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반 고흐의 그림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아마도 미성년자였던 학생 시절 반 고흐의 그림이 좋아 고흐의 편지를 엮은 이 책을 읽었었고, 최근 그림 선생님 덕에 다시 읽게 되었다. 두 번의 독서 중 다른 점은 예전에 읽을 때는 그림을 보는 것만 좋아했지만 지금은 약 7개월간 유화를 그리고 배우는 중이라는 것인데, 반 고흐라는 화가의 인생을 훑어보던 첫 독서와 달리 이번에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의미를 담는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도 그중 하나다. 회화를 보러 아트전과 개인전을 자주 간다.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작가가 나와 같은 시대를 살기에 보다 많이 같은 사고와 감정을 공유하고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다.
마음을 흔드는 그림을 보면, 이 그림이 그려지게 된 시작점과 그림을 그리던 순간순간에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가 궁금해진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도 반 고흐의 그림은 좋아하면서도 고흐가 그림에 무엇을 담으려 하는지는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인상파라는 명칭의 ‘인상’이 고흐의 그림을 지레짐작하게 한 걸까? 그 ‘인상’이 무엇이었는지도 세밀히 알려 해야 했는데. 이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창작물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고흐의 편지 속 문장들을 통해 고민할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색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림을 그리게 되며 고민하게 된 부분이다. 내가 본 색을 정확히 캔버스에 담는 것은 힘들며, 캔버스 위의 색은 인지된 사물의 색보다 과장되어야 그나마 내가 본 사물과 유사한 형태(느낌)를 가진다. 이 두 부분이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림을 그리며 깨달은 점이다. 그림을 그릴 때 선생님이 여기엔 이러한 색이 있다고 조언하는데, 이때껏 색을 하나로 뭉쳐 인식해 와서(명암-빛-도 마찬가지다) 아직 색을 쪼개어 보는 게 어렵다. 에드워드 호퍼 전에서 그림을 보며 색의 분리와 빛의 분리를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자세한 공부 방향-어떻게 쪼개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림과 그림 밖의 풍경을 고려해 그림 그리기;
이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고흐의 편지를 요약하고 응용하자면 그림에 따라 어울리는 배경이 다르며 그림을 놓고자 하는 특정한 곳이 있다면 그림의 구성도 그 배경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흐는 액자도 자신이 선택했는데, 그림을 볼 때 액자도 시야에 들어온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거장의 시선 전의 영국 내셔널갤러리 영상에서도 액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도 앞으로 소장할 그림에 액자를 씌우게 되면 충분히 고민해야지(물론 작가에게 맡기는 게 가장 정확한 선택이겠지만).
고흐의 건강 상태는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강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겪은 정서적 괴로움과, 계속되는 건강 악화. 건강 악화의 경우 고흐가 제대로 먹지 않고, 건강을 해치는 행동(과음하기, 담배 피우기, 무리하기)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피해 가려면 피해 갈 수 있던 상황이 발생했다는 게 더 안타까웠다. 결국 성실히 그림을 그려왔으면서도 인정받기 시작할 즈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정서적 건강과 뇌전증 악화에 고흐의 생활 방식이 악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은 정신적 노동뿐만 아니라 신체적 노동을 많이 요구하는 작업이니, 그림 그리는 작가님들은 꼭 세 끼 잘 챙겨 먹고, 운동 매주 하고, 밤낮 지켜서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자는 매일을 살아 주세요. 건강에 안 좋은 생활 하며 그림 그리다 병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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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저, 신성림 옮기고 엮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1999.06.15 초판 출간, 2023.02.01 3판 24쇄
1) 반 고흐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
그들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사람들이다. 일을 하려는 욕구로 불타지만 손이 묶여 있고 갇혀 있어서, 한마디로 어려운 환경이 그를 억눌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지. /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그를 새장에 가둔 아이들이 말한다. (…) 나는 갇혀 있다! 내가 이렇게 갇혀 있는데 당신들은 나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한다. 바보 같은 사람들! 필요한 건 이곳에 다 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새처럼 살 수 있는 자유가 없지 않나! _1880년 7월
2) 그림에 담는 의미
모든 주의를 그 나무에 기울여서 그 안에서 어떤 생명이 살아 숨쉬게 되는 경지까지 이른다면 부수적인 배경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_1881년 10월 12~15일
내가 추구하는 것은 특유의 분위기이다. 해질녂의 나른한 어스름을 배경으로 소녀의 머리와 작은 손에 깃든 빛과 생명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 (…) 데생이 제대로 된다면 그림의 4분의 3은 투박하게 그리고, 오직 어린 소녀가 앉아 있는 부분만 부드럽게 감정을 실어 그릴 생각이다. _1882년 1~2월
내가 풍경을 그릴 때도 그 속에는 늘 사람의 흔적이 있다. _1882년 3월 14~18일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대지에 달라붙어 있지만 폭풍으로 반쯤 뽑혀나온 이 시커멓고 옹이투성이의 뿌리들 속에,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을 담아내고 싶었다. _1882년 5월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속에 가을 저녁의 느낌, 신비롭고 소중한 분위기가 스며들기 전에는 떠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인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강하고 흔들림 없는 붓질 몇 번으로 그 특징을 한 번에 다 집어넣으면서 재빨리 그려야 했다. _1882년 9월 3일
비오는 날 아침, 그 앞을 지나다가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 보았다. 대부분 왜소한 노파들이었는데, 하는 일과 생활수준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삶을 지탱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간신히 버텨왔다는 게 확연히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 무리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표정이 인상적이어서 그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복권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_1882년 10월 1일
모든 사람이 모델을 알아보게 될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 세부사항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인물을 그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 단순화할 것이다. (…) 팔짱을 끼고 있는 부부의 그림은 아버지, 어머니가 모델로 자세를 취해주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초상화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늙어온 모습이다. _1883년 7월 11일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한다.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한다. _1885년 4월 30일
3) 색의 표현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늘이 보여주는 갖가지 색채와 색조이다. 보랏빛 아지랑이, 짙은 자주색 구름에 반쯤 덮인 빨간 태양, 이 구름의 끝은 눈부실 정도로 선명한 빨간색이다. 태양 근처는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고 그 위로 노란색 광선이 보인다. 그건 점차 초록색과 파란색, 흔히 말하는 하늘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여기저기 보라색과 회색 구름들이 태양빛에 물들어 있다. _1882년 8월 15일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은 라일락색과 흰색을 섞어놓은 미묘한 효과를 내는데, 그것은 내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색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장면 전체의 인상을 잡아내는 열쇠이기 때문에 반드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_1883년 11월 16일
그들(아카데미)은 그림에 맨살과 똑같은 색을 쓰는데, 가까이서 봤을 때는 그들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그들의 그림은 지독할 정도로 밋밋해 보인다. 분홍색, 섬세한 노란색 등의 부드러운 색조들은 거친 효과를 만들어내니까. 반대로 내가 그린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초록빛을 띤 빨강, 노랑이 섞인 회색,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많은 색이 뒤섞여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인간의 살이 물감에서 튀어나오는 듯 주변에 공간이 생기며 진동하는 빛줄기가 그 위로 쏟아진다. _1886년 초
나는 다른 모든 것을 죽여버린다는 그 그림 속 색의 힘을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포르티에 씨는 자신이 소유한 세잔의 그림을 따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캔버스 옆에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의 색채를 죽여버린다고 말했지. 세잔의 그림은 황금색 배경에서 훌륭해 보이는데, 그것은 그림의 색조가 뛰어나고 모든 단계의 색이 아주 짙게 칠해졌기 때문이다. _1888년 6월 12~13일
실제와 똑같이 그리고 색칠하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설령 현실을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색이나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이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_1888년 6월
그림 그리는 일은 힘든 노동과 딱딱한 계산을 병행하는 일이다. 그래서 작업 중에는 극도로 긴장하게 되고, 단 30분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 몽티셀리는 채색을 아주 잘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가닥으로 세분된 색조와 톤을 세심하게 계산해서 아주 균형 있게 그림을 그렸지. 그의 두뇌는 이런 노동으로 혹사되었던 게 틀림없다. _1888년 7월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_1888년 9월 3일
4) 배경의 중요성 (그림 속과 밖)
인물의 톤이나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은 배경이 어떻게 그려졌나에 달려 있다. _1882년 8월 20일
그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말아라. 황금빛 색조와 함께 배치해야 그림이 더 잘 살아난다. 불행하게도 흐리거나 검은 배경에 놓인다면, 대리석 같은 질감이 죽어버릴 것이다.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황금색이 이것을 돋보이게 해준다. _1885년 4월 30일
그림을 걸 때 ‘룰랭 부인의 초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해바라기 그림 두 점을 걸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그렇게 해서 세 그림이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노랑과 오렌지색으로 그려진 여인의 머리는 양쪽에 노란색이 가까이 있음으로 해서 더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 내 의도는 일종의 장식을 만드는 것이거든. 예를 들어 배의 선실 구석 같은 곳에 말이다. 그러면 공간이 확장되면서 그 그림의 구성이 왜 그토록 단순한지 이해하게 된다. 중간 그림의 액자는 붉은색으로 하고, 함께 진열할 해바라기 그림들은 폭이 좁은 나무액자로 해라. _1889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