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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Apr 15. 2023

낄롱을 지나 마날리로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새벽 4시에 '레'에서 출발.


마날리로 향하던 버스 밖 차창 풍경은 스리나가르에서 레로 향하던 버스 밖 차창 풍경만큼이나 우리 모녀를 사로잡았다. 빗방울도 간간이 떨어졌고, 순식간에 안개가 뒤덮여 버리는가 하면 어느새 안개비가 걷혀 히말라야의 맑은 얼굴을 들이밀곤 했다. 마날리 행 새미 디럭스 버스 1인당 요금 Rs 430.

새벽에 출발한 버스는 저녁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낄롱'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그곳 도미토리(하루 숙박료 1인당 Rs 25)에 묵었다. 버스에 탄 모든 여행객들이 깊은 히말라야산속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것이다.


우리 모녀는 동시에 소변이 급했다. 화장실이 제대로 갖추어졌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여행객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곳 주민들에게 화장실을 물었더니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봤다. 그 표정은 그의 눈앞에 펼쳐진 넓은 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희들 앞에 펼쳐진 땅이 모두가 네 화장실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래. 대낮이라면 모를까. 이 깜깜한 밤에 어디에서 볼일을 본다 한 들 누구의 눈에 띌 리 만무했다. 우리는 제법 조용한 장소로 자리를 옮겨서 시원하게 방뇨를 했다. 주저앉아 올려다본 낄롱의 밤하늘에선 수없이 많은 별들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대자연 한가운데서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마주한 별들은 내게 경이로움을 전달함과 동시에 한없이 미약한 존재의 가벼움을 자각하게 했다.


누군가가 03:30'에 맞추어 놓은 자명종 소리에 도미토리에서 숙면을 취했던 모든 여행객들은 동시에 깨어나 겨우 눈곱만을 떼어 낸 채 무거운 배낭을 다시 싸 들고 버스에 올랐다. 샛별이 더 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의 조명등 아래서 나는 어김없이 자문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지금 히말라야산맥 깊은 낄롱 마을에서 하나의 점처럼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크게 심호흡했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파고드는 섬뜩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채로 새벽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히말라야산맥을 휘돌아 감고 있던 풍경을 바라보며 지금 혹시 내가 꿈길을 거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은빈 찬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버스 창을 열고 그 멋진 경관을 계속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새미 디럭스 버스는 좌석 구조가 상당히 불편하게 되어 있다. 2인용과 3인용 좌석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다. 우리의 좌석은 3인용이었다. 그것도 차창 쪽 좌석은 이미 현지인의 자리가 되었고 우리 모녀는 그 현지인의 옆좌석에 배치되었다.


현지인은 비교적 체격이 큰 남자였기에 1인용 좌석에 앉은 게 아니라 1.3인용 좌석에 앉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0.7인용 좌석이 바로 내 차지였다.


도저히 참기가 어려워, 그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뭐라고 얘기했는지 지금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내 자리까지 침범한 너 때문에 지금 나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러니 네 자리를 확실히 지켜라. 그 비슷한 표현으로 보디랭귀지와 콩글리시를 섞어 말했더니 이 남자, 갑자기 너무 미안한 표정이 되어 그 큰 체격이 금방 1인용 좌석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다행히 이 남자의 목적지는 '낄롱'이었던 모양인지 새벽에 버스에 올랐을 때 3인용 우리의 좌석 버스 차창 쪽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졸지에 우리 모녀는 마날리까지 너른 좌석을 차지한 채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웬걸! 얘네들은 다음 정거장에서 또 다른 여행객들을 태웠다. 그래서 우리의 편안한 자리 확보는 무산되었지만 어쨌거나 차창 쪽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서 마음껏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사실 서울을 떠날 때, 내 루트에는 '스리나가르'도 '레'도 '마날리'도 예정에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수정한 루트로 이동하면서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새롭게 짠 루트에서 나름대로 충만한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은비가 찍어 준 사진 한 장을 오래 들여다밨. 공 벌레처럼 구부리고 앉아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많은 생각을 했겠지. 아니 어쩌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중이었을 수도 다.


인도. 그때 내가 머물고 있던그  땅.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내 마음을 리도 편하게 해 주었던 걸까?


자연의 품에 안겨 저마다 개성으로 조화를 이루는 나라, India.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날씬하면 날씬한 대로,

수염을 기르고 싶으면 기른 대로,

면도를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대로,

코를 골며 자고 싶으면 코를 고는 대로,

입을 벌리고 침 흘리며 버스 안에서 해롱대는 대로,

이곳이 인도이기 때문에 모든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곳.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아름다움인 나라 인도. 의식 선진국 인도.

누군가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삶 자체에 감사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그들.

얼마나 더 달렸을까? 기사의 안내 멘트에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주변 텐트촌에 잠시 머물면서 우리 모녀는 오믈렛과 따뜻한 짜이 한 잔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텐트 식당에 살고 있는 티베탄 아이의 재밌는 표정과 짓궂은 장난이 유독 기억에 남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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