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1 - 광기 어린 임현정의 연주회
12월 5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시간 185분(인터미션 포함)에 달하는 '임현정의 세계 최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독주 편곡 독주회' 공연을 즐기고 왔다.
안타깝게도 편곡이란 걸 모르고 예매했다. 원곡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감상이 목적이었는데 말이다. 각설하고 공연장에 도착해서 브로슈어를 보고서야 편곡이란 걸 알았다. 원했던 원곡으로 감상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놀라운 연주회였음은 분명했다.
오케스트라 80인조와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고 난도가 높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통 한 공연에 한 곡이 연주되고 있다. 그런 대곡을 임현정은 피아노 파트뿐만 아니라 80인조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모두 한 대의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도록 직접 편곡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1번부터 4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까지 총 다섯 곡이다.
임현정은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호프만이 라흐마니노프에 대해서 한 말을 언급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강철과 황금으로 이루어졌다. 손과 팔은 강철이고 심장은 황금이었다. 이 영광스러운 예술가를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라흐마니노프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정말 경이로운 예술가란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의 인생을 생각하고, 음악을 향한 그의 너무나도 위대한 사랑을 생각할 때면 저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숙연해집니다. 여러분께 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곧 함께 나눈다는 생각에 저의 심장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 속도만큼 뛰고 있습니다. -- 임현정 연주회 브로슈어 참조
이번 공연에서는 인터미션 두 번을 포함해 총 185분 동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전곡을 단 하루에, 그것도 한 공연에서 독주했다는 게 믿어지는가.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바로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
감상자에게도 185분 연주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연주자는 어땠겠는가. 그것도 만삭의 몸으로. 연주를 들으면서 솔직히 태아가 걱정됐다. 워낙 강렬한 에너지가 필요한 연주곡이기도 했지만 몸을 불사르는 듯한 연주자가 어느 순간 온몸을 들썩거릴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태아에게 별일 없기를 바라며 내내 긴장했다. 한편으론 어떤 생명이 태어나서 엄마 못지않은 반짝거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사뭇 궁금해하면서.
이번 연주회에서는 앙코르는 절대 외치면 안 돼, 프로그램에 있는 다섯 곡을 무사히 마치고 빨리 휴식을 취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휘몰아치는 연주시간이 내겐 너무 벅찼다. 2년 전인가. 일리아 라쉬코프스키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전곡 연주회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집중해서 감상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죽하랴. 임현정의 연주회 감상은 그때보다 더 힘들었다.
연주 도중 중간에 관객을 향해 미소 짓던 시선을 보고 저런 카리스마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저 놀라웠다. 연주자의 광기 같은 게 느껴졌다. 미쳐야 미친다는 걸 증명해 보인 연주회랄까. 콘서트홀 중앙에 놓인 피아노 한대로 웅장한 선율을 채울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아름다운 광기의 연주자, 임현정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공연장을 빠져나와 라흐마니노프라는 세계에 빠져서 어떻게 귀가했는지 모르겠고, 너무 지친 몸은 숙면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하루가 또 지나고 이제야 임현정과의 만남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짧게나마 감상을 남겨둔다.
<프로그램>
피아노 협주곡 제1번 F#단조, 작품 1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작품 18
INTERMISSION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작품 30
INTERMISSION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단조, 작품 40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