 항상 뒤에 혼자 앉지만 정말 열심히 거침없이 예리한 포인트로 작품을 분석하고 자기표현을 잘 기록한다. 나한텐 늘 데면데면했다.


1학기 2분기 때 수강 취소를 해서 역시 어려웠나. 싫어했나 했는데 엄마한테 문자가 길게 왔다. 아이가 수업을 너무 좋아하는데 코로나 이후 건강 수치가 너무 안 좋아져서 취소했다고 아이가 2학기 한 번 밖에 안 남았는데 독서 수업이 제일 재밌는데 왜 묻지도 않고 취소했냐고 화냈다고 2학기 때 꼭 다시 올 거라고. 그 문자를 보내주신 게 너무 고마웠다. 난 애들을 오래 가르쳤는데도 정 떼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인사도 없으면 좀 상처받는다. 평소에 엄청 무뚝뚝한데도 그렇다.


2학기 때도 여전히 각자 열심히 잘 지냈다. 오늘은 웬일인지 쉬는 시간 내내 친구랑 내 옆에 계속 서 있었다. 말도 안 하고. 그러다가 이 스티커 묶음을 나한테 주는 것이었다! 진짜 심쿵했다. 이거 나 줘도 돼? 끄덕끄덕. 나 주려고 일부러 가져온 거야? 끄덕끄덕. 여전히 표정 변화는 없다. 너무 고맙다고 정말 잘 쓰겠다고 하니까 그제사 간다. 내가 매주 아이들 글 쓰는 동안 개별적으로 읽고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그걸 보고 나한테 필요한 걸 골랐나 보다. 너무 감동받았다. 이제 한 주밖에 못 보다니. 너무 아쉽다. 오늘 강의 평가서 쓰는 날이었는데 '선생님이 스티커도 맨날 챙겨 오시잖아.' 이런 말이 나왔다.(수업 준비 잘 한단 소리) 진짜 애들한테 지적인 능력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님. 혹시나 하고 매주 참 잘했어요 말고 따로 꼭 챙겨간 스티커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이야!


12월 - 마무리 새로운 시작


일하느라 정신없음

새 책 재계약

클래스유 오픈

상태변화에 대해 생각하는 중


  


신데렐라로 배우는 자존감 수업 링크

https://me2.do/5nPMR1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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