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h로 향한 기나긴 여정

까길에서의 무용담 & This is India!

by 물들래

Leh로 가기까지의 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적당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아니 표현이 불가능하다.

사실... Leh로 가는 길에 우리 모녀는 인도 여행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끔찍한 고생을 하면서 갈 만큼 아름다운 도시 'Leh'

사실, 나나 힘들었지 은비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딸애에게 그랬다.


"은비야, 너 데리고 가서 엄마 고생할까 봐 걱정이다."

그랬더니 은비가 하는 말,

"엄마, 엄마 때문에 내가 고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야."

"과연, 그럴까?"

역시, 내가 은비를 힘들게 했으면 했지 은비가 날 힘들게 한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젊음이란 역시 좋은 거다. 최대한 자유롭고 건강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젊음이란 그 무엇보다 최고로 값진 선물이 아니겠는가. 신은 그 '젊음'이란 자산을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지 않았던가.


내게도 치열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지만 삶을 즐기기보다는 배우고 일하고 모으는데 더 충실했던 것 같다. 또래에 비해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산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건대 20% 부족했던 것 같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노우, 결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 하지 못했던 것 비록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면 되니까.


각설하고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절실하게 느낀 게 있다. 바로 내 삶의 모토, '노세, 노세, 젊어 노세!'야말로 진리였다는 것. 젊은이들이여, 사서 고생하는 것도 젊을 때, 시간 쪼개서 노는 것도 젊을 때 해라.


그것이 곧 자기 계발이고 현재를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젊을 때 인도 여행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건강할 때 배낭을 메고 인도로 자유롭게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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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Leh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위에 펼쳐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시간이었으니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한반도 여행지에서는 결코 만나볼 수 없는 스케일이었다.


긴 시간, 버스에서의 여정을 낮잠 없이 가기란 힘들었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아름다운 경치를 혹여 놓칠세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차창으로 펼쳐진 인더스강줄기를 내내 따라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히말라야의 경관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해발 3,500미터의 고산지대 'Leh'


고산병을 심각하게 염려했지만 많이 힘들진 않았다. 약간의 두통과 어지럼증을 동반했지만,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거나, 구토 증세 같은 것은 적어도 없었으니까.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길을 택하기보다 스리나가르에서 레로 가는 길이 덜 고생스럽다고 해서 택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혹시 레까지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로 이동할 경우 참고하기 바란다.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겐 훨씬 견디기 쉬운 코스임에 틀림없다.

차창으로 흐르는 풍경을 보면서 문득, 포리스트 카터의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읽었던 명문장이 떠올랐다.


---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


하필이면 지금 그 책 속 내용이 떠오른 이유가 무얼까? 누군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쓰고 있는 걸까? 왠지 내 영혼이 따뜻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지는 영혼의 마음. 근육과 비슷한 마음. 그래. 나도 마음을 단단하게 키워나가고 싶었던 거다. 그러기 위해선 포리스트가 알려준 대로 쉬운듯하지만 매우 어렵기도 한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 바로 그것이 비결이다.


그러다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져 왔다. 어쩌면 지금 진행 중인 인도 여행은 마음을 키우는 과정 같았다. 지금 나는 무엇보다 우선 자신을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근육을 키워놔야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을 따라가는 여행을 이어가고 싶었다. 다람살라를 떠나는 날 새벽, 마음에 담았던 의지의 빛과 함께 내 마음을 따라가는 여행을 이어나갈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기사님이 차를 세우고 점심 식사 시간임을 알렸다. 마음의 근육뿐 아니라 몸의 근육도 중요하니 버스에서 내려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짜이 한 잔에 삶은 계란과 바나나로 가볍게 요기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식사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식사였다.


히말라야산맥을 하나 넘고, 또 넘고, 또다시 넘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나중엔 몇 개의 산을 넘었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우리는 망연자실, 그렇게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입을 연 채 다물 수가 없었다. 절대자의 존재감이 가슴속에 빼곡히 들어앉던 시간이었다.


산, 산, 산. 그 많던 산. 또다시 산. 그러다가 강줄기의 맑은 물소리를 음악소리인 양, 귀를 기울였다. 다시 드러나는 산줄기. 모래 산인 듯. 다물지 못한 입속으로 흙가루가 씹힌다. 또다시 모래 산.


"은비야. 꼭 코끼리 등가죽 같다."

햇빛을 받아 더 빛이 났던 산. 그 모래 산의 빛깔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저 빛깔을 화가들은 과연 무슨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 산이다. 그 산 중턱에서 식사 중인 현지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히말라야 설산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3,500미터의 레를 향해 끝도 없이 펼쳐진 지구 위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려서 저녁 9시에 까길에 도착했다. '까길'이란 도시에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환영해 준 것은,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던 별들이 뿜어대던 영롱한 빛이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게 몇 덩이씩 풍요롭게 뭉쳐있던 별 무리를 쳐다보며 환호를 질렀다. 아. 끝없이 펼쳐져 있던 별, 별들의 행렬을 쫓느라 목 디스크 걸릴 뻔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까길에 가장 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 5시에 같은 장소에서 출발한다는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버스 승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의 숙소가 만실이었고, 유일하게 괜찮은 숙소는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쌌다.


숙소를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다가 우리는 너무 지쳤던 모양이다. 무거운 배낭에, 고산지대에, 수없이 해대던 여권 검사에, 군용 열차와 버스와 트럭이 내뿜어대던 매연에 우리는 거의 질식 상태 직전이었다.

쓰러지기만 하면 곧 잠들어 버릴 만큼 힘든 상태였다고 할까? 사람이 너무 피곤하고 지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걸까? 까길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숙소에서의 무용담은 아마 이번 인도 여행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았다.


그 시간까지 유일하게 방이 있다던 숙소는 이상하게 1층 음식점에 들어섰을 때도 여자 손님은 하나도 없었고, 2층 숙소 입구도 심상치가 않았다. 더블룸으로 가기 위해서 도미토리룸을 통과해야 하는 이상한 구조의 숙소였다. 도미토리를 통과하는데 덩치 큰 인도 남자들이 거의 웃통을 벗고 침대에 걸 터 앉아 있었고 눈빛도 그리 선량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너무 지쳐있었다. 대충 씻고, 문을 걸어 잠근채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진이네 방, 우리 방 문을 노크하며 도미토리룸 숙박객이 수작을 부려왔다. 어디로 가느냐, 차편은 예약했느냐, 도울 일이 없겠느냐 뭐 대충 그런 얘기 같았으나 오밤중에 피곤한 여성 객실을 그런 식으로 두드려대는 법이 어디 있는가? 걸쇠를 걸어두었다고 해도 워낙 빈약한 문이라서 체격 좋은 사람이 어깨로 조금만 힘을 주어 밀면 열릴 것 같은 문을 두드려대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일단 강한 어조로 도움은 고맙지만 알아서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쉬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한참을 더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발길을 돌리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투룸 4인 여성은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잠은커녕, 온통 긴장상태에서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피곤한 눈을 떴다 감으면 눈꺼풀에 모래가 서걱거리는 것처럼 쓰라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쉬지 않고 창문을 통해 서로 모의하며 밤을 지새웠다.

새벽 5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적어도 새벽 4:30'엔 숙소를 나가야 할 텐데 어떻게 이 위험한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 끔찍한 남자들이 잠자고 있는 도미토리를 통과해서 말이다.


바지 주머니에 맥가이버 칼을 챙겨 넣고 은비에게는 스프레이 모기약을 손에 쥐여 주고 여차하면 칼로 찌르고, 모기약을 그들의 눈에 뿌려 줄 작정을 했다. 누가 앞장설 것인가? 누가 마지막 줄에 설 것인가? 순서를 정했다. 그럼에도 여자 넷이 열 명이 넘는 인도 남자의 덩치를 과연 당해 낼 수 있을까?


순간, 한국 조간신문 헤드라인 뉴스 기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한국인 모녀, 인도 라다크로 가는 중간 지점, 까길 숙소에서 인도 남성 살해!>


너무 긴 시간 긴장한 탓일까?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생리적인 현상은 정말 정직하게 나를 찾아왔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화장실 볼일이 급했지만 객실 밖에 있는 화장실로 나갈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신문지를 깔아놓고 볼일을 봤다. 세상에나. 이런 상황에서도 태어난 이래 최고로 많은 양의 배설물을 객실에 쏟아냈지 싶었다. 긴장감이 온몸을 잡아당기는 상황에서의 배설이라니. 확실한 카타르시스였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온몸으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랄까?

아주 오래전 건강하고 순수한 청소년에게 선물 받은 다양한 똥, 내 똥이 없어서 아쉽지만... 기념으로 남겼어야 했나?

진저리를 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바로 그때. 이층 창문 밖 골목으로 한패의 인도 젊은이들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창을 열고 그들에게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이층 숙소로 올라와 우리의 방 앞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나가자고 요청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우리의 숙소로 올라왔지만 도미토리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그 순간. 창문으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우리가 무사히 탈출할 때까지 우리를 지켜봐 달라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이미 낡을 대로 낡은 모기장을 발로 차서 뜯어내고 우리 넷은 한 명씩 난간을 타고 탈출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 시간에 그나마 가까이 서있던 전봇대의 가로등이 유일한 불빛이었다. 그들에게 철망으로 이루어진 담 너머로 우선 무거운 배낭을 던져 주고 한 명씩 철망을 타고 넘어서 우리는 끔찍했던 숙소를 무사히 탈출했다. 젊은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쳐다본 까길의 새벽하늘은 여전히 영롱한 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 일행은 그토록 힘들게 숙소에서 빠져나와 새벽 5시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버스정거장에 도착했건만 아무도 나와있지 않았다. 그 허허벌판 어두운 정거장에 서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킨 우리 일행은 서로 마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건넬 뿐이었다.


버스에 탑승할 일행들은 거의 한 시간을 넘긴 여섯 시에나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사에게 항의해도 나올 멘트는 뻔하지 않은가. "No Problem!" 다시 '레'를 향한 버스여행은 이어졌다. 다시 한번, 'This is real India.'를 절절히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래. 여기는 인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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