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 친구들의 엄마들 모임이 있었다. 그때는 내성적인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아이들과 엄마들의 친목 모임이 절실했다. 아이들 등원 후 서로의 집을 오가며 모닝커피도 마시고, 여유롭게 브런치도 먹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아이들 하원 후 놀이 모임이면 좋았겠지만, 원래의 취지를 서서히 잃었다. 가족들 저녁을 주고 나와서 만나긴 했지만, 엄마들끼리 모여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다. 12시, 1시, 2시, 3시... 엄마들의 귀가 시각은 점차 늦어졌다. 나중에는 동네에 있는 술집들 마감 시각을 다 꿰고 있을 정도였다. 점점 주량이 늘어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주전부리처럼 남편, 시댁 욕이 늘어가는 건 더 심각했다.
“꾸마 엄마, 요즘 너무 늦게까지 술 먹고 들어오는 거 아니야?"
보다 못한 남편이 그날도 외출하는 내게 잔소리했다. 저녁까지 다 차려주고, 집에 나오면서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리는데, 아이 재우는 거 하나 못 도와주고 싫은 소리를 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가정적인 남편에게 큰 불만이 없었음에도, 엄마들 모임에 가면 욕하는 분위기를 함께 타는 건지, 작은 부부 문제도 확대하여 해석되기 일쑤였다. 남편과의 사이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잦은 술자리에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기에 그 모임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내 의지만으로 빠져나오긴 쉽지 않았다. 내가 소외되는 건 괜찮지만, 아이가 무리에서 소외되는 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렇게 끌려다니듯이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 아주 성실하게.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졸업 이후, 뿔뿔이 흩어져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엄마들 모임은 자연히 와해되었다. 아침과 밤 모임이 사라져서 서운할 줄 알았다. 하지만 후련했다. 아이 육아를 핑계로 일을 많이 줄인 상태였는데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 무렵 내게 미니멀 라이프를 전해준 친구 덕분에 비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점점 삶이 가벼워졌다. 당시 너무 버리는 데 혈안이 된 날 보면서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버리다가 남편도 버리겠다.”
물론 남편을 정리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불편한 인간관계를 끝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예전 엄마들 모임처럼 괴로운 관계라면 또다시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절대 끊어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모임이 있었다. 바로 대학교 동기들 계모임이었다. 총 6명이었는데 나만 경기도에 살고 나머지는 모두 경상도에 살았다. 졸업 이후, 매달 곗돈을 붓고 주로 경상권으로 여행을 다녔다. 아기 엄마가 된 이후 혼자만의 여행이 여의찮았지만, 모임에 빠지면 어떻게 될 줄 알고 남편과 조리원 동기 언니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참석했다. 그렇게 애써서 오랜 시간이 걸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갔으니, 그저 반갑고 좋기만 하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볼 때마다 내 마음을 항상 어렵게 만드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어디서 서울말이고? 서울 물 좀 먹더니 서울깍쟁이 됐나?”
“왜 단톡방에 동참을 안 하노? 니만 바쁜 줄 아나?”
“옷은 어디서 샀노? 하나도 안 어울리는 거 알제?”
“왜 말을 별로 안 하노? 병풍이가? 니는 대학생 때도 그랬제?”
처음엔 장난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진짜 가마니로 보였나 보다. 두 친구는 맞장구를 치며 내 외모, 옷차림, 말투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후회와 자괴감으로 괴로웠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별 반응을 보이지 못했는데 그 친구의 가시 돋친 말을 받아치지 못해서 내내 원통했다. 다음 모임에는 기필코 복수할 거라 다짐했지만 번번이 당하기만 했다. 친구가 분명히 잘못했는데, 그깟 일로 속상해하고, 복수까지 상상하는 내가 너무 지질해서 싫었다.
매달 5만 원 냈던 곗돈이 많이 쌓이기도 했고, 해외여행 대신 국내에서 플렉스 하자며 친구들은 풀 파티가 가능한 인천 송도 파라다이스 호텔로 숙박을 잡았다. 하룻밤에 100만 원이 넘는 호텔은 난생처음 가봤다. 아이들 없는 풀 파티라니 여기가 진짜 지상 낙원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낙원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두 친구도 함께 오지 않았던가. 나는 어느새 나락으로 떨어져 여행 내내 두통과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모처럼 멀리까지 와서 웃고 즐기는 친구들한테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내 마음을 정리했다. 그 계모임을 나오자고 결심했다. 예전에 나라면 만나면 좋기만 한 4명의 친구들의 만남을 생각해서라도, 2명의 무시, 비하 발언을 그냥 참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좋은 친구들을 위한 희생쯤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숱하게 읽은 비움에 관한 책에서는 인간관계의 비우기도 강조하지 않았던가. 몇 년에 걸쳐 잔짐 절반 넘게 비운 나는 이제 불편한 관계 역시 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직접 만나서 얘기할 정도로 용기도 없었고, 단톡방에 탈퇴 의지를 구구절절 전한 후 그 단톡방에서 나왔다. 10년 넘게 이어온 계모임을 그렇게 카톡 하나로 마무리한다는 거 자체가 내게 소소한 복수였는지도 모르겠다. 플렉스 여행 바로 직후의 폭탄선언에, 내가 좋아했던 친구들은 바로 내게 전화했다. 하지만 날 불편하게 만들었던 두 친구는 역시나 연락이 없었다. 뭔가 비웠을 때 괜히 버렸다는 뉘우침보다 가벼워지고 후련한 마음이 컸듯이,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나왔던 그 계모임은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후회와 미련 따위 남아있지 않다.
관계의 비움, 그 힘겨운 경험 덕분일까. 지금은 아이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때문에 끌려나가는 모임은 지양한다. 내가 설레고 좋으니까, 내게 필요하니까 자진해서 나가는 모임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