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때도 용기가 필요해

by 방송과 글 사이

새해가 되었다. 그건 새해 결심도 많아졌단 얘기다. 작년 연말부터 ‘새해에는 이걸 해야지. 저걸 할 거야.’ 희망으로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100일 글쓰기부터 학점 은행제 심리학 2과목, 요가 수업, 영어 그룹 스터디, 피아노 수업, 교회 일대일 양육자 교육에 이르기까지 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배움이었다. 하지만 풍선도 너무 많은 바람을 불어넣으면 터지는 법. 과부하가 걸렸다. 이럴 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엇을 계속하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결정해야 했다.


과거에 나는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강의나 수업을 듣는 일정들로 꽉 차 있었다. 그래야 내가 더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 피폐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 즐기는 마음도, 기쁜 마음도 없이 그냥 하고 있다는 걸. 두 손 가득히 꽉 쥐고 어느 것 하나 놓지 못했다. 그걸 놓아버리면 큰일이 날 줄 알았다. 멈춰야 했다.


결국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미션 수행을 하듯이 하나씩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줄여나갔다. 원래라면 하나를 끝내면 새로운 걸 채워 넣는 식인데 그걸 하지 않은 것만으로 부담감이 점차 줄어들었다. 내가 원해서 참여했던 강의나 수업이 사실 날 옥죄여왔음을 알아차렸다.


7년 전, 10년 넘게 해온 일에 매너리즘에 빠졌던 난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것은 드라마 작가 공부였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면 삶의 의미를 되찾을 것만 같았다. 매주 왕복 2시간 거리의 드라마 작가 교육원을 오갔다. 학생들의 습작을 평가해 기초반–연수반-전문반-창작반으로 올라가는 프로세스인데, 나는 연수반에서 전문반으로 진급되지 못했다. 좌절감이 컸지만, 당시 연수반 선생님께서 AS 반을 만들어주신 덕분에 몇 명 학생들과 드라마 스터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 전문반에 합격했고, 드라마 작가가 되는 길에 가까워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부푼 꿈에 젖은 시절은 잠시뿐이었다.


전문반에 간 나는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임하는 다른 학생들과 자꾸 비교하며 작아지고, 고꾸라졌다. 공모전에 혈안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드라마 작가가 되려고 했는지도 모를 지경이 이르렀다. 내 작품 품평회가 다가올수록 나는 ‘날이 날카롭게 섰으니까 조심해라’라고 온몸으로 말하며,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힘들게 할 거면 때려치워.”

“당신이 뭔데 내가 진지하게 하는 일을 그만두라 마라야?”


울며불며 남편에게 화를 내고 나서야, 이미 그만둬야 했지만 미련 때문에 놓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행복하지 못한 습작생에 불과했다. 3년 동안 공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끊임없이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작할 때보다 더 큰 용기가 절실했다. 마침내 그 용기로 드라마 공부를 접을 수 있었다.


뭔가 배우기 좋아하는 난 ‘언젠가는 써먹을 때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여전히 이 강의, 저 강의, 이 수업, 저 수업을 신청한다. 예전의 나라면 모든 것을 꾸역꾸역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부담되고, 내가 즐겁지 않다면 내려놓을 수 있다. 다시 시작한 피아노 수업처럼 새로이 설렌다면 복귀할 수 있다.


드라마 작가 공부를 힘들게 그만뒀던 경험 덕분일까. 얼마 전 큰마음을 먹고 학점 은행제 2과목을 중도하차했다. 신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벼워졌다. 며칠 전에는 1년 가까이 해온 영어 그룹 스터디도 그만둬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맙게도 함께 해온 선생님과 언니들이 언제든 다시 돌아와도 된다고 얘기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엄청나게 고민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 별거 아니네,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그만둘 거면 애초부터 왜 시작했냐고? 힘겹지만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은 일이 될지, 그저 부담되고 어렵기만 한 일이 될지는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다시금 돌아나가면 그뿐이다. 앞으로는 ‘시작했으니 무조건 끝내야지’라는 강박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