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엄마의 책상 1 -『전태일 평전』을 읽고...

by 물들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감정에 약한 편이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자신이 체험했던 힘든 환경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늘을 알고,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던 전태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이것이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전태일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불공평한 노동 현실에 대해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평화시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노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14세의 어린 여공들이 겪는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분개했다. 그래서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좋게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평화시장 뒤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사회 모순 속에 그의 노력은 무참하게 깨졌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 수단인 분신자살을 통해 사회 모순에 불을 붙이고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히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자 실천한 그의 행동 앞에서 오랫동안 할 말을 잃었다. 죽었지만 그의 옹골참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으로 남아있기에 충분했다.

전태일은 타의와 환경으로 인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 청옥에서의 꿈같은 학생시절이 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저자 조영래 씨의 표현대로 전태일의 정신적인 성장과정을 보자. 이미 자신을 거부하는 '부한 환경'의 현실에 대한 비판, 그 현실과 싸워 이기려는 분명한 의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남들처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슬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였기 때문이다.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전태일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전태일이야말로, 현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자신의 인간성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학력은 짧지만, 전태일은 성숙하고 훌륭한 생각과 사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서 독자들은 자문자답해야 한다. 과연 나는 인간다운 삶을 진정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는가? 그저 생각만으로 그치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닐까?

의지를 갖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불안한 투쟁보다는 편안한 나태와 안일을 선호한 것은 아닐까? 몸보다 마음이 편안한 삶을 원했으면서도 정작 실천하는 삶에서는 늘 비껴 서 있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그 반성이 실천에의 의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단행해야겠다.


문득 안도현의 시가 생각났다. 현재의 난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가, 뜨겁게 살다 간 한 사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알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겠다. 전태일이야 말로 그늘의 의미를, 눈물의 의미를 알고 우리들의 기억 안에서 영원한 삶을 얻은 '작은 거인'이지 않은가.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라고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며칠째 "배가 고프다"는 전태일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재단사, 전태일을 떠올리면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도 1970년대 맞춤양복 경기가 좋았던 시절, '명동라사'의 사장이면서 재단사였다. 열 명 남짓한 기술자들을 거느리고 명절 때면 한 달 전부터 밤샘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족을 위해 참 열심히 일했는데, 목돈을 만들면 여러 사람에게 흩어져서 항상 실속이 없던 아버지.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니 아버지의 생애에 대해 조망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여러 해 전 청계천 산책을 하면서 마주한 전태일의 동상 앞에서 한참을 머물며 여러 단상에 빠져들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려보는 오후 12시 30분이다. 오래도록 두 명의 재단사를 기억하고 싶다.


다운로드 (2).jpg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