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기행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에서 만난 음악
11월, 1년 전이다. 작년 이맘때 빈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베토벤의 흔적을 좇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제일 먼저 '운명'과 '열정'이 탄생한 베토벤의 기념관(파스칼라티 하우스)을 찾았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베토벤이 왜 그렇게 여러 번(50여 차례) 이사를 했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됐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주택이었을 테니 음악에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소음에 민감한 이웃이었다면 한 공간에 오래 머물기는 힘들었겠다 싶었으니까. 젊은 날의 베토벤 초상을 마주하고 준비된 음악들을 헤드폰으로 차분하게 감상하며 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기념관을 나와서는 가까이 위치한 빈 대학 주변을 둘러보았다. 빈에서 35년 가깝게 인연을 쌓았던 베토벤의 발자취와 중복된 공간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뒷짐 쥐고 베토벤 코스프레하는 자신을 느끼면서.
다음날 오전 일찍 빈 중앙공원으로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기 위해 11번 트램으로 이동했다. 트라이앵글 구도로 위치한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묘 앞에 섰다. 모차르트 묘는 그냥 상징적인 묘였지만 공원에서 내내 내 귀에 들렸던 건 그의 레퀴엠인데 유해를 찾을 수 없다는 게 가슴 먹먹했다. 3인 음악가 묘 앞에 가장 많은 화환이 있는 곳은 단연 베토벤이었다. 베토벤의 팬들이 많은 걸까? 나 역시 빈에서 베토벤에게 빠져들었으니까.
이틀간 하일리겐슈타트로 이동해서 베토벤의 산책길을 따라 걷고 유서의 집을 둘러보면서 베토벤이 왜 이 동네를 애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전원 교향곡 탄생지라는 것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틀 중 하루는 비가 내려서 더 좋았다.
우산을 받쳐 들고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베토벤 기념 작은 공원이 나온다. 베토벤의 흉상 앞에서 밀회를 즐겼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그의 표정이 왠지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와 마주한 시간 동안만큼은 왠지 주변 세계까지도 고요한 평화로 채워지는 듯 여겨졌다. 참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날 늦은 오후엔 빈 분리파 전시관을 찾았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와 교향곡 제9번 환희의 송가를 감상했던 순간의 기쁨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전시실의 높은 ㄷ자 벽면을 휘돌아가면서 그려진 베토벤 프리즈는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그 순간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없다.
언제 제체시온에 가게 될까 했는데 현실이 됐던 순간 베토벤의 음악과 클림트의 미술 세계에 빠져든 순간의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클림트의 걸작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개막하던 그날은 세기말 빈의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날이었다는 걸 시공을 초월한 묵직한 감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베토벤의 정신이 빈 예술가들에게 또다른 이상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2시간을 베토벤 프리즈에 빠져서 폐관 시간을 알릴 때까지 머물렀다. 제체시온을 나와서 가까이 위치해 있던 카페 뮤지엄으로 향했다. 클림트가 에곤 실레를 만났던 테이블이 어디쯤일까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제체시온에서의 여운을 조금씩 가라앉히며 화려한 불빛을 드러낸 비엔나 야경에 눈길을 던졌다.
부다페스트에서의 3박 4일간 플레이리스트엔 리스트의 음악이 담겼다. 헝가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멋진 음악가 리스트, 그의 이미지는 큰 키, 노후의 백발, 긴 손가락, 롤 모델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초절 기교, 그리고 그 유명한 헝가리 랩소디다. 리스트의 도시에서 리스트의 음악을 듣는 기분이라니, 한마디로 황홀했다.
리스트 기념박물관에서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준비되어 있어서 비교적 긴 시간 둘러보았다. 여러 음악가들의 기념관을 둘러보았지만 가장 방대한 양의 자료와 많은 피아노를 보유하고 있는 전시관이 아닐까 싶었다. 리스트의 세 아이들, 블란딘과 코지마 그리고 단젤은 사진 속에서 얼마나 귀엽고 반짝이던지... 자식 사랑이 깊었던 리스트를 만나니 그의 음악이 더 좋아졌다.
여행을 즐겼던 리스트는 소리 나지 않는 건반을 항상 휴대하며 연습했다는데 그의 음악 사랑이 느껴졌다. 리스트가 직접 고안해서 제작을 의뢰한 피아노도 만날 수 있었다. 작곡하는 책상엔 작곡용 건반이 있었고, 세 개의 전시실에도 상당히 많은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었다. 피아노의 거장에게 배우기 위해 줄을 섰던 제자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공간에서 세월의 무게가 전달됐다.
독실한 종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침대 옆에 놓인 기도 공간, 그곳에서 매일 아침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했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오스트리아 남작 부인이 리스트의 머리카락과 진주를 이용해서 만든 부케 작품이었다. 유명인의 일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심정이라니.
리스트 세 개의 공간에 베토벤의 흉상과 액자가 꽤 전시되어 있었다. 베토벤은 체르니가 데리고 온 십 대 시절의 리스트 연주를 듣고 이례적으로 감동해서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리스트는 낭만주의 음악을 발전시켜 교향시를 창시했고 오늘날 피아노가 독주악기로 자리 잡도록 가장 큰 공헌을 한 피아니스트였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일주일간 머문 프라하는 이번이 네 번째 여행이었는데 혼자 한 여행이라서일까? 완전 내 취향대로 즐긴 음악 여행이었다.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기념관을 찾았다. 스메타나 기념관은 몰다우강 바로 옆이라 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허밍으로 스메타나의 음악이 따라다녔다.
다음날은 드보르자크 기념관에 갔다. 기념관에 준비된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모두 감상했는데 드보르자크의 무표정한 외모와는 다르게 아름답고 처연한 곡들이 마음에 물기를 머금게 했다. 전시실을 둘러보며 드보르자크는 민족주의 음악뿐 아니라,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악도 많이 작곡했음을 알게 되었다. 오롯이 기념관을 홀로 차지한 채 드보르자크와의 데이트를 제대로 즐겼다.
드보르자크는 첫아들과 두 딸을 연이어 잃고 아내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를 작곡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살아갈 희망을 잃고 상처받은 영혼을 부여잡은 채 창작에 몰두했을 서른아홉의 드보르자크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지고지순한 어머니의 사랑을 간절하게 표현한 선율을 듣고 있노라니 11월 찬바람 속에서 눈물이 고여왔다.
야외 정원도 아름다웠다. 정원 벤치에 앉아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몇 곡 더 감상한 후 예매해 둔 율리아 피셔의 공연을 즐기기 위해 루돌피눔으로 향했다.
루돌피눔에서 특히 감동적이었던 모습은 노부부들이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음악회 즐기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거다. 인터미션 중 눈인사를 나누었는데 얼마나 다정하고 푸근한 미소를 건네주시던지 마음까지 따뜻 해졌다.
율리아 피셔의 바이올린 연주도 11월의 늦가을 밤을 물들이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루돌피눔 앞 드보르자크의 동상 앞에서 멋진 루돌피눔 경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카를 교를 산책하며 아름다운 음악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