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을 언제 보았는지 흐릿해질 만큼 흐린 날들이 속절없이 계속된 듯합니다.
환영받지도 못할 가을비가 야속했지요.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그동안의 땀과 노고가 결실을 맺어야 할 계절이라 더 아쉬움이 커졌겠지요.
연일 계속된 비에 질펀해진 숲길에 걷는 즐거움도 줄어들고 그저 의무감만 남은 듯 걷습니다.
공기가 눅눅하니 몸도 따라서 눅눅해지더군요.
아침 숲길도 따라서 게을러졌습니다.
습한 공기에 차가워진 새벽은 눈 뜨는 시간도, 몸을 일으키는 시간도 늦어집니다.
오늘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몸은 나른하게 이불속에 잠기고 몽롱하게 잠긴 눈으로 게으른 아침을 맞이했지요.
7시가 넘었나 봅니다.
유리창 너머 환한 햇살이 마음까지 환해지는 듯했습니다.
칙칙하고 퇴색된 대기가 새뜻하게 빛났지요.
오~~~ 눈부신 아침이야^^
간단한 아침을 먹고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나무 사이 비치는 숲은 어찌나 청량하던지.
눅눅해진 땅과 무성한 풀 사이를 햇살이 머무는 싱그러운 색채들
그 자체로 눈부셨습니다.
부드럽게 흙내음이 스며듭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실어오는 향기입니다.
쨍한 햇살이 땅의 수분을 날리며 그렇게 향기를 만듭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햇살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온 아침이지요.
가끔은 너무 쨍한 햇살을 피하느라 그늘을 찾지만
오늘만은 바지를 걷어붙이고 반팔을 입고 두 팔을 벌려봅니다.
가을바람에 큰 호흡을 하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다 내뱉길 반복합니다.
마치 무겁게 쌓인 감정의 찌꺼기조차 다 토해내려는 듯 크게 크게.
더 깊은 산행을 하면 참 좋을 날인데 해야 할 일이 있어 아쉬운 마음조차 들게 합니다.
산행하기 좋은 날.
큰 나무들 사이사이 땅과 풀에 비치는 햇살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이 고마워 한참을 햇살 아래 서 있었습니다.
잠시 햇살에 생각이 머뭅니다.
내 삶에는 어떤 햇살이 있었을까?
나는 어떤 빛으로 삶을 살고 살아냈을까?
가난한 살림에도 90권의 책으로 자식들의 배움을 밝혀준 부모님,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우고 참된 배움을 찾아가게 한 동료들,
건조한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준 남편,
나를 일으켜 세우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좋은 교사가 되도록 채찍질한 아이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그릇을 넉넉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준 아들과 딸,
뒤늦게 내 욕망과 삶의 달뜸을 알게 해 준 덕질,
그저 한없이 품어준 자연.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좋은 음악이 있었고
언제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자연이 있었습니다.
고독한 시간을 찾았지만 삶이 외롭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햇살에 마음도 찬란해진 아침 숲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