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도쿄 교통패스가 오전 7:40'에 종료다. 숙소에서 7시 15분 출발, 알뜰하게 48시간 채워서 사용했다. 게이힌토호쿠선을 타고 요코하마를 두 정거장인가 지나 9시경 간나이 역에서 하차, 5~6분 도보로 숙소에 도착해서 가방 맡기고 편하게 야마테지구로 이동했다.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지나 봄바람 맞으며 걷는데 날아갈 듯 가벼웠다.
요코하마 항구가 보이는 언덕 장미 공원에 인접한 세련된 오사라기 지로 기념관 앞 고양이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기념관 곳곳에 고양이에 관한 사진과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고양이 좋아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전시일 듯싶었다. 일본에서는 나름 알려진 작가인듯싶었으니 내겐 낯선 작가였다.
고양이 애호가인 작가는 <구라마텐구>란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고 40년 동안 시리즈로 이어졌으며 60편이 넘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2층에 오르자 백과 청의 아치형 건축물만으로도 볼거리를 제공했다. 창을 통해 꽂히는 빛들의 향연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다음으로는 가마가와 근대 문학관에서 상설전과 특별전을 관람했다. 특별전은 일본 전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평론가인 오오 카 마코토 展이 열렸다.
오오카 마코토는 「아사히신문」 제1면에 6,800여 회에 걸친 시가 칼럼을 연재하면서 오랫동안 일반 독자와 소통해 왔다. '오오카 마코토가 있어서 일본전통 시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론과 실제 양면에 있어서 일본의 고전시가 전파에 공을 들인 시인이라고 했다.
상설전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쥰이치로 등 가나가와현과 연고가 있는 작가의 원고와 서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키노 신이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더불어 이상이 동경하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알고 있어서일까. 두 사람의 자료가 나란히 전시된 그곳 앞에서 이상까지 떠올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시대의 일본 작가들은 젊은 나이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이치와 류노스케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1982년 개관한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근대 문학관은 도쿄 일본 근대문학과의 자매관이다.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 등 수많은 유명 문인의 집필 활동을 한 곳이라는 점이 문학관 설립 동기를 제공했지만 일본 근대문학관의 자료 보존 정리가 힘들어지자, 설립이 추진되었다고 한다.
설립 배경이 다르듯 운영 방식도 다르다. 사회 각층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도쿄의 일본 근대문학관과 달리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근대 문학관은 현에서 운영 경비를 부담한다. 또한 일본 근대 문학관이 순수문학 중심의 문학 자료 센터라면 이곳은 근대 문학관은 대중성을 띤 문학관으로 알려졌다.
문학관 로비에서 다리 쉼을 하다가 밖으로 나서자, 절정에 달한 벚꽃이 부서질 듯 밝은 화사함을 뽐내고 있었다. 전시관 자료는 홈페이지에서도 공개하지만, 자료를 공개할 때와 공개하지 않았을 때의 관람객 수 변화가 없으며, 오히려 자료를 인터넷상에서 보고 실물 확인을 위해 방문하는 관람객이 더 많다고 한다.
미나토노미에루 오카 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요코하마항이 내려다보인다. '항구가 보이는 언덕 공원'이라는 이름처럼 요코하마 항과 베이 브리지는 화려한 조명이 어우러진 야경은 빼놓을 수 없는 절경!
특히 장미 정원은 봄가을에 아름다울 텐데 4월 초순이라 화려한 장미와의 만남은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벚꽃이 절정이어서 1937년에 지어진 영국관 2층에서 내려다본 조화로운 정원은 바스러질 듯 흩어지는 추억으로 남고.
야마테지구를 둘러보다 점심 식사가 많이 늦어졌다. 야마테 서양관에서 가벼운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나와서 야마테 234호관과 베릭홀, 구아마테 68호관과 테니스 발상 기념관, 야마테 이탈리아 정원 등을 둘러보았다.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언덕 마을에 더 머물고 싶었으나.
야마테 자료관은 요코하마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서양식 병설 주택으로 1909년 건축된 목조 건물이다. 풍자만화와 서양기, 문명개화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전시품 등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기까지의 요코하마와 야마테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요코하마시의 역사적 건물로 지정된 공간이다.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배경지이기도 한 요코하마, 항구가 보이는 언덕 코쿠리코 하숙집을 운영하는 소녀 '우미'는 낡았지만, 역사와 추억이 깃든 동아리 건물을 지키기 위해 보존 운동에 앞장선 소년 '슌'을 도우며 서로에게 서서히 호감을 느끼게 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영화다.
개봉관에서 관람하고, N차 관람까지 한 영화라 요코하마에 가면 '우미'와 '슌'을 떠올리며 언덕길을 산책하고 싶었다. 우미의 그린 하숙집과 비슷한 야마테자료관 앞에서 갸우뚱하게 되더라. 이 자료관을 확장해서 그려놓은 게 우미의 하숙집이 아닐까 싶었다.
야마테지구 주변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니 하굣길 정문에서 고교생이 쏟아져 나왔다. 우미와 슌의 학교일 확률이 높다. 교정으로 들어가 벚꽃 흩날리는 캠퍼스를 걸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 뒤를 천천히 따랐다. 동아리 건물이 어디쯤일까, 상상하며 걷고 있노라니 순식간에 고딩 시절로 돌아간 듯싶었다.
해 질 녘 어딘가의 언덕길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어둠 속 환하게 빛나는 꽃집 유리창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리며 언덕길을 천천히 배회했다. 언젠가 읽고 저장해 둔 아쿠타가와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 제일고 학생 네 명은 저녁때 기차를 타고 7시 몇 분쯤에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무슨 마을을 어떻게 걸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어딘가의 언덕에 다다르자,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불빛이 밝게 비치는 유리창이 하나 보였고, 그 안에 국화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어쩌면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꽃집이거나 다른 가게였는지 모른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화원은 보이지 않고, 만개한 벚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눈처럼 꽃잎을 흩뿌렸다.
요코하마 개항 당시의 발전에 공헌한 19세기 사람들을 시작으로, 40여 개국의 외국인 약 4,800명이 잠들어 있다는 묘지공원을 둘러보다가 류노스케의 '피아노' 중 일부를 옮겨놓은 메모장을 펼쳤다. 왠지 이런 분위기 속 어딘가에 작품 속 피아노가 나타날 것 같았다.
[비 내리는 어느 가을날, 누굴 좀 만나려고 요코하마의 야마테 주택가를 걷고 있었다. 피아노는 지금도 햇빛 아래 뽀얀 건반을 펼쳐 놓았고, 그 위에 어느새 밤 한 톨이 떨어져 뒹굴었다. … 비스듬히 피아노를 덮고 있는 밤나무를 알아챘다. … 나는 그저 명아주 수풀 속 피아노만 유심히 바라봤다. 지난해 대지진 이후 아무도 모르는 소리를 간직해 온 피아노를.]
숲속 어딘가 햇빛 아래 희고 검은건반이 드러날 것 같은 기분으로 신비로운 야마테지구 숲길을 걸었다. 이미 내 귀에는 조성진의 손끝으로 전하는 선율이 울려 퍼졌다.
야마시타 공원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에 있는 공원이다. 1923년에 일어난 관동 대지진의 잔해를 메워 1930년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요코하마의 상징인 요코하마 베이 브리지와 요코하마 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로맨틱한 공원이다.
1922년에 발표된 동요 ‘아카이구츠(붉은 구두)’의 유래가 되는 소녀상 앞에 섰다. 요코하마 항에서 배를 타고 이방인의 나라로 떠났다는 소녀에 관한 내용으로 인해 붉은 구두 소녀는 요코하마의 상징처럼 떠오른다. 요코하마 관광버스의 이름이 ‘아카이구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코하마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여 설치된 공원이다.
해 질 녘 한적한 야마시타 공원은 노을빛 추억으로 자리매김하고….
언젠가 경인아라뱃길을 걷다가 정동진과 마주 보는 지점에 정서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정서진에서 일몰을 떠올리며 야마시타 공원에서 석양을 마주했다. 이어령 선생의 &정서진 노을 종소리& 중 일부를 떠올리며.
종이 다시 울려면 바다의 침묵이 있어야 하고
내일 해가 뜨려면 날마다 저녁노을이 져야 하듯이
내가 웃으려면 오늘 울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내일의 해가 뜨면 요코하마를 떠나 가마쿠라행 열차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어디를 향하던! 방랑객의 발길은 그날의 노을을 다시 맞이하게 되리라. 그러기 위해선 바다의 침묵을 배워야 하리라.
숙소로 돌아오는 아득한 밤길, 커피 향이 내 발길을 부여잡고 오래 놓아주질 않더라. 야심한 시간 카페인과 알코올의 유혹에 흔들리다가 결국 캔맥주를 들고 야구장 앞에 섰다.
요코하마 야구장 주변은 함성으로 채워졌고. 신호등에 서 있던 많은 사람이 모두 경기장을 향해 달리듯 걷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한화 열혈 팬 선배에게 경기장 사진과 함께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