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책상이 갖고 싶었다

by 방송과 글 사이

새해를 맞이한 이후, 부쩍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 바로 내 책상이다. 뒤돌아보면 침대가 있어서 책상에 앉자마자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들기 일쑤. 이래선 도저히 내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자꾸 집 밖으로 겉돌았다. 그런데 100일 글쓰기 덕분에 틈틈이 책상에 앉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부여잡기라도 하듯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감으로 만들고, 그걸 써 내려가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집 앞 헬스클럽에 가기 위한 어려운 관문이 운동복 갈아입기가 아니던가.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책상 앞에 앉는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내 책상이 따로 없었다. 10년 전에 이곳으로 입주했을 때 방 하나를 옷방 겸 내 작업실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1인 기업을 운영했던 남편이 사무실처럼 쓸 방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혼자 꿈꿔왔던 내 공간을 내줬다. 결국 나만의 자리는 식탁으로 밀려 나가게 되었다.

식사 이후 말끔히 치워도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치고 집중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실과 주방 중심부에 식탁이 있다 보니, 자꾸자꾸 집안 곳곳의 지저분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시험 전날 꼭 책상 정리를 야무지게 하는 학생처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있으면 평소 하기 싫은 집안일도 어쩜 그렇게도 재밌는지 모르겠다. 어떤 날은 내가 집안일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 책상에 앉아 일하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일하는 등 집 안팎으로 떠돌아다녔다. 내 키에 맞지 않은 책상이나 낮은 테이블에서 일해온 탓인지 등은 구부러지고, 거북목이 심해졌다. 직업병이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그 당시에는 뭔가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도, 내가 변화를 끌어낼 만한 힘과 여유도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잠자리 독립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희망의 빛이 보였다. 매트리스 두 개를 깔고 세 명 가족이 같이 잤던 안방에 침대 하나를 넣고, 아이 방에 침대 하나를 장만했다. 그 말인즉 안방에 침대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얘기다. 우리집에 내 책상만 없다는 박탈감이 늘 있었기에, 내 책상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심사숙고 끝에 원목 책상을 샀고, 그 책상이 지금까지 나만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떠돌이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대로 내 몸을 방치할 수 없겠다 싶어서, 노트북을 내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거치대를 갖췄다. 거치대 덕분에 자세도 좋아지고, 어깨와 목 통증이 많이 줄었다. ‘내 책상도, 거치대도 진작 샀으면 좋았을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책상 얘기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부모님과 언니, 오빠가 함께 살았던 옛날 우리집에도 내 책상이 없었다. 좁은 집에 언니, 오빠 책상을 겨우 놓을 정도였다. 막내인 나는 자연히 펼치고 접기 쉬운 밥상 위에서 공부도 하고, 만들기도 했다. 그때 ‘나는 언제쯤 방바닥이 아닌 의자에 앉고 책상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길고 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취업한 언니의 책상을 물려받아 썼다. 비록 새 책상은 아니었지만 내 책상이 생겨서 그저 좋았다.

책상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건 어쩌면 내 안에 ‘한’이 서려 있어서겠지. 책상, 그게 뭐라고... 어렸을 때 갖지 못해서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나 보다. 그렇다면 지금은 나만의 책상을 갖게 되었으니 그 소중함을 알고 잘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저 책상에 앉아서 치열하게 뭔가를 해야 하는데, 게으르고 나태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날 보면서 많이 좌절하고 실망했다. 그런데 나는 왜 꼭 책상에 앉아 ‘치열하게’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렸을 때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책상이 없었던 시절에 난 책상만 있다면 꼭 뭔가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게 아닐까?

이제는 같은 책상이지만 다른 마음으로 마주하고 싶다. 책상에 앉아 손만 뻗으면 달력에 스케줄도 적고, 가계부도 쓸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100일 글쓰기를 해도 되고, 그냥 노래만 들어도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대로다. 꼭 일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엎드려서 잠시 쉬어도 되고, 멍때려도 상관없다. 그 무엇이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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