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내 어머니를 이해하는 방법, 페미니즘

by 봄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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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엄마와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신 선물을 챙기려는데 두 분의 취향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자, 생각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갔다. 엄마와 아빠의 현재를 일부 알고 있었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

엄마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딸이 엄마를 인터뷰해 적은 글을 읽었고 아주 간략한 방향이 잡혔지만, 다른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하지? 단순히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정확히 답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인터뷰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수년 동안 실천하지 못한 이유다.

이 책도 무엇을 질문할지에 대해 답하고 싶어 읽기 시작했다.


책은 ‘엄마’가 회상한 ‘엄마’의 이야기와, ‘딸’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기억을 더 해 ‘엄마’의 삶을 이해하길 시도한 결과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렇게 행동하게 된 근간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페미니즘을 사용한다.

나의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사용한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 답이었지만 분명히 납득되는 답이었다. 저자의 ‘엄마’처럼 그 시절 삶의 중요 갈래는 보통 사회가 정한 길-결혼, 양육, 광범위한 돌봄-을 따라 정해졌고, 이 갈래들을 빼고서는 그 삶을 이해하지 못하듯 이 갈래를 선택하게 된 근본적 원인-가부장제-를 빼고서 이해를 시도한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다만, 페미니즘이란 이해 방법을 사용한다면 나는 내가 나의 엄마와 아빠를 볼 때 애써 외면했던 부분을 봐야만 한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다층적인 인물이라는 사실, 즉 사회가 정한 ‘이상적 어머니’와 ‘이상적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 믿는 바를 따라 살아온 사람인 동시에 사회가 만든 암묵적 분위기-가부장제-에 휩쓸리는 것을 피하지 못한 개인이기도 하다는 것 (이렇게 써 놓은 것만으로도 괴롭기는 하지만, 사람은 이상적이기만 할 수 없으며 살아가며 사회적 분위기를 완벽히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엄마의 이상적인 부분만 볼 수 없다는 건,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엄마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도 샅샅이 살펴봐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조금 더 선명하게 인터뷰 방향이 잡혔다. 엄마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엄마는 어떠한 이유로 그 선택을 했는가. 그 선택은 엄마가 원해서 결정한 것인가, 그렇게 결정하게끔 몰아간 무언가가 있지는 않은가. 그 어떤 질문에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건, 엄마는 사회가 정한 이상적 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 엄마를 인터뷰한 뒤에는 아빠를 인터뷰해야겠지.

나는 이 질문들로 나의 엄마와 아빠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나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억압하기도 하는 두 사람의 이유를 이해함으로써, 나에게 상처 준 일이 나를 아프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님을 가슴으로도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 하재영 저, 휴머니스트 펴냄, 2023.02.27 출간


+) 책을 읽으며 한 생각과 책 속 이야기

자신이 주어진 역할을 거부한 뒤에 겪게 될 주위 반응과 상황을, 다른 거부자가 겪은 일을 봄으로써 무의식중에 짐작하고, 자신도 모르게 위기와 위험을 피하고자 사회의 요구를 따르는 방법을 내재화하게 된다. 내재화의 무서운 점은 의문 없이 자동적으로 내재화된 행동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p.83, “가부장제는 모든 남자에게 정신적 자기 절단을 행할 것을, 자신의 감정적 부분을 도려낼 것을 요구한다. 만일 자신을 감정적으로 불구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남자가 있다면, 가부장제의 다른 남자들이 그의 자존감을 공격하는 힘의 의식을 틀림없이 거행해준다.”_벨훅스

p.105, 그날이었어. 너에 대한 배신감을 버렸어. 기대감도 버렸어. 더 잘하라고, 잘할 수 있다고 채찍질했던 것, 이 정도 일도 이겨내지 못해서 무엇이 되겠느냐고 다그쳤던 것, 다이어트를 하라고, 더 예뻐지고 날씬해져야 한다고 압박했던 것, 그 모든 것을 다 버렸어. 네가 내 곁에만 있으면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너를 잃을까 봐 두려웠어.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네가 도망칠까 봐 너무 무서웠어. _저자의 ‘엄마’ (저자는 당시 발레리나 지망생이였음)

p.194, 나는 공존할 것 같지 않은 감정이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달아갔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기, 미워하면서 사랑하기. (…) 할머니를 사랑하기에 두렵다. 나의 글쓰기로 우리의 사랑을 배반할까 봐, 할머니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나쁜 시어머니’로 만들어버릴까 봐. _저자

p.207, 며느리-아내-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_저자

p.235, 내가 슬픈 건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가 아니야. 추억할 게 없다는 걸 깨달을 때야. _저자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