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내면으로의 여행

엄마의 책상 2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고...

by 물들래

수년 동안 구상했지만 3일 만에 완성, 단어 하나 고치지 않고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애거사 크리스티가 출간한 <봄에 나는 없었다> 이 작품은 중년 여성의 비틀리고 엉킨 내면의 진실에 대해 흥미롭게 추적해 나간 심리소설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오페라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수줍음을 극복할 수 없어서 추리 소설가로 방향을 전환하여 글로 대신 노래했다.


어쩌면 <봄에 나는 없었다>의 모티프가 되었을 남편의 외도로 11일간의 가출 사건 후 이혼, 젊은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 재혼했다. 매년 떠났던 발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나일강의 죽음(1937) 등을 썼다. 1934년에 월링포드 근처 하우스를 구입해서 본거지로 삼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2017년 겨울, 런던 블루 플라크 문학여행 중 애거사 크리스티의 월링포드 하우스 푸른 명판도 찾았는데 안타깝게 리모델링 중이라 외관만 둘러보았다. 결혼 생활은 죽기 전까지 46년간 지속되었으며 부부는 각각 그들 자신의 업적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자상한 남편(로드니), 세 자녀(에이버릴, 토니, 바버라)와 함께 충실한 가정을 이끌며 삶에 자부심이 컸던 조앤은 여행 중 큰비로 인해 사막에 고립된다. 거기서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고통스러운 진실과 맞닥뜨린다는 내용이다.


자기 삶이 타인의 시선에 멋지게 보였을 거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현실을 인지하고 자기기만적 삶을 성찰하며 무너져 내린다. 사막에서의 깨달음이 조앤의 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했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엔딩에서 로드니의 독백은 그 어떤 반전보다도 소름 돋게 했으니까.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인간에 불과할 뿐'(234쪽)이라던 로드니에게 조앤은 진정으로 함께 있어 본 적이 있었을까. 조앤은 봄에만 없었던 게 아니었다. 전에도 앞으로도 죽 그 사실을 모른 채 외톨이로 살아갈 것이다.


'레슬리'는 뭐든 어중간하게 하는 법이 없다고 말한 '로드니', 그러나 로드니야말로 어중간한 사람이었다. 변호사로, 가장으로, 아빠로, 남편으로 사는 것 같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한 농부의 삶을 살아내진 못했으니까.


변호사를 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고 동정심을 갖게 된다고 한 로드니는 왜 조앤에겐 진정한 연민을 보이지 않았던 걸까. 그저 안 통하는 여자,라는 편견으로 피상적인 부부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해설자의 표현처럼 '부드러운 쓰레기' 로드니, 자기만족에 빠져 살아온 조앤, 이 허무한 부부의 세계 속에서 독자들은 각자의 모습을 반추해 보게 된다.


작중 인물 중 누구에게 마음이 움직였는가? 조앤, 로드니, 에이버릴, 토니, 바버라, 블란치, 레슬리, 셔스턴, 길비, 랜돌프, 사샤... 나를 건드린 그 인물은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내 모습이며 지금 내 삶의 일부를 보여주는 인물일 것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애거사를 읽는 동안 헤세의 문장이 계속 따라다녔다. 모두에게 묻고 싶다.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예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반쪽이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살고 있는 것이며 행복한 사람이다.

고가의 상담 대신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직시한다면 그것이 곧 자기 상담일 듯싶다. 뒤따르는 고통이 크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 여행을 이 책과 함께 떠나볼 것을 권유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에게 애거사 크리스티가 던지는 질문이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25쪽) 이 작품의 핵심 문장으로 기억하고 싶다. 독자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대는 삶의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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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이전 표지와 최근 표지


기억하고 싶은 내 마음의 밑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25쪽


한순간 인생이 너무나 멋져서 이게 현실일까 믿기지가 않다가, 이내 지옥 같은 고민과 고통 속을 헤매고! 상황이 잘 풀릴 때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데. 그런데 그렇지가 않지...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이제 절대 위로 올라가 숨 쉬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잖아. 그런 게 인생이잖니? 26쪽


뭔가를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있다는 뜻이다. 82쪽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요. 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106쪽


모든 것의 단초는…… 어디서 시작됐더라? 시를 기억하려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111쪽


인생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야.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124쪽


인생에서 삼 년을 없었던 체할 수는 없거든요. 그 세월을 그냥 일어난 일들 중 하나로 대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134쪽


로드니는 아내에게 미소 지었다. 놀리는 듯한 그의 미소가 보기 좋았다. 가끔 그는 상대방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미소 짓는 것 같았다. 175쪽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회피, 왜곡, 외면… 198쪽


그녀의 삶 전체…. 조앤 스쿠다모어의 진짜 이야기…. 그것이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에는 그 생각을 해볼 필요가 없었다.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일들로 생활을 채우기가 쉬웠다. 그러느라 자신에 대해 알 시간이 없었다. 201쪽


그녀는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215쪽


쉬운 삶, 나태한 사고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지. 219쪽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하지 않으리. 278쪽


로드니에게 가자. 미안하다고 말하면 된다. 용서해 달라고…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된다… 용서해 줘요. 난 몰랐어요. 난 몰랐을 뿐이에요… 219쪽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6쪽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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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야스나야 뽈라냐 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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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야스나야 뽈라냐 톨스토이 영지 저택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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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야스나야 뽈라냐 영지 톨스토이 잔디묘 촬영 (우)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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