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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04. 2023
詩人 동주의 발자취를 따라서
서시는 압천으로 흐르고 Uji강으로 아리랑이 흐르다
2019년, 3년째 4월이면 교토를 방문, 어김없이 도시샤 대 두 시인의 시비 앞에 섰다.
2018년 4월에도 비가 내렸는데, 올해도 하루 종일 교토엔 비가 내렸다. 시비 앞에서 묵념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과연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낼 수 있을까?
괴로워하면서도 잎새에 이는 바람을 마주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것들 앞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게 주어진 삶의 길을 잘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바람에 스치는 오늘 밤 도쿄의 별을 바라보며 질문하고 싶었다.
몇 년 전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는 옥천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생가 앞에 시냇물이 흐르더라.
가모가와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시인을 떠올리며 압천이란 시를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압천길에 저물어가는 석양 앞에서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사람의 마음을 느껴 보았는가?
뜸북새가 이 4월에도 노래하는가?
물바람 속에 섞여 날리는 수박 냄새가 나그네의 시름을 저물게 해 줄 수 있으려나.
수박 냄새는 고향의 살결 냄새를 닮았다. 어머니 품 속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4월에 수박 냄새가 날리 없건만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강가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에 도취되어 갔다.
그의 시, 압천을 가모가와를 따라 걸으며 다시 읊조려 보았다. 저무는 노을을 등진 채.
-- 鴨川'압천'은 시의 배경으로 교토 시내를 흐르는 가모가와(鴨川)를 의미한다.
캠퍼스 어딘가 두 시인의 향기가 배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돌고 또 돌았다.
동주님 시비 앞에는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는
언제라도 시인을 추억하면서 휴식을 취하라는 듯 넉넉하게 벤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4월이나 11월 이곳에 앉아 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좋겠다.
내일은 우지로 여행을 떠날 거야. 그곳에서
무엇보다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 나설 거야.
이른 아침, 교토에서 JR NARA 선을 타고 외곽에 있는 우지(宇治)로 향했다.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同志社) 대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생전에 마지막 사진을 찍은 곳이기도 한 우지는 시인의 삶을 닮은 듯.
날씨가 맑았다가, 흐렸다가,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푸른 하늘을 보이다가, 진회색 구름이 덮어버렸다.
한글판 여행 가이드 지를 받아 들고 찾아 나선 아마가세 구름다리는
우지 다리에서 금방일듯싶었으나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2Km쯤 걸었을까? 저만큼 아마가세 현수교가 반갑게 보이는 듯했다.
다리 위에는 인적 없이 바람 소리만 정적에 갇혀 음악처럼 흘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윤동주 시인의 목소리인 양, 넋인 양,
바람과 강물 흐르는 소리에 나도 넋을 잃은 양, 요지부동으로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배어있을 법한 다리 위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1943년 징병을 피해 귀국을 결심한 윤동주 시인은
송별회 자리에서 학우들의 요청으로 ‘아리랑’을 불렀다는데.
출렁거리는 물살에 아리랑 선율을 실어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쪽 부분에 서서 단체사진을 찍었으리라... 한참을 동주 시인을 생각했다.
아마가세 구름다리에서 찍은 윤동주 시인 생전, 마지막 사진
이쯤에 동주 님의 손길이 아직 남아 있으려나?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그럼에도 아마가세 구름다리를 향했던 그 시간, 바람은 셌으나 쾌청했다.
거센 바람에 가을도 아닌데 우지 강변으로 나뭇잎이 마구 떨어졌다.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이 읊조렸다.
왠지 윤동주 시인의 목소리처럼 느껴진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때 펼쳐든 시집에서 읽은 시 한 편이 있었으니...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라는
행으로 시작하는 새벽이 올 때까지,라는 시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옷을 입히라고 했던가?
한 이부자리에 잠을 재우고 울거들랑 젖을 먹이라던...
시의 여운이... 여백이... 너무 휑하게 남아돌아 다리가 휘청거렸다.
시집을 덮고 다리를 건넜다.
이 다리를 건너 시인은 아마가세 삼림공원을 산책했겠지.
나 역시 그 코스까지 찬찬히 따라가 보았다.
다행히 인적 없는 그 길, 동주 님의 자리를 넉넉하게 비워둘 수 있어서 좋았다.
바람의 향기 속에 동주 님의 시향이 겹쳐 날리듯...
벚꽃 잎이 떨어져도, 나뭇잎이 떨어져도 동주 님의 발자국 소리려니 느끼면서.
벚꽃비를 맞으며 다시 읊조린 또 다른 시 한 편은 산울림, 이란 시였다.
어디선가 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시속에 언급한 까치는 아니었지만 시인은 시어로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을 노래했다.
저 혼자 들었던 소리는 정말 산울림이었을까? 아니면 새가 우는 소리였을까?
기쁘게 노래하는 새의 소리였을까?
혼자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적 드문 그 길을 동주님의 발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분위기 있는 다도관 외향에 끌려 들어선 곳!
녹차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 창밖엔 나처럼 홀로 여행 중인 듯 보이는 여성이 고요하게 서있다.
시 같은 풍경이었다. 그냥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