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봄날, 문학의 시간을 반추하다
많은 독자들이 애정하고 기리는 故박완서 님의 8주기를 맞이하여 2002년 작가님을 만나 뵙고 작품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회고해 보려고 한다. 워낙 좋아했던 작가여서 직접 뵙고 싶었다.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001년 봄, 한 독서모임에서 박완서 작품 꼼꼼히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총 열 권의 책을 읽고 토론했다.
『나목』, 『미망』, 『어른 노릇 사람 노릇』, 『도시의 흉년』, 『오만과 몽상』, 『살아있는 날의 시작』,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리움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서 우리 일행은 이듬해 봄 인사동 ‘산촌’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 당시 [문화텍스트 독해와 글쓰기]란 강좌를 들었는데 담당 강사가 문학평론가였다. 그분께 연락처를 받고 작가님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우리 모임 취지를 알리고 일 년 뒤 멤버들과 뵙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나목이란 작품은 작가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나목’ 당선 소감에서 “나는 그 글을 쓸 동안 조금 고단하고 많이 행복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요 며칠 나는 아직 기쁨을 느끼기에 조심스럽다. 당선이란 과정이 나에게 어떤 뜻을 지니게 되려는지 나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투른 글을 쓰기 위해 서투른 아내, 서투른 엄마가 되려는 거나 아닐까? 그럴 수는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계속 좋은 주부이고 싶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악착같은 집착을 느낀다. 나는 내 이 무모한 탐욕을 위해 좀 더 고단해야겠고, 좀 더 수척해져야 할까 보다.”라고 말했는데 작가의 올곧은 근성이 느껴졌다.
작가는 소설가가 된 이후에 자신의 가장 빛나는 자산으로 주부의 삶을 들었다. 내가 박완서 님을 존경하는 이유다. 좋은 작가와 좋은 주부를 동일선상에 두고 노력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자녀에게 각별한 사랑을 쏟았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에겐 슬픈 가족사가 있다. 올림픽에 들떠 있었던 1988년 5월에 폐암으로 남편을 잃고. 삼 개월 만에 25살이었던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참담함을 겪어야 했으니까. 그 당시 심정을 여과 없이 표현한 글을 산문집 『한 마디만 하소서』 에서 옮겨본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까지는 참아 주었지만, 88 올림픽이 그대로 열린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것은 어찌 참으랴. 내가 독재자라면 1988년 내내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 본다.”
참척의 슬픔으로 한동안 절필했으나 이해인 수녀의 추천으로 피정을 통해서 이기적인 생각을 접고 다시 펜을 잡았다. 그러나 “아들의 기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신열을 앓았던 평범한 엄마”였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런 고통을 이겨냈기에 이후 더 훌륭한 작품들을 쓸 수 있었으리라.
한 작가는 문학을 공부하던 때 박완서의 소설을 대개 두 번씩 읽으며 길잡이 삼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가 있어서 속독으로, 두 번째는 천천히 문장들을 곱씹으며, 그때마다 “유려하게 반짝이고 거침없는, 있을 자리에 꼭 그 단어가 들어가 박히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가 궁금했다”라고 했다. 정말 작가의 문체에 대해 적확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문체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일이 없이, 뭐든 의식화해서 기억 속에 챙겨”둔다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박완서 작가를 표현한 글 중에 공감 가는 부분을 소개한다.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라고 한 고 고정희 시인의 표현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필자의 젊은 시절, 박완서 님은 한 마디로 삶의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소원이며 소설이 지녀야 할 첫째 미덕”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면 아껴가며 읽었는데 특히 『미망』이란 작품이 그중 하나다.
작가님을 뵙기로 한 마지막 모임에서 가독성 좋은『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었다. 한마디로 낯섦이 주는 재미가 담긴 책이다. 다양한 연령층이 소화해 낼 수 있는 내용을 다분히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능소화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아서, 발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
만나 뵙기로 한 날, 능소화 빛깔의 블라우스에 진분홍 앙고라 스웨터를 입고 오셨다. 칠순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운 피부와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화사한 모습으로 인사동 <산촌>으로 들어섰다. 구리 아치울 마을에서 인사동까지 발걸음 하신 작가님께 물었다.
“이 모임을 향해 오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라고요. 그랬더니 작가님께서는 “내 작품을 꼼꼼히 읽는 모임이라고 해서 겁이 났어요.”라고 하시며 활짝 웃으시더라고요.
맛있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전 네팔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 그 이후 박경리 선생을 뵈러 원주까지 다녀오시고도 피곤한 몸 불구하고 우리 일행에게 여행담과 작품이야기를 정답게 들려주셨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고 또랑또랑한 음색이 듣기 좋았다. '가장 인상에 남는 독자'에 대해 질문했더니 『미망』을 쓰는데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신 연로한 독자라고 했다. 『미망』을 방영했을 때 원작과 너무나 다르다는 이유로 방송국에 직접 찾아가 항의까지 하셨다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머니 독자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님은 경험하지 않는 것은 쓰지 않는다는 문학적 철학을 지니고 계셨다. 경험 속에서 나온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활자로 풀어냈던 작품 속, 인물들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시간이었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엄마의 말뚝』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와 같은 자전적 소설 이야기를 직접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라 좋았다. 정말 뜻깊고 정겨웠던 시간이었다. 특히 세 작품은 작가가 ‘언젠가 토해내지 않으면 치유될 수 없는 체증’들을 기억한 대로 풀어낸 작품이어서 일까? 작가님과 함께 했던 4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만남의 기쁨과 아쉬움을 담은 박완서 작품 꼼꼼히 읽기 독서모임 멤버의 간단한 후기를 소개한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언젠가는 글로 쓰겠다는 믿음으로 그 시대를 극복했다는 말씀에 마음이 아팠다. 진한 핑크 의상이 자꾸 생각났고 이웃집 할머니처럼 다정다감하셨다.
교육열이 높은 친정엄마 얘기와, 대화가 많았던 집안 분위기에 대해 들으면서 나 역시 자녀가 잘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좋은 만남이었다.
그분은 피부가 뽀얀 보통의 평범한 할머니셨다. 말씀을 찬찬히 하시고, 소녀 같은 수줍음이 엿보였으나 속은 굉장히 강할 것 같았다.
작품 속 ‘경아, 태임, 지수현, 영자, 문청희, 오목이, 현금’을 만들어 낸 작가님은 자그마한 키에 단아한 외모가 칠순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정했던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과 묘사의 묘미로 선생님의 작품에 흠뻑 취할 수 있었고, 더 찾아 읽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의 설렘은 꽃샘추위의 봄바람처럼 나에게 밀려왔다. 급기야 선생님과 만나기 전날은 선생님 꿈까지 꾸었으니 박완서 님은 이런 독자의 수줍음을 아셨을까? 너무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반갑게 우리를 만나주셨다.
박완서 님과 동석에서 그것도 바로 우측에서 식사하면서 남기신 밥도 한 술 얻어먹었다. 작품얘기와 사는 얘기를 할 때는 사람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박완서 님은 무슨 꽃을 좋아할까? 궁금해서 여쭈었더니 분꽃을 좋아하신단다. 나도 분꽃을 좋아할 것 같다.
헤어질 때 선생님의 씩씩하고 다소 남성적인 발걸음이 여운처럼 자꾸자꾸 아로새겨진다. 선생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정리해서 읽어보니 다양한 소감들이 오갔다. 박완서 작품 꼼꼼히 읽기 모임은 그냥 읽기로만 끝냈던 독서 패턴을 독후감까지 쓰면서 한층 깊은 사고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같은 책을 읽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라는 에디슨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내용이 떠오르다. 에디슨의 말처럼 작가님 작품으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만남이었다. 산문집 『호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건 농사밖에 없을 것 같다.>
작가의 표현처럼 정직한 자연에게 배우는 봄이 찾아오겠지. 긴 겨울을 인내하고 단단한 땅 위로 얼굴을 내민, 푸른 식물들을 만나면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따뜻한 눈길 한 번 건네는 것은 어떨까? 그 순간 박완서 작가의 시선이 건넨 푸른 식물의 언어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