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3일 조용필 콘서트 후기
50대부터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중 올봄 새롭게 기록한 버킷리스트는 조용필 콘서트 다녀오기였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곧 70세가 되는 인생 선배와 5년째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그분과 의외로 잘 통하는 분야가 있다. 특히 음악에 관해서 그렇다. 나이가 70이지 몸과 마음은 50대 초반으로 착각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이다.
그분과 BTS 활동과 팬텀싱어 시즌 4에 대해 대화 나누고 전철로 이동할 때면 누가 좌석을 양보(백발이 트레이드마크) 해도 그분은 정중히 사절(건강을 지키기 위해 거의 서서 이동하심) 하고 우리 둘은 서서 작은 목소리로 영화와 음악 얘기에 열을 올렸다.
포레스텔라 공연 티켓을 끊고 응원봉까지 챙겨놨다는 이야길 듣고 나보다 10년은 젊게 사는 것 같은 그분의 인생에 박수를 보냈다.
조용필 콘서트는 이미 여러 차례 다녀온 선배님께 올봄 콘서트 계획이 있다는 얘길 들었으니 예매 관련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했고, 예매 일시를 전달받은 후, 반드시 원하는 좌석 예매에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그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일하느라 1시간이 지난 뒤에야 예스 24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뿔싸, 좌석은 단 3개가 남은 상태였다. 잔디석과 2층은 모두 매진, 3층 좌석만 3장이 남은 상태라 하는 수없이 사이드 한 좌석(룸메가 등산 가는 날이라 혼자) 남은 쪽으로 예매를 마쳤다.
어쨌든 가왕 콘서트의 분위기 정도는 느낄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콘서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드디어 공연 당일, 우여곡절(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 끝에 콘서트 시작 20분 전에 내 좌석에 착석할 수 있었다. 예매 노하우가 있는 선배님은 잔디석 예매 성공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일단 잠실 전철역에서부터 놀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올림픽 스타디움을 향해 걷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런 행사에 참여했던 적이 언제였지? 내가 올림픽 스타디움에 발걸음 한 적이 있었나 반추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오래전 <엘튼 존 공연>과 <비제의 카르멘>을 관람하기 위해 두 차례나 왔었던 장소였음을 뒤늦게 기억해 냈다. 그 공연에서는 잔디석 맨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좀 흐리긴 했지만 공연하기엔 괜찮은 날씨였던 것까지 기억이 났다. 엘튼 존 공연에서는 2부로 접어들자 비가 조금씩 흩뿌렸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지난날들을 한참 생각해야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그러니까 세 번째 방문인 셈이다. 스포츠 경기 관람이 아니라 엘튼 존과 카르멘에 이어 조용필의 무대를 만나기 위해서.
가왕의 무대를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가왕의 넓은 음악의 폭을 대변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고, 그 대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입장하던 뒷모습들을 상상하는 것도 흐뭇했다.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설렘을 동반한 채, 입구에서 멋진 응원봉을 받아 들고 입장했다. 준비해 준 응원봉은 티켓 가격에 포함된 듯싶은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들고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응원봉이 잠시 후 관중의 함성을 불러일으키리란 것을 그때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메인스타디움 바로 옆 야구장에서도 야구 경기가 있어서 잠실역 주변은 한 마디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이런 정신없는 풍경 속에 섞여보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석양이 지나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을 때의 청색 저녁 하늘을 좋아한다. 딱 그 톤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3층은 등받이도 없는 좌석이라 2시간 동안 허리가 좀 아프긴 했다.
하늘을 멍 때리며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관중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야? 하고 관중석을 둘러보니 우리가 작동하지도 않았는데 응원봉에 불이 켜졌다. 색깔이 변화하면서 2시간 내내 콘서트의 열기를 돋우는데 한몫 제대로 한 응원봉, 너를 정말 칭찬해 주고 싶다.
폭죽쇼와 함께 무대에서 휘황찬란한 불꽃축제가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거대한 LED 화면을 뒤로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가왕이 등장했다. 조용필식 록의 절창으로 평가받는 '미지의 세계'로 콘서트 문을 열었다.
이어졌던 못 찾겠다 꾀꼬리로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드디어 입을 연 가왕의 멘트는 간단했다.
"저는 별로 멘트가 없습니다. 다 아시니까 그냥 즐기세요. 저는 노래할게요."
콘서트에 온 관객들이 그 노래 듣고 싶어서 왔는데 왜 그 노래만 뺐냐,는 항의가 있었던 탓일까? 내가 참여했던 이날은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듣고 싶었던 가왕의 노래를 거의 다 듣고 온 것 같아서 참으로 기뻤다. 드디어 그의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인, '창밖의 여자'를 불러주었다.
내 마음속에 오빠로 등극하게 했던 대표적인 곡, '고추잠자리'
노래를 부르는 도중 맞바람으로 콧물이 나온다면서도 그의 명곡들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바람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고.
위대한 탄생의 연주는 주 경기장을 휘감아 돌아 조용필의 목소리를 감싸다가 퍼트리다가 폭발시켜 주었다.
대부분의 노래를 관중들이 떼창으로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는데 감격스러웠다. 어느 순간 나도 그냥 소리를 내질렀다. 내 옆에 앉은 세 커플의 부부도 맞지 않는 음정이지만 열창을 하고 있었고. 뒤에 앉은 어떤 언니는 '아~ 너무 행복해. 용필이 오빠 너무 좋아.'라며 연신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다.
'비련'의 첫 소절이 나오자 탄성이 쏟아졌다. 비련뿐이랴 모든 노래에서 관중의 탄성이 터져 나오던 순간들이 있었다. 아니 거의 모든 노래가 그랬다. 초기 히트곡도 모처럼 불러주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잊힌 사랑' 등.
'모나리자'에서부터 관객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여행을 떠나요'를 부를 땐 관객 모두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서 떼창!
앙코르곡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바운스'를...
가왕은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흐르는 물임을 입증했다. 지난해 발표한 '세렝게티처럼'을 부를 땐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밤하늘 위로 쏟아지는 별을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가왕은 2003년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국내 가수 중 처음으로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 이후 이번 공연까지 모두 여덟 차례 공연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야제 때 이 무대에 처음 올라서 10집 수록곡인 '서울 서울 서울'을 불렀다는데 그 노래를 부를 때 35년 전 그때를 떠올렸을까. 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첫 멘트에서 그가 말했다.
"제 나이가 올해 몇 인 줄 아시죠? (먼저 손가락으로 표현 후) 쉰다섯입니다. 아직 괜찮습니다." 쉰다섯은 그의 무대 인생 나이였다. 일흔셋의 나이로 2시간 동안 공연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오롯이 혼자 25곡의 명곡으로 꽉 채웠던 가왕의 콘서트는 한 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그의 무대 앞에서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더라. 준음치 수준임에도 관객 모두가 하나 되어 떼창을 부를 수밖에 없던 흥 많은 대한민국 백성이 맞구나 싶었다.
클래식만 선호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클끼'만 있는 게 아니다. 난 역시 한국인이다. 내 안의 '뽕끼'도 발견했으니까.
마지막 곡으로 불러준 Bounce, 이 곡을 부르며 퇴장했던 가왕 조용필! 그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낸 잊지 못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