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영원의 문에서

웰렘 데포가 곧 고흐였다

by 물들래

"전기 영화의 한계를 넘다“


어떻게? 고흐 역의 ‘윌렘 대포’와 전설적인 화가이자 감독인 ‘줄리언 슈나벨’이 그 한계를 넘게 해주었다. 불멸의 화가 고흐의 시선으로 만나는 아를과 생레미에서의 시간, 그리고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의 시간을 촘촘히 조망한 영화였다.


영혼을 위로할 가장 아름다운 마스터피스! 고흐다움을 넘어 그대로 고흐였던 배우 윌렘 대포의 연기에 젖어 들었다. 일단 영화가 성공한 것은 고흐로 분한 ‘윌렘 대포’의 열연이 빚어낸 결과이리라. 그동안 참 많은 고흐를 만났다. 커크 더글러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바리 아츠마, 자크 뒤트롱까지, 그중 윌렘 대포가 최고였다.

스크린 속 고흐를 만나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의 허한 눈빛 속에서 깊디깊은 외로움을 만났기 때문이다. 동생 테오 품에 아기처럼 안겨서 자기 곁에 조금 더 머물러주길 바라던 그의 몸짓을 어떻게 표현하랴?

핸드헬드 촬영기법이 돋보였던 지점이 많았다. 고흐의 복잡하게 흔들리는 심리적 상태를 흔들리는 화면으로 가감 없이 표현했다. 그의 정신적인 상태가 중첩되며 앞뒤 없는 과거와 현재가 혼란스레 오가는 대사들이 겹쳤다. 비틀거리는 고흐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필자를 순간순간 만나기도 하면서. 아무 말 없이 그저 고흐 곁에서 함께 걸어주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 관람 뒤, 지인과 나눔의 시간을 가졌는데 한 분은 영화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라는 고흐처럼 자신도 귀가하면 당장 캔버스 앞에 앉아야겠다고 했다. 잡념과 허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캔버스와 자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고도 했다.


들판 위에서, 흑백으로 바뀌는 장면이 있다. 고갱이 자신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그 순간은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분도 있었고, 미술 장비를 등에 지고, 들고 달리는 장면에서는 늘 배낭을 메고 다니며 바쁘게 움직이는 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는 분도 있었다.


생명의 빛을 느끼면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던 고흐라는 인물을 스크린으로 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감독이 화가 출신이라 가능했으리라. 최적화된 고흐의 정서와 정신상태를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현장감 있게 표현하였으니까.


고흐가 말했다.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고 감동할 수 있는 미래의 관객을 위해 ‘지금 그린다’라고. 그는 필자를 비롯한 앞날의 관객을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그의 그림에 매료된 관객들이 오늘날 무수히 많지 않은가.

죽음을 피하지는 않겠다던 고흐는 자신의 말대로 별을 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 속에서 자신이 타고 떠날 별 하나를 선택한 걸까? 아니면 그의 마지막 작품[까마귀 나는 밀밭]에 등장하는 까마귀 중 한 마리의 뒤를 쫓아간 것일까?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고흐, 푸른 벌판과 황금빛 벌판을 뛰어다니면서 호흡하고. 그 벌판에 드러누워 흙을 얼굴에 뿌리며 감촉을 느껴보고 냄새 맡아보고 혀로 음미하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여성에게 거부당하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지속했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연과는 스스럼없게 접촉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예술가였다. 자연과 벗하면서 자연을 사랑하기로 작정한 화가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남은 친구는 오로지 햇볕, 나무, 벌판, 공기, 바람, 흙을 포함한 모든 자연물이었을까?


아카데믹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고흐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많이 남기게 된 배경이었으리라. 우리는 고흐의 작품 앞에서 희로애락애오욕 그 이상의 감정들을 느끼며 자신의 오늘과 어제를 반추하고 내일을 설계하곤 하지 않는가.


2009년,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을 방문했던 때가 선명하다.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 그의 눈빛과 조우했던 때를 회상했다. 그 강력한 휘둘림, 고흐의 외로운 눈빛이 필자에게 말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눠 줘"라고. 밀짚모자를 쓴 푸른빛 자화상 앞에서 긴 시간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릎에 힘이 빠지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던, 현기증을 동반한 어지럼증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스탕달 신드롬’ 비슷한 경험의 순간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오로지 두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고흐와 필자 사이를 오갔다. 유리잔에 반쯤 채워진 압생트의 빛깔과 유사한 정서였다.


영화 감상 뒤, 같은 음악인데 좀 다른 버전으로 돈 매클린의 빈센트와 영화 러빙 빈센트의 OST를 무한 반복 듣고 있다. 감동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영화 관람 뒤에 이어지는 오랜 습관이다. 이번에도 변함없었다.

들리는가? 돈 매클린의 '빈센트'가….

보이는가? 축적된 외로움에 스며드는 압생트가….

느껴지는가? 빈센트의 고독이…. 빈센트의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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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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