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깊은 잠 속으로 빠지진 못했다. 5:00 알람이 울리기 전, 새벽 4:30' 기상했다. 여명이 채 밝지 않은 불투명한 어둠은 사각 창밖으로 펼쳐진 채, 검은 사제처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투명한 어둠 사이로 가늘게 뚫고 나오는 빛이 있었다. 그 빛은 소리였다. 빛의 소리는 곧 타고르의 시어가 되어 내 귀에 속삭였다.
"이제 나는 떠나야 한다. (......) 나는 내가 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다. 이제 날이 밝아 내 어두운 구석을 밝히던 등불도 꺼졌다. 부르심이 왔고, 나는 여행 떠날 준비를 마쳤다."
타고르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듯 떠날 준비를 마친 채, 배낭을 메고, 어제 델리에서의 일정을 리마인드 하며 숙소를 나섰다. 6:10'경. 여유 있는 출발을 위해 숙소 1층으로 내려왔는데 D 씨는 그때까지 세상모르게 꿈나라였다. 열차시간이 하도 빠듯해서 D 씨는 세수도 못한 채, 배낭을 대충 챙겨 들고 우리 일행은 두 대의 오토릭샤에 나누어 타고 뉴델리 역으로 향했다.
사실, 좀 여유 있게 나와 파하르간지의 골목을 다시 한번 천천히 걷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모든 게 진행되는 건 아니지. 늦잠을 잔 D 씨는 진이에게 빌린 빨랫줄을 숙소에 묶어둔 채로 나왔다는 것을 열차를 타고나서 알 게 되었나 보다. 진이는 그때부터 계속 D 씨만 보면, "아저씨, 빨랫줄!" 하며 따라다녔다. 인도 여행에서는 땀에 전 옷을 자주 빨아야 하는 관계로 이 빨랫줄이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 일행은 뉴델리 역 앞에서 세 명의 현지인들에게 암르차르 행 열차가 몇 번 플랫폼에 서는지 묻고 재확인했다. 그때, 암리차르행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우리의 열차 칸을 찾기 위해 엄청 애를 썼다. 겨우, 우리의 열차 칸을 확인하고 우리 좌석을 찾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미 그 자리엔 현지인이 다 차지하고 턱 하니 자기 자리인 양 앉아 있었다. 혹시, 이중으로 열차표 매매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자, 암담해졌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티켓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좌석은 우리의 좌석이다. 너희 티켓을 보여 달라."
그들은 천천히 엉덩이를 들며 자리를 내주었다. 그 후, 열차를 탈 때마다 느꼈지만 현지인들은 으레 좌석 주인이 오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자기 자리인 양 너무도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뉴델리에서 암리차르까지 기차요금 1인당 Rs135(2003년 당시)
드디어 열차가 출발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새벽 벌판에 수십 명의 인도 남자들이 퍼져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 풍경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철길에 걸터앉아 금방 황금색 똥 무덤을 만들어 내는 꼬마 녀석의 엉덩이가 코앞에 펼쳐졌다. 대부분 비커처럼 생긴 물통을 왼손에 들고 볼일을 보고 뒷수습을 했다. 그런데 꼬마 녀석들은 뒷수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보였다.
그 광경 가운데로 아침햇살이 허허벌판을 지나 귤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찬란한 벌판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을 열차 차창을 통해 만나 보는 것 또한 인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피난민 열차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머리가 좀 어지러웠지만, 은비와 진이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을 상당히 즐기는 것 같았다. 좌석에 앉지 않고 진이와 은비는 암리차르행 열차 내에서 자주 서서 돌아다녔다.
걸인 소년이 통로에 서서, 불러주던 노래가 처량했다. 서너 명의 게이들이 몰려다니며,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준다며 돈을 요구하며 법석을 떠는 모습이 불쾌감을 전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짜이와 커피를 외치며 오가는 사람들, 열차의 정거장마다 멈추어서 마냥 여유를 부리던 열차, 그 휴식시간을 이용해 우리 일행도 열차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쐬곤 했다.
D 씨가 맛있게 생긴 토스트 튀김을 여러 개 사 갖고 왔다. 아침도 굶은 터라, 짠맛이 매우 강했던 토스트 튀김 하나를 꼭꼭 씹어 먹었다.
창밖에서 적선을 요구하는 걸인 소년들에게 두 개 남은 토스트 튀김을 건네주었다. 걸인 소년은 넷이었지만 내게 두 개의 빵을 받은 그 소년은 나누어 먹을 생각조차 안 하고, 혼자서만 먹었다. 그 주위에 배고픈 소년들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뺏을 생각도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 이게 인도구나. 또 다른 생존의 법칙을 보는 것 같았다.
짜이 한 잔을 마시고 얇은 플라스틱 컵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맞은편 인자하게 생긴 인도 할머니께서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 할머니는 다 마신 일회용 짜이 컵을 자연스럽게 열차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면서, '너도 나처럼 이렇게 밖에다 버리라'라고 웃으면서 설명해 주셨다. 나도 할머니처럼 플라스틱 컵을 창밖에 던졌다.
그 후, 우리 일행은 바나나 껍질, 사과 껍질, 물휴지, 과자 봉투 등 쓰레기란 쓰레기는 모두 창밖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던져 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 인자한 할머니의 지시를 따랐다고 변명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자문하게 된다) 인도도 미국도 땅덩어리 넓은 나라는 환경문제에 대해서 덜 민감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각설하고 아, 이게 인도구나. 인도에서는 쓰레기 처리하는 방법이 이렇구나. 그래서 가는 곳 대부분이 오물이고, 악취였구나. 이건 아니지 싶어, 개별적으로 쓰레기를 모아 두었다가도 결국은 버릴 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눈치껏 버려야 했던 인도. 그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셨던 할머니의 '쓰레기 처치 모본'은 지금도 내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여덟 시간의 기차여행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암리차르에 도착하니 터번을 두른 시크 교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역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피해 우리 일행은 말이 끄는 마차, 통가(Tonga)를 타고 황금사원으로 향했다. 암리차르 거리의 첫인상을 사진으로 남겨놓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다. 박자를 맞추며 채찍을 내리쳤던 마부 할아버지의 박자에 따라 달렸던 통가란 운송기구를 탔을 때의 감각이 엉덩이에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처음 만나는 암리차르 거리 풍경은 델리보다 훨씬 깨끗했고, 정감이 갔다.
통가에서 내려 우리 일행은 이미 얻은 정보를 통해 순례객용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미토리는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아서 객실 내 샤워시설이 있고, 비교적 깨끗한 3인용(나, 은비, 진) 룸을 일박, Rs50에 잡았다. 체크인할 때는 Rs200를 받고, 아웃할 때 Rs150를 환불해 주었다.
순례객용 숙소는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3일 이상은 룸을 사용할 수 없었다. D 씨는 근처의 싱글룸을 잡은 후, 오후 다섯 시에 황금사원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선 헤어졌다. 그러나, D 씨와 그날 오후 만나지 못했다. 약속시간을 서로 잘못 알고 있었던 듯싶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우리는 많은 시크교인들의 행렬을 따라 먼저 순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