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사람은 드물다>를 읽고...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소설, <좋은 사람은 드물다>는 베일리 가족이 플로리다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여행 도중에 할머니의 기억 속에 있던 비밀 벽이 있는 옛날 집을 이야기하자, 아이들은 그곳에 가자고 조른다. 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베일리는 차를 돌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전복 사고를 당한다. 그때 탈옥한 부적응자 일당을 만나고, 베일리 가족은 차례로 죽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는 부적응자에게 좋은 사람이라며, 기도하라고 여러 차례 말한다. 부적응자는 예수님이 모든 것을 흔들었다며, 자기가 직접 못 본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부적응자에게 “너도 내 아기들 중 하나야, 내 새끼들 중 하나!”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부적응자의 총에 맞아 숨진다.
나는 이 소설이 좀처럼 해석되지 않아 여러 번 읽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되짚어 보았다. 그 가운데 이야기 속 할머니와 나의 친정엄마가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엄마는 늘 어린 내게 말했다. 복 받을 짓을 해야 복을 받는다, 예수님 잘 믿어야 잘된다고. 난 엄마의 이런 얘기가 듣기 거북했다. 내가 지금 잘되지 않는 건 엄마 말마따나 내가 복 받을 짓을 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잘 믿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 몸이 아파서 교회 주일 예배를 한 번 빠졌는데, 당시 엄마는 나를 걱정하기보다 작고 여린 마음에 채찍질을 가했다.
“그런 정신머리로 교회 빠질 거면 학교도 가지 마라.”
어린 시절부터 내가 고꾸라질 때마다 엄마는 나를 위로해 주기는커녕 아프게도 날 정죄했다. 듣기 싫은 얘기가 쌓일수록 점점 더 비뚤어진 걸까. 결국 ‘엄마는 내가 절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단정 짓게 되었다.
내 유년 시절을 반추해 봤을 때, 난 철저하게 혼자였다. 엄마는 매일 새벽기도에, 밤마다 계속되는 철야 예배로 나를 홀로 두기 일쑤였다. 엄마는 일주일 정도 기도원에 가려고 나를 외할머니집이나 사촌오빠네에 맡기고 간 적도 많았다. 난 엄마한테 버림받은 것 같았다. 슬펐다. 외로웠다.
20살이 된 이후, 반항심에 교회에 아예 가지 않았다. 엄마가 믿는 하나님이 싫었다. 엄마가 날 혼자 두고 하나님을 찾으러 갔으니, 엄마 품을 뺏은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엄마가 믿는 하나님, 이 소설 속 할머니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마도 남편에게 상처받은 우리 엄마도, 가족들에게 존중받지 못했던 할머니도 종교에 귀의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은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하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라고 숱하게 외쳤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겠지만, 결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던 당신들의 외침은 그 누구의 마음에 와닿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었던 게 아닐까?
12년 전, 내 아이를 낳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처럼 친정엄마도 날 낳고 좋아하긴 했을까? 기쁨의 느낌표가 아니라, 의구심의 물음표만 자꾸 생겼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살아보세, 셋째는 의료보험도 되지 않았던 시절에 엄마는 가족계획에 없었던 셋째, 나를 낳았다. 여태 친정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진 못했는데 나의 탄생을 후회하셨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기뻐하셨을까? 아이를 키울수록 엄마의 마음을 자연히 알게 된다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소설 속 할머니는 마치 예수님이 된 것처럼 부적응자를 내 새끼라며 죽기 직전까지 품으려고 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나쁜 딸인 나에게 친정엄마는 “축복한다. 사랑한다. 기도하고 있다”라고 문자를 끊임없이 보낸다. 상황은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빼닮았다. 나는 이 소설도, 우리 엄마도 공감하려 할수록 어렵기만 하다. 소설 속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는 건 어쩌면 내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단 증거겠지. 곁에 있어 달라고 우는 날 남겨둔 채, 교회로 향했던 엄마를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내게 멀고도 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