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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Dec 16. 2022

난생처음 보컬 학원에 간 아이가 울컥했던 이유

요즘 꾸마는 걸그룹 노래 푹 빠졌다. 아이브 노래를 수백 번, 수천 번 불러서 가사를 줄줄 외울 정도다. 식사할 때 노래를 틀면 춤추고 노래한다고 밥을 먹지 못할 정도라서, 식사 때 노래 재생 금지령까지 내렸다.


두 달 전, 아파트 내에서  키즈 댄스 수업을 한다길래,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꾸마에게 운동 삼아서 해보라고 권유했는데 싫다고 했다. 꾸마는 춤보다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 학원 다니는 걸 많이 힘들어해서 그만두고 싶어 했던 꾸마에게 배우고 싶은 게 생겼다니... 내심 반가웠다.


뭐든 내친김에 하자는 주의인 내가 맘 카페에 검색해보니 아이가 혼자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인근에 앨범을 많이 냈던 발라드 가수 분이 운영하는 보컬 학원이 있었다. 그 보컬 학원 원장님이 카페에 남긴 글에 문의 댓글을 달았더니 바로 쪽지가 왔다. 체험 삼아 한 달 다닌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았다. 다음날, 보컬 학원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요즘 걸그룹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노래에 손질 있는 건 아닌데 좀 소극적인 아이가 노래 배우고 잘 부르게 되면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엄마 나름대로의 보컬 학원에 보내고 싶은 이유를 말하고 그날 바로 상담 겸 체험 수업을 하러 갔다. 아이는 하교하자마자 노래를 배우러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이 났다. 원장 선생님이 체험 수업할 때  부를 노래를 준비해달라고 했는데 아이는 마치 오디션이라도 보러 가는 것처럼 떨린다며 평소 잘 부르던 노래를 보컬 학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연습을 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말도 잘하지 못하는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급하게 잡힌 체험 수업 일정이었음에도 아이는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노래하는 게 떨린다고 했지만 싫은 내색 하나 없었다. 떨리는 마음 너머에 설레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현실 엄마라서 운전해서 보컬 학원 보낼 생각에 내심 막상 체험 수업해보고 아이가 다니기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조금은 싫어하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수업을 듣기 위해 차로 픽업하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기에. 그리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노래를 배운다고 이렇게 공을 들여야 하나  싶었다.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학원에 도착해 아이는 일대일 체험 수업을 위해 연습실에 들어갔다. 방음이 잘 돼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연습실 문 유리창에 비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낀 상태로 노래를 불러도 마스크 위로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이 여과 없이 보였다.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어떻게 노래를 하겠나 했었는데 기우였다. 아이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뽐내고 있었다. 짧은 체험 수업이 끝나고, 발라드 가수 출신 원장님이 말했다.


"아이가 노래에 소질이 있네요. 여기서 노래 배우면 실력이 많이 늘 것 같아요."


소질 있다는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하는 것도 잠시, 냉정하게 말해서 학원 원장님은 수강 신청을 유도하는 거라고, 걸러 듣자, 오버해서 말씀하시는 거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이는 옆에서 계속 이 학원 다니고 싶다고 해서, 아이 등쌀에 못 이겨 수업료를 결제하고 학원 문을 나섰다. 자기 원대로 보컬학원에 다니게 된 꾸마가 좋아서 춤이라도 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나한테 한 번도 노래 잘한다고 칭찬 안 해줬는데, 보컬 선생님한테 처음 칭찬받았어. 나는 잘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어."


엄마, 아빠를 향한 서운함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자기 노래를 전문가에게 인정받아서 기뻐하는 마음이 커 보였다. 가슴 벅찬 눈물이었다. 아이의 말대로 나와 남편은 딸이 노래를 부르면 잘한다고 칭찬은커녕 시끄럽다고, 그만 불러라고 잔소리하기 바빴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때 한 번도 잘한다고 박수 쳐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부모님이 칭찬 한 마디 해준다고, 아이가 지금 당장이라도 걸그룹이 되겠다고 공부를 내팽개치진 않을 건데 말이다. 워낙 걸그룹 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아니까 잘한다고 하면 헛바람이라도 들어갈까 봐 두려웠던 마음도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에 관한 건 앞서서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걸그룹이 되겠다고 꿈꾸는 그 순간부터 나는 오디션에 떨어지거나, 걸그룹이 되지 못해 아이가 겪을 좌절과 실패를 미리 떠올렸다. 즐기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에게 칭찬은 못해줄망정, 정확히 말하자면 찬물이라도 끼얹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진정 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보컬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딸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이가 즐기고 좋아하는 걸 엄마인 나도 지지해주고, 칭찬해줘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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