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숙소 탈출로 인해 제대로 씻지도 못했던 우리 일행은 몰골이 장난이 아니었다. 새벽 6시가 지나서 출발한 버스가 얼마나 달렸을까? 기사가 아침 식사 겸 타이어 점검을 위해 쉬어가자고 했다.
우리 모녀는 히말라야 산줄기가 마주 보이는 수려한 풍광 아래서 서로의 초췌한 모양새를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히말라야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투명한 물에 양치하고 세수까지 마치고 나니 날아갈 듯 개운해졌다. 상쾌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블랙 티를 마시고, 삶은 계란과 바나나를 먹었다. 소박하고 맛있는 아침식사였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 기사 아저씨는 인도인 중에서도 특히 낙천적이었다. 중간중간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여유 있게 점심 식사도 하고, 가끔 자유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히말라야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쭙잖은 선율을 쫓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산책했다.
점심때는 인도인은 물론 대다수의 여행객들이 뜨거운 카레를 손으로 버무려서 먹었다. 이스라엘 여행자인 젊은 여성 역시 그들의 음식문화에 적응해 보려는 자세로 손으로 음식을 먹었는데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식사를 했다. 내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 귀여운 눈웃음치며 식사하던 인도 꼬마 녀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렇게 긴 버스여행 끝에 우리는 드디어, "Welcome to Leh!"라고 씌어있는 반가운 표지판을 만났다.
버스정거장을 벗어나 택시로 창스파 다운타운에 무사히 도착. 내 눈에 비친 '레' 중심가의 첫인상은, 작은 티베트란 이미지보다는 어느 아담한 유럽의 한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만큼 '레'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중심가 입구에서 만난 한국인 젊은 연인이 괜찮은 숙소를 안내해 주겠다며 그들이 머물렀던 숙소로 안내했지만 이미 그 숙소는 만실이었다. 그때, 이웃집 아저씨처럼 수더분하게 생긴 분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집에 머물 방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머물고 싶었던 숙소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던 개인주택이었다. 아직 게스트하우스의 정식 상호도 갖추지 않은 아담한 이층 집을 숙소로 잡고 제일 먼저 우리 일행은 매연과 먼지로 뒤범벅된 몸을 씻었다. 일행 넷 모두 샤워를 마치고 나니 저녁 아홉 시가 넘었다. 모두 시장기가 발동했다.
주인집 딸의 안내로 어두운 밤길을 걸어 아담한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야외 테라스 한쪽엔 프랑스 젊은 히피들이 마리화나와 하시시에 풀린 눈빛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이상한 몸짓과 행동으로 대화를 나누며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옆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켜놓고 '레'로 오기까지의 힘들었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이제야 살 것 같다."
가성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밤 열한 시가 넘은 어두운 밤길을 플래시를 밝히고 숙소에 도착, 꿈도 없는 달콤한 숙면에 빠져들었다.
새벽 6:30' 기상.
다양한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기상하라는 듯, 창가에서 울려 퍼졌다. 창공은 내 마음속까지 청명하게 물들였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빨랫줄에 방금 세탁한 몇 벌의 옷들을 널었다. 높이 솟은 미루나무에 아침 인사를 건넸다. 딸아이는 그때까지 꿈나라!
티베트 현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처럼 보낸 날들은 외가댁에 와있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아침마다 주인집 소녀가 수줍은 미소와 함께 건네주는 짜이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4박 5일간의 일정은 아름다운 하늘과 미루나무와, 곰파와, 라마승들과,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맛있는 음식과, 근사한 풍경의 야외 카페와, 아무리 걸어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산책로, 레에서의 시간 모두가 좋았다. 은비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 길에서 만난 모든 일들이 좋았다.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든 모든 바람이 좋았다. 순박한 표정으로 '줄레!' 하며 인사를 건네오는 티베탄들의 모든 표정이 좋았다.
레에서 4박 5일을 머무는 동안, 나도 언젠가부터 그들을 만나면 먼저 '줄레!'하고 인사를 건넸다. '줄레' 발음할수록 기분 좋아졌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준 도시 '레'.
단골이 된 음식점 옥외 공간에서의 평화로운 아침식사, 그때 느꼈던 행복감. 지금도 그곳에의 행복했던 식사시간이 잊히지 않는다. 식당에서 직접 재배한 야채로 만든 싱싱한 그린 샐러드, 직접 구운 신선한 빵, 그리고 맛있는 시즐러 요리. 그곳 카페에서는 한국음악을 자 틀어주었다.
78년 대학가요제에서 들었던 익숙한 가락과 조덕배와 최성수의 노래, 가을에 들으면 적격일 듯싶은 '찬바람이 불면'이라는 노래가 계속 흘렀다. 아마 한국관광객이 주고 간 카세트 테이프를 우리를 위해 틀어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하루의 낮 시간에 우리 모녀는 여유 있게 그곳에서 여행기를 정리하기도 했고, 누워서 열린 창가로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레에서의 어느 오후, '상파르 곰파'를 향해 걷는데 느껴지는 이 데자뷔! 아주 어린 시절 외가에서의 추억과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풍경과 흡사했다. 왠지 상파르 곰파를 향한 그 길 위에서의 시간들이 내 마음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비슷비슷한 좁은 골목 두 갈래가 나타나자, 그곳의 순박한 티베탄 소녀가 수줍은 듯 곰파로 오르는 골목길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는 옅은 미소를 건넸다. '아, 저 소녀의 미소랑 지금 바라보는 옅은 하늘빛이랑 많이 닮은 것 같아.'
상파르 곰파에 올라 그곳에서 뛰놀던 귀여운 아이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눈빛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그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이동하는 도시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표정들을 비교적 많이 남겨왔다.
상파르에서의 하행 길은 오르던 길과는 다른 쪽 길을 택해서 내려왔다. 저마다 아기자기한 특색을 가진 골목길을 돌아 돌아 내려오니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우리 모녀는 다운타운으로 내려가 은행에 들러 우선 필요한 만큼의 달러를 환전했다. 은비는 그곳에서 독일인 젊은이를 만나 즐거운 교제를 즐기기도 했다. 그 젊은이는 다른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을 통해 약간의 한국어를 배운 덕에 어느 정도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는데 여행 중 만났던 한국인 중 일행이, 방귀를 잘 뀌었던지 아주 재밌는 표정으로 '방귀 뀌지 마세요'라고 정확히 발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