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별 기대 없이 넷플릭스에서 <중증외상센터>를 보게 되었는데 매 편 끝날 때마다 ‘벌써 다 끝났어?’라고 느낄 정도로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이야기. 로그라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예의주시할 정도인 우리나라 대표 대학 병원의 히어로로 등장하는 백강혁 교수. 보는 내내 ‘세상에 저런 의사가 어디에 있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드라마의 장르는 단순히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판타지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좋았다. 아이언맨이 죽어서 좀 시들해지긴 했지만, 나는 십수 년 동안 일편단심 마블 영화 마니아가 아니던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만을 위해서 몸을 불사르는 모습이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삶과 죽음이 매 순간 결정되는 전쟁터 같은 의료 현장을 실감 나게 보고 있으니,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역시 이 맛에 드라마를 보는 거겠지.
백강혁 교수는 항문외과 펠로우 양재원을 ‘항문’이라고 부르며 놀리지만, 그의 패기를 눈여겨보고, 중증 외상팀으로 스카우트한다. 그렇게 백 교수의 제자 1호가 된 재원은 스승에게 묻는다. 시스템은 엉망이고, 병원은 돈이 되지 않는 외상센터를 부담스러워하는데, 왜 그렇게까지 무모하리만큼 환자를 살리려고 하냐고. 그때 백 교수는 교통사고가 나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아버지가 이곳저곳 병원을 돌다가 결국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환자를 꼭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자신만의 이유를 반드시 찾으라고 충고한다.
백 교수의 울림 있는 질문의 화살은 내게도 향했다. 100일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자꾸 캐묻는 것 같았다. 백 교수와 그 제자처럼 환자의 목숨을 살리고야 말겠다는, 그 간절한 이유가 내게는 있을까? 목표를 정해야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법. 100일 글쓰기가 목표이니까, 그저 100일만 채우면 된다고 안일하게 여겼던 건 아닌지, 초심을 잃고 나태해진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오늘 글을 겨우 쓰고 ‘내일은 또 뭘 써야 할까?’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저 머리를 비우고 싶어 보게 된 드라마였다. 하지만 보고 나니 더 절실한 마음으로 ‘무엇을 쓸까?’ 고심하게 만드네. 이상하다. 혹 떼러 갔다가 되려 혹을 하나 더 붙이게 된 기분이랄까. 스승을 따라 사선을 넘나드는 중증 환자들과 온몸을 내던진 사투를 벌이며 성장하는 제자처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고민과 함께 고군분투하다 보면 나 역시도 ‘어느새 이만큼 왔네’ 싶은 순간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