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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Jul 06. 2021

아이는 원하는 걸 정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엄마! 아침에 일어나면 내 방으로 와서 나 깨워주고, 조금 뒹굴거리면서 이야기하자."

"응... 그래..."


꾸마가 밝게 웃으면서 부탁을 하길래 나는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정말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걸 내게 말한다. 최근에 자주 울면서 너무나 짠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엄마! 내가 어디 부딪혀서 다쳤을 때나 아플 때, 진심으로 내 걱정해주면서 괜찮냐고 물어주면 안 돼?"


그러고 보니, 아이가 어디에 부딪히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먹일 때, 난 영혼 없이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왜 울어?"


아이가 왜 저렇게 우나...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아이를 다독여주지 못하고 되려 짜증을 냈다. 그런 내게 꾸마는 오히려 엄마에게 무엇이 서운했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달라고 정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꾸마처럼 내가 뭘 원하는지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했고, 내 필요를 채워달라고 표현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게도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나, 안 도와주나... 마치 덫을 놓듯이 지켜보고, 그 덫에 걸리는 순간 분노를 표출했다.


예를 들어 빨아놓은 옷들을 개어달라고 버젓이 소파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남편은 도와주기는커녕 그저 무관심했다. 그냥 빨래해놓은 걸 좀 개어달라고 말하면 됐을 것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떤 날은 남편이 흔쾌히 집안일을 도와줬던 날도 있었지만 기대와 달리 나는 그것 역시 기쁘지 않았다. 왜일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내가 집안일을 잘 못하니까 남편이 도와주려는 건가... 남편이 어떤 걸 해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 있으면 자기가 쓰는 화장실 청소 좀 해!"

"내가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왜 화를 내? 내가 시간 있으면 해달라고 한 거잖아."


지금처럼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6년 전 사업을 시작한 뒤,  재택근무하는 남편과 24시간 동고동락 중에 우리는 서로의 말 한마디에도 서로 이가 갈리고 날카롭게 날이 섰다.


나는 우리 부부 사이의 균열을 느꼈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온누리 교회에서 진행하는 젊은부부학교에 우리 부부가 참여하게 되었다.


3년 전, 참여했던 부부학교 덕분에 가장 좋아졌던 부분은 우리 부부가 서로 뭘 원하는지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디 외식을 가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먹자고 얘기하지 않았던 남편은 이제 자신이 뭘 먹고 싶어 하는지 말한다. 나는 집안일을 도와주나, 안 도와주나 덫을 놓는 게임을 멈췄다. 대신 나 역시도 남편에게 요구했다.


"자기가 집안일을 설령 못 도와주더라도 내가 집안일하고 나면 고생했다고 말해줘."

"하던 일 진짜 그만두지 않을 테니까 제발 내가 힘들 때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줘."


내가 집요하게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줘를 입에 달고 살 정도였는데... 남편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영혼은 없었지만 또박또박 고.생.했.다. 이렇게 말해줬다. 아무리 아내가 뭘 해달라고 요구를 한들 해주지 않으면 그뿐인데 남편은 달랐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해 줬고 표현이 서툰 남편이 날 위해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줘서 고마웠다.




예전에 한 노부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내가 죽기 전에 말했단다. 나는 평생 당신을 위해서 닭다리를 양보했다고. 그러자 남편이 말했단다. 말을 하지 그랬어. 나는 닭다리를 좋아하지 않고 닭날개를 좋아했는데 당신이 닭다리를 먹지 않길래 닭날개를 양보했다고.


오래전 나는 이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남편에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절대로 들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남편이 설령 지겨워할지라도 이렇게, 저렇게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지금의 딸도 나를 따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내게 말하는 걸 보면서 다행이다 싶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몰랐던 시절, 나는 될 대로 되라지... 그냥 날 방치했다. 다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눈치를 살피고, 그걸 채워줄 생각만 했지, 정작 내가 원하는 건 뒷전이었다.


이제는 작은 하나라도 나에게 선물을 준다. 일을 하고 나면 영화관을 간다든지, 본방을 놓쳐버린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본다든지... 별 건 아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의식적으로 내가 알아주면 되지... 내가 원하는 걸 하나씩 선물한다. 그게 설령 쿠키 한 조각일지라도.


5분, 1분이 아까운 아침 시간이지만 내일 10분 일찍 일어나서 아이가 말한 대로 꾸마를 깨우고, 뒹굴거리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나눠야겠다. 일할 때 일찍 도착해서 준비를 하듯이, 내 사랑스러운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서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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