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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것은 같은 공간을 다시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이 고플 때마다 떠올리는 문장이다.
오늘도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때 그 시간을 내 앞으로 고스란히 데려다주는 추억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사진 한 장 앞에서도 여러 정서가 오갔던 인도에서의 시간을 투영해 보려 한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인도를 향한 그리움이 봄날의 새순처럼 마음속에서 불쑥불쑥 움터 나왔다. 마음으로만 품어왔던 인도를 만나게 해 준 아시아나 여객기에 몸을 실었던 날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그때의 사진과 기록들을 마주하면서.
2003.07.17. 목요일 인천공항
인도 델리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두 명의 여대생과 합류했다.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졸업반 여대생 '진'과, 첫인상이 매우 인도틱해 보이는 영문과 졸업반 여대생 'sunrise-india'는 어학연수와 여행 두 가지 목적으로 6개월간 인도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진이와는 거의 보름 동안의 루트가 같아서 함께 움직였고 sunrise-india는 델리에서 2박 3일간 동행했다. (3일 후, sunrise-india는 어학연수 장소인 푸네로 떠났고 우리 일행은 다음 여행지인 암리차르로 떠나기 위해 뉴델리 기차역에서 헤어졌다.)
델리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운 밤!
우리는 델리의 위험한 밤을 피해 우선 하룻밤을 공항 내에서 수다를 떨며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이번이 인도 여행 두 번째라는 sunrise-india의 인도 경험담을 들으면서, 인도에 관한 책자와 프린트해 온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 가며 새벽의 긴 시간을 보냈다. 공항 대합실엔 우리 일행뿐 아니라 각국의 여행객, 여러 팀들이 우리처럼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아침 일찍 공항에서 택시를 타기 위해 우선 30불을 환전했다. 델리공항을 나서려는데 번개를 동반한 비가 우리 일행을 제일 먼저 환영해 주는 듯했다.
어스름 새벽의 빛이 채 가시지 않은 델리공항을 벗어난 첫 느낌은, 지독한 소음과 어수선함이었다. 그 복잡한 느낌 사이로 삐끼들을 피해 겨우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 기사의 고약한 체취가 진동을 했다. 이후, 인도 남자들 특유의 암내 비슷한 체취에 자주 숨을 참아내야 했다. 특별히 발달한 후각으로 인해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무척이나 힘들었다.
뉴델리를 향해 달리는 새벽의 도로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물살을 가르고 경적을 빵빵 울리며 달리는 인도 기사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무법자였다.
어쨌거나, 큰 탈 없이 뉴델리 역 앞까지 데려다준 기사에게 우리는 200루피와 서울에서 준비해 간 볼펜을 선물로 함께 건넸다.
"넌 좋은 기사다. 너의 운전은 매우 흥미가 있다. 그러나, 항상 조심해라."
내게 돌아온 그의 반응은,
"No Problem!"
아. 노 프러블럼의 천국이라는 인도에서 첫 번째로 그 멘트를 들었다. 부디 이번 인도여행 내내 'No Problem'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파하르간지, 뒤로 골든 카페가 보인다. 파하르간지에서부터 골든 카페, 그리고 첫 숙소로 잡은 나브랑까지의 거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개, 고양이, 소는 물론이고, 자전거와 오토릭샤, 남녀노소가 엇갈려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리. 얼마쯤 걸었을까? 골목 어귀에 죽은 듯 누워있던 앙상한 가슴이 다 드러난 여인네의 얼굴 위로 수없이 꼬이던 파리떼들. 거의 벗다시피 한 행색에 뼈만 남은 새까만 육체. 그러나, 곧 죽어갈 것 같은 그녀에게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나타내주는 행인들은 없었다.
당장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여행객인 내 시선에 잡힌 그녀는, 가슴에 '쿵' 하는 절망감과 함께 '이 또한 인도의 일면이구나'라는 생각을 넌지시 건네주었다. 이런 광경은 앞으로 만나게 될 모습의 시초에 불과하단 것을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요구되지 않았다. 이후 그와 비슷한 풍경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내장을 다 드러내고 죽어있던 모습 앞에서 기함했던 기억도 파하르간지 골목길 사진 속에서 실제처럼 다가왔다.
아연실색한 상태로 서 있는데, 이건 또 무슨 냄새인가? 오픈된 남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버젓이 보는 남자들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일만큼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질퍽거리는 거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여러 개의 똥 무덤, 시큼털털하고 고약한 시장통에서의 냄새까지 온갖 악취가 진동했다. 이른 아침이니 이 정도겠지? 한낮의 파하르간지 풍경은 또 어떻게 변할까?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 속에서 조금씩 인도를 느껴가야 했다. 못 볼 걸 본 양으로 잠시 감았던 눈을 뜨자, 너무나 생경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이 아이들은 대체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리일까? 단정하게 땋아 내린 머리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의 깔끔한 모습은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자주 미소 짓게 했던 풍경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마주하니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아침풍경이라 왠지 마음이 놓였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일었다.
우리 일행은 게스트 하우스 나브랑 더블룸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 층 숙소로 오르는데 103호 현관문 앞에 작은 도마뱀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은비야, 생각보다 도마뱀이 되게 작고 귀엽게 생겼네."
허름한 더블침대, 천장에 낡은 팬 하나, 작은 테이블. 그게 객실 내의 시설물 전부였다.
배낭의 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침대 패드를 준비하지 못한 우리 모녀는, 아시아나 기내의 모포 한 장을 한 달간 빌리기로 했다. 이 모포는 찝찝한 숙소의 침구 위에 깔아 놓고 자기에 적당한 크기여서 무척 요긴하게 쓰였다. 돌아오는 비행기도 아시아나였기에 한 달간 사용한 모포를 아웃하는 비행기 시트 위에 조용히 올려놓고 내렸다. 모포 한 장을 한 달간 허락 없이 빌려 요긴하게 사용한 점, 늦게나마 아시아나항공사 측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간단히 샤워한 뒤, 다음 행선지인 암르차르행 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뉴델리 역으로 향했다.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2층 예매소에 가면,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여행자를 어김없이 만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그곳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인도 여행을 왔다는 자연의학에 관심이 많은 D 씨를 만났다. 그는 환전할 때부터 한바탕 제대로 사기를 당했으며,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현지 조달했다는 서른넷의 싱글남. 그는 델리에서 스리나가르까지 루트가 같아서 우리 일행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사연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요가학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평범한 우리네 시선으로 볼 때, 참 독특한 삶을 살아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도시명이 마음에 와닿아서 '다람살라'가 여행의 주요 목적지라고 했던가?
예매를 끝낸 일행 다섯은(나, 은비, 진, sunrise-india, D 씨)은 오토릭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올드델리 일주에 나섰다. 올드델리 주민들과 어깨를 스치는 순간도 있었고 처음 맡는 도시의 냄새와 좀 더 가까워졌다. 끈적끈적한 더위 속에서 빨리 샤워하고 싶다는 욕구가 순간순간 가동되는 중에도 랄 킬라, 찬드니초크, 간디 기념관 라지 가트, 인디아 게이트를 둘러보았다.
무굴 제국 시대의 힘을 과시하는 빨간 성(Red Fort), 랄 킬라(Lal Qila)는 무굴 왕조 제5대 황제인 샤 자한에 의해 약 10년에 걸쳐 건축된 성이라고 한다. 빨간 사암으로 만들어진 굳건한 성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 보기엔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부식된 담벼락에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1948년 1월 30일 테러로 죽은 마하트마 간디가 화장된 곳인 라지 가트(Raj Ghat)에 서면 저절로 엄숙해졌다. 유해나 유골을 안장한 묘는 아니었지만 간디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소로, 참배 행렬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었다. 앞에 여러 팀이 기다리고 있어서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간디 묘 주변은 잘 가꾸어 놓은 깨끗한 녹색공원이 있어서 가족 단위로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 참배를 끝낸 가족, 친구, 아베크족들이 어우러져서 간디가 그토록 원했던 평화로운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갑자기 쏟아지던 폭우로 우비를 입고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옷이 흠뻑 젖는가 하면, 또 금세 쨍쨍한 햇빛을 해바라기 하고 서 있자니, 젖은 옷이 순식간에 말랐다.
한차례 소나기를 뿌리고 지나간 뒤, 일행 다섯은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에서 제1차 세계 대전 때 전사한 9만 명의 인도 병사를 기리는 위령비 앞에 섰다. 잠시 묵념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높이 42M의 인디아 게이트 우측에 펼쳐진 호수에서 수영하던 아이들이 우리 앞으로 몰려왔다.
다짜고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했다. 사진을 전할 수도 없는데 찍어달라니 황당했다. 2003년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던 시기였다. 아이들은 이미 디카라는 매체를 알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접근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하고 자신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아이들에게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더니 딸아이와 함께 찍길 원했다. 은비도 선선히 그들 곁에 섰고 기념촬영을 했다. 의외로 인도라는 나라에 빨리 적응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진을 보여주자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대며 재잘거렸다.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그저 순수한 그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또다시 쏟아지는 소나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신나게 물놀이를 하던 한 녀석이 내게 말했다.
"마담, 내 다이빙과 수영 솜씨 볼래요?"
하면서 연신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와 점프하고 물살을 가르며 내 시선을 줄곧 따라다니며 물 놀이 하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봐주길 바랐다.
하루 종일 올드델리와 뉴델리를 돌아다니면서 인도와의 첫 만남을 나름 무사히 마쳤다.
저녁식사를 위해 여기저기 음식점을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먹거리가 없었다. 온종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결국 몇 가지 과일과 군 옥수수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인도 여행 중, 자주 우리의 양식이 돼 주었던 과일(특히, 석류)과 옥수수는 첫 여행지인 델리에서부터 그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추어 놓고 피곤하고 지친 몸을 허름한 침대에 뉘었다. 천정의 후덥지근한 팬 바람을 쐬며 무거워진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다음날 새벽, 열차를 타고, 새로운 도시 '암리차르'와의 만남을 가지려면 숙면을 취해야 한다. 암리차르의 첫 느낌은 어떨까?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어느새 꿈속 세계에 빠져들었다.
피곤한 꿈 속으로 낯익은 필체의 편지가 보였다. 왜 인도였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인도의 무엇이 너를 이곳으로 이끌었냐고 묻는 목소리도 들렸다.
20년이 흘렀어도 인도는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내 삶 저 너머에 있는 원형 같은 거라고 할까?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생의 분명한 해답 같은 것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 삶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화한다 해도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자. 걸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물러서지 않고 궁금하면 질문하기.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기.
힘들어도 한 발자국 떼면서 실천하기.
내 말에도 귀 기울이고, 외부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기.
내 안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듣고 간과하지 않기.
그래, 이제 여행의 시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나가는 거다. 그게 진정 내가 원하는 여행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