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중 하나는 가계부 쓰기다. 요즘 유용한 가계부 어플도 많다지만, 손으로 직접 쓰는 가계부가 효과적이라는 전문가들 얘기에 솔깃했다. 뭔가 시작하기 전에 장비 구매는 즐거운 법. 지난해 끝자락에 새해부터 쓸 요량으로 평점 높은 가계부를 룰루랄라 샀다. 계획대로 새 마음, 새 뜻으로 1월 1일부터 쓰고 있으니, 현재 두 달째 쓰는 중이다.
아직 가계부 쓰기 초짜이기도 하고, 쉽게 써야 맨날 쓸 것 같았다. 품목별 지출 분석까지는 힘들고 나날이 수입, 지출을 간단하게 쓰고 있다. 지난달에 매일 같이 써도 지출이 줄어들기는커녕, 내가 이렇게 많은 돈을 쓰고 있나, 자괴감만 들었다. 이럴 바에야 가계부 안 쓰고 전처럼 마음 편하게 소비하는 게 낫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1차 고비였다.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언제나 가슴 깊숙이로부터 저항심이 올라온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네가 그런다고 바뀔 것 같아? 그만둬! 그냥 편하게 살아!’ 나쁜 마음이 자꾸 나를 곤두박질치게 만들려는 찰나, 안 되겠다 싶어 고개를 심하게 도리도리 했다. 이게 뭔가 잘되려고 하는데, 방해하는 신호임을 자각한다. 멈추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그렇게 한고비를 넘기고, 두 달째 가계부를 쓰고 있는데 아직까진 극적인 소비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계부 쓰기 습관이 정착되었으니 그게 어딘가. 그것만으로 성과가 있다고 본다.
어찌 보면 소소한 습관 쌓기 덕분에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는 게 가능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기 전에 책상에 앉아 유튜브로 일기 쓸 때 들을 음악을 검색하다가 혹해서 가십거리를 본 다음에, 일기 쓰기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주로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아 100일 글쓰기 초안을 쓴 후, 육퇴(육아 퇴근) 후 다시 책상에 앉는다. 100일 글쓰기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다가, 1분이면 쓸 수 있는 가계부를 먼저 쓴다. 그 다음에 일기를 쓰든, 100일 글쓰기를 쓰든 그날그날 기분에 맡긴다. 기존에 이미 몸에 밴 습관 전후로 새로운 습관을 끼워 넣는다는 게 포인트다. 가계부 쓰는 게 겨우 1분이니까 쉽게 매일의 습관으로 추가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가계부를 쓰고는 있지만 하루, 한 주, 한 달 대략 어느 정도의 돈을 쓰고 있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자괴감만 밀려왔던 순간도 많았다. 얼마 전, 아이가 걸그룹 아이브 멤버의 사인이 랜덤으로 들어간 티라미수 케이크를 꼭 사고 싶다고 해서 여의도 있는 <더 현대>에 갔었다. 아이 성화에 못 이겨 간 거지만 푸드트럭까지 있고 즐비한 먹거리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배가 고픈 상태였다. 그건 소비의 고삐가 풀릴 대로 풀렸다는 얘기다. 가족 세 명이 저녁을 먹고, 디저트를 먹고, 집에 가서 먹을 간식까지 잔뜩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체 먹는 데만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집에 오자마자, 마치 반성문을 쓰듯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기계부를 썼다. 13만 원 넘게 썼다. 남편에게 저녁 한 끼 해결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썼다고 한탄했다. 남편은 모처럼 백화점 가서 즐긴 건데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는 아이브 사인은 덤이고, 핑크색 하트 스푼으로 핑크빛 티라미수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찬물을 끼얹는 매몰찬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비록 현명한 소비는 못했지만 행복한 소비는 했다는 합리화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가계부를 써도 충동구매를 하는데, 왜 아직도 계속 쓰고 있냐고? 사실 또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다음에는 이렇게 돈을 낭비하지 말아야지, 외식을 좀 줄여야겠네, 텀블러에 커피 담아서 도서관에 가야지.’처럼 가계부를 쓰기 전에 전혀 해보지 않았던, 크고 작은 절약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매번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외식 한 번,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는 큰 변화라고 믿으련다.
얼마 전 남편이 3년 전에 샀던 내 갤럭시 워치를 보면서 말했다.
“자기 워치 너무 오래되고 낡은 것 같은데, 이제 바꾸는 게 어때?”
“왜 그래? 아직 멀쩡한데... 그리고 아직 잘 모르나 본데... 나 이래 봬도 가계부 쓰는 여자야!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