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고
얼마 전에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봤다. 기대 없이 봤는데 한 편의 잘 쓰인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18세 이후 매일 외모가 바뀌고 이 사실을 절친과 엄마 외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없는 가구 만드는 일을 하며 살다가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설레었고 고민했고 행복했고 번갈아 고통스러웠다.
우리가 겪는 변화에 대해서 인간의 내면과 외면이 바뀌어 구현된다면 한결같이 같은 얼굴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하루하루 흉측하게 얼굴이 늙어버리거나 <파이 이야기>처럼 소년이었다가 식인 요리사였다가 조련된 호랑이였다가 아예 맹수로 변해 버리지는 않을까. 아니면 <백설공주>의 엄마처럼 어제는 간절히 아기를 바라다가 내일은 그 아기를 죽여버리고 먹어버리고 싶어 하는 마녀가 돼 버리지 않을까.
과연 내 가족과 친구와 연인은 한결같이 같은 얼굴과 같은 눈빛으로
하루를 맞이하게 될까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자꾸만 바뀌는 남자 친구 때문에 두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매일매일 그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과 늘 그에게 발견되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매일 새로운 모습에 기대와 신선함을 느끼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이나 이제 겨우 익숙해진 어제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인, 오늘의 연인이 자기를 만질 때는 '괜찮다 이 사람은 그 사람이다'를 되뇌며 불안을 억눌러야 했다. 연인을 궁금해하는 친구 동료 가족 때문에 그가 부담스러워진다.
그리고 항상 어제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겪는 고통과 변화를 그는 '몰랐다'.
그녀는 그의 외모를 그는 그녀의 내면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랑하는 과정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그리다니... 내 앞에선 그의 외모는 믿을 만 한가. 내 앞에 선 상대방이 정말 어제와 같은 마음인지는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저 믿어 주는 것 말고 불안을 잠재울 다른 방법이 있을까. 불안을 안 느끼고 사태를 모른 들 정말 상대에게 아무 변화도 '없을까'... 변화가 뻔히 보이는데도 아닐 거야 아닐 거야를 반복하며 버틴 적은 없는가.
자신의 고통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그녀와 그는 헤어지고 그는 사라진다. 영원히 매일매일 변하는 외모를 '긴직'한 채... 내 앞에 있는 모든 낯선 이가 그일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품고 그녀는 이별을 겪는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볼 외모를 가져본 적 없는 그녀는 그를 찾아 나선다.
그는 그녀의 '고통'을 통해 '정상적인' 그녀를 알게 되어 떠났고
그녀는 그의 '어트리뷰트' - 가구를 통해 그를 찾아낸다.
믿으려고 애쓰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고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병을 외면하는 것은 다르다. 앓아도 되지만 나을 생각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 보고 싶은 것이 안 보인다고 불안해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녀는 건강해서 아팠다. 아팠기 때문에 새로운 눈을 얻었다. '안 보이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 불변의 정체성을 알아보는 눈...
누군가가 나를, 내가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게 될 때 필요한 것은 확인 불가능한 외모나 내면이 아닌 나만의 attribute. 상황이 어떻든 변하지 않을 나만의 특징. 내가 몰입하고 잘하며 늘 하고 있을, 지금의 나를 설명해 줄 그것.
사랑이 어떻게 시작됐든 결국 우리는 그의 정체성을 만나야만 머물 것인지 떠날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아마도 이제 그들은 고통을 핑계로 헤어지진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