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꿔왔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 그 방에서 때론 요 하나 깔고 낮잠을 자거나, 때론 책 하나 들고 뒹굴뒹굴하거나, 때론 크게 소리 내며 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꽉 채워진 방이 아니라 확 비워진 방을 동경하게 된 건 7년 전, 내게 미니멀 라이프를 전파한 친구 덕분이었다. 화장기 없고 애써 꾸미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멋이 있고, 수줍어 보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해 당당해 보였던 친구였다.
“고양이 좋아하면 우리집에 놀러 와도 돼!”
그 친구는 막 친해질 무렵 선뜻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며칠 뒤 친구 집에 가게 되었는데 여느 집과는 사뭇 달랐다. 자질구레한 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생활에 딱 필요한 것만 있었다. 세 명 가족과 두 고양이가 사는 거실 하나, 방 두 개 집이었는데, 좁아 보이기는커녕 짐이 너무 없어서 그런지 목소리가 울릴 정도였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친구처럼 비우는 삶을 간절히 살고 싶어졌다.
친구가 도움이 될 거라며 추천해 준 미라(미니멀 라이프) 카페에 바로 가입했다. 그 카페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 과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오히려 1,000개 비우기 챌린지를 이어나가는 이들, 넓은 집에 살다가 비운 후에 작은 집으로 이사한 이야기, 아나바다의 꿀조언 등이 넘쳐났다. 그들의 간소한 삶을 보면서 내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삶의 방향은 ‘무엇을 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비울까?’로 전환되었다. 우선 1년을 기준으로 쓰지 않고 방치됐던 가구, 집기류, 옷가지, 책 등을 처분했다. 당시 여기저기 쌓아뒀던 잔짐 절반을 거뜬하게 비웠다. 이상하게 비우면 비울수록 내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지고, 마치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다가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책을 사서 보기보다 도서관에 자주 다니면서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수십 권의 책을 독파했다. 하나같이 웬만한 성공 신화 못지않았다. 내가 읽은 내용 모두를 따라 해 볼 수는 없었지만, 당시 읽었던 책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게 만드는 큰 자양분이 되었다.
10년 전부터 내 작업실이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비우고, 또 비우는 가운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안방에 내 책상을 들인 이후, 내 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무리하게 대출해서 넓은 집으로 이사하겠단 욕심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 책상 얘기를 하니까 불현듯 내 책상이 들어오기 전에, 처음으로 집안에 빈 벽이 드러나고 쾌재를 불렀던 때가 떠오른다. 어떻게 빈 벽을 만들었냐고? 원래는 이웃집에서 피아노를 버린다길래 언젠가는 칠 것 같아 데리고 왔던 피아노가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그 피아노는 쓸데없는 짐들의 수납장으로 전락하고, 먼지만 쌓였다. 그 피아노가 우리집 밖으로 나가는 날, 망가지고 낡은 것들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남기고 채우자고 다짐했다.
기적을 보듯이 빈 벽을 경험한 이후, 비움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 매일매일 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내가 쓰는 건데 설마 버린 건 아니지?”
“엄마, 내 장난감 어디에 있어? 버렸어?”
나는 졸지에 가족들에게 도둑년이 되었다. 내 잘못이었다. 가족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버린 죗값은 컸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안에 뭔가를 찾다가 없으면 나부터 의심받을 정도니까. 당시 내 눈에 쓸모없어 보이면 죄다 버렸다. 바닥에 물건 두는 게 몹시 거슬려서 대부분 공중 부양을 하거나 처분하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오해했던 부분이 있었다. 무조건 다 버려야 하는 거라 착각했었다. 하지만 미라 카페나 책을 통한 수련 과정에서 서서히 깨달았다. 미니멀 라이프는 많이 버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남기는 게 중요했다.
“꾸마야, 이거 쓰는 거야? 안 쓰면 버릴게!"
많이 비우긴 해도, 여전히 아이 방에 들어가면 지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잡다한 것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내겐 필요 없어 보여도, 아이에겐 필요할 수 있겠다 싶어, 종이 쪼가리, 비닐 하나도 아이에게 버릴지 말지를 꼭 물어본다. 남편의 너저분한 책상과 옷장 역시 마음대로 치우고 싶지만 멈춘다. ‘내 영역이 아니야. 내버려 두자.’라고 수없이 되뇌며 어지러운 마음을 스스로 진정시킨다.
미니멀 라이프는 완벽하게 비워진 결과 자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기준으로 내게 필요하고 설레는 것들만 남기는 과정이 중요하다. 미라 카페에서 봤던 집처럼 물건이 너무 없어서 탄성을 자아낼 집을 만들고 싶단 욕심을 비운다. 강박적으로 뭔가를 버리는 데 집착하는 마음까지도 내려놓는다.
자주 쓰는 거라면 굳이 수납장에 감추지 않고 보이는 곳에 둔다, 새로운 것 하나가 들어오면 꼭 하나 이상은 버린다, 치약 하나도 끝까지 다 써야 새 치약을 꺼낸다, 어디에 둘 지를 정확하게 정하고 뭔가를 산다... 등등 소소한 나만의 규칙을 정하고 실천한 덕분일까. 나는 매일 작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얻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