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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Feb 12. 2021

우리 안의 성장 욕구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되어가고 있는가?

오늘을 사는 내게 중요한 질문 -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되어가고 있는가?


한국을 떠나 세계를 무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일을 그만뒀다. 대신, 나는 어제의 나와 비교해 오늘 내가 맘에 드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맘에 드는 나”란 “어제보다 성장한 나”이다. 


매슬로(Maslow)의 욕구단계설의 최상위에는 “존중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남이 나의 성장을 인정해 줄 때,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고, 내가 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때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된다. 이 두 욕구는 인간이 가진 진화에 대한 본능, 즉 “성장에 대한 갈망”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니체


내가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되는 시간을 돌이켜보니 가장 힘들었던 기간과 맞닿아 있다. 이를테면, 영어 리딩 실력이 가장 빨리 늘었던 시기는 미국에서 비즈니스 스쿨을 다닐 때였다. 전 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고자 밤새 아티클을 읽으며 스트레스받으며 공부하던 시기에 영어 리딩 실력이 많이 늘었다.  


채팅캣 사업에 매진하던 시간,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과 싸운 지난 4년은,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가장 많이 성장한 시간이었다. 실리콘밸리의 대부라 불리는 존 헤네시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책에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멘탈이 강해진다"고 했다.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일단 바닥까지 내려간 경험을 하고 나면, 이후의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고난을 이겨낸 경험을 통해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성장한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당시에는 고통을 준 사건 사고들이 내게 성장의 기회를 주었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을 참 많이 바꿨다. 하지만, 나에게 2020년은 어느 해보다 수월한 해였다. 마침내 승소의 댓가인 소송 비용을 받아냈고, 주식 시장에 넣은 이 돈이 시장이 호황이다 보니 크게 불어났고, 실업 급여에  팬데믹 지원금까지 더해져 통장에 꽂혔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컨설팅 요청이 끊이지 않아 몸과 마음은 물론 금전적으로도 넉넉한 해였다. 물론 자유를 속박하는 여러 가지 제약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일 아닌가. 몸 건강하고, 딸린 식구 없는 나는 상대적으로 참 감사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지난 4년간의 소송을 통해 단단해져 있었다. 나를 변호하지 않으면 지는 상황, 수억의 변호사 비용이 드는 상황을 4년을 견뎌냈으니, 밖에 나가지 않기, 사람 만나지 않기만 실천하면 되는, 즉,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펜데믹 상황은 내게 너무 쉬웠다. 게다가 소송은 혼자 하는 싸움이었던 반면, 팬데믹은 전 세계 누구나 겪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나뿐만이 아니다. 주변에도 보면 평소에 곡절을 겪은 사람들은 팬데믹에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변화 없는 예측 가능한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 팬데믹이 힘겹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생각될 때의 원칙 - 최선을 다하자


4년 소송을 겪는 동안 왜 힘들지 않았을까. 왜 홧병이 날 것 같은 날이 없었을까. 


그 무렵 나는 회사에서는 너무 바빴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잠이 들기에 바빠서 내 감정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정작 힘든 것은 혼자인 시간이었다. 늦게까지 일하다 퇴근하는 길, 혼자인 시간에 까만 밤 운전대를 잡고 엉엉 울었다.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 만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빠져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고 느껴지던 순간에 나를 지탱 시켜 준 것은, "힘든 때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자"는 원칙이었다. 


상대측 변호사가 요구한 자료는 수천 페이지에 달했다. 자료를 준비하고, 내 변호사가 이해할 수 있게끔 영어로 번역하고, 변호사가 초안을 작성한 답변서를 읽어내려가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류를 찾아내는데 수백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제 그만 변호사에게 넘길까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그럴 때면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물었다. "에이프릴, 너 최선을 다했니?" 4년 동안 소송을 준비하는 내내 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송에서 승리했다. 돌이켜보니, 행여 몇몇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소송 결과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내겐 다른 선택안이 없었다. 최선을 다한 후에야만, 비로소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을 때 후회가 없다. 그래야만 트라우마가 없다.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만드는 마인드셋


우리가 팬데믹을 통해서도 경험하듯 세상에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도전적인 삶을 살수록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어릴 때 나는 내가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렇게 생각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이 평탄했던 덕분이다. 말도 안 되는 소송으로 회사를 잃어보니 열심히 한다고 늘 성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며, 교통 법규를 잘 지켰는데도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살다 보면 내 잘못과 상관없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떤 이들은 세상을 원망하며 평생을 보내고, 어떤 이들은 세상이 던져준 도전을 지렛대 삼아 더 크게 성장한다.


스토아 철학가 세네카는 “고난”에 가치를 부여했다. 그는 “노동이 몸을 강하게 하듯, 고난은 마음을 강하게 한다. (Difficulties strengthen the mind, as labor does the body)”고 말했다. 즉, 세네카에 따르면 “고난"이란 사고력을 연습하고 개발할 수 있는 더없는 성장의 기회이다. 


누구나 힘든 일은 피하고 싶은 본능이 있지만, 고난이 생길 때 이를 “피하고 싶은 일"로 인식하는 대신, “세상아, 다 덤벼라”라는 태도를 살 수 있다면, 삶의 어떠한 도전도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마치 산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내려올 것을 알면서 왜 고생해서 오르지?””라고 생각하며 산을 오르면, 산행은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가 되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내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오르면 고생은 도전이 되고, 결과는 성취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나는 삶이 준 모든 도전을 “성장의 기회"로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삶이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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