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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Feb 26. 2021

그 아저씨가 될수 있었던 이유

넷플릭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 리뷰.


그 아저씨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나의 아저씨"를 보고...     


 당신의 삶은 무슨 색인가? 화려한 조명을 받는 노란색? 시원하게 뻥뚤린 파란색? 매력적이고 열정이 가득한 빨간색?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의외로 무채색의 시간이 굉장히 많다. 색조가 없이 그저 검은색과 흰색 사이에 있는 무언가 회색조를 띄는 색. 개인적으로 삼십 대의 중반을 넘어가며 내 삶을 온갖 다양한 색조의 색으로 여기는 시간을 지나 조금은 밋밋하지만 주위에 감도는 무채색도 그리 나쁘지 않게 보고 있다. 그런데 무채색의 삶을 넘어서 짙은 콘크리트 색으로 뒤덮여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의 시기가 찾아왔다. 


주변에 변한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이 오래된 콘크리트 골조 건물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우울함이 뒤덮고 있었다. 그토록 즐겁게 읽던 책도, 글쓰기도 모두 멈춰버렸다. 그저 눈을 뜨고 무언가 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차에 기나긴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리즈를 마치고 잠깐 서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검색창에 검색해버렸다. 




식상하게. “넷플릭스 추천.”




 “나의 아저씨”가 나왔다. 이어서 “나의 아저씨 해외 반응” 이렇게 이어서 클릭했다.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반응들 무표정으로 읽어갔다. 그러면서 메마른 콘크리트 골조 건물에서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도 나의 아저씨를 찾고 싶었을까? 넷플릭스를 켰다.     



 드라마는 무채색이었다.


 우울한 내 마음을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색상은 나오질 않았고, 좀처럼 이야기들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1화를 보면서 내가 계속 봐야 하겠다 했던 장면이 있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주인공 지안(아이유). 마트에서 할머니를 위해 샀던 홍시. 가격을 보고 아무 표정 없이 했던 대사. “홍시 뺄게요.” 그리고 또 또 다른 주인공인 동훈(이선균)이 그 모습을 보고 홍시를 몰래 사서 주려고 하는 그 모습. 나에게도 그런 아저씨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 생각 하나로 버티면서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회차가 거듭해갈수록 무채색으로 끝날 것 같던 그들의 삶에 색이 덧입혀졌고, 무엇보다 회복되는 두 인물의 시간 속에 나도 덩달아 굳어져 있던 콘크리트의 골조 건물에 온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주인공 동훈에게 가슴 시리도록 답답하며, 코끝이 시큰하도록 처절한 상황들이 다가온다. 그것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안도 마찬가지. 삶을 어떻게 서든 영위해 나가려는 지안의 처절한 노력 속에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바로 좋은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되고 내게 꿈을 묻는 사람이 적어졌다. 그것은 아마도 나 같은 아저씨의 꿈이 궁금하지 않거나, 꿈꿀 수 있는 나이가 지나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꿈이 뭐예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은 어른,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요. 



그런데 이 드라마의 동훈은 지안에게 좋은 어른이자, 좋은 친구가 되고 있었다. 즉 내 꿈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에게 가진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가족.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함께하는 삼 형제와 홀어머니는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그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그에게는 가족이 우선이다. 자신의 굴욕적인 상황도 가족에게 알려서는 안 되고, 자신이 무너져도 가족이 무너지는 걸 볼 수 없다. 그러나 가족만 있었다면 그는 금세 무너졌을 것이다. 그에게는 두 번째로 친구들이 있었다. 나이와 남녀를 넘어선 공동체. 그들을 통해 아마 동훈은 친구를 만드는 법과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리라. 그래서 그 친구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고, 또 함께한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으로 동훈은 버틸 줄 안다. 한숨을 꾸역꾸역 내쉬며, 혹이나 죽지 않을까? 하는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버틴다. 아내를 버리지 않고, 지안을 버리지 않고,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좋은 어른이다. 그래서 그는 좋은 친구다. 그가 아저씨이고, 무채색이고, 심심하고, 밋밋해도 좋다. 그의 모습은 콘크리트로 이뤄진 골조 건물에 색을 입혀주고, 온기를 불어넣어주었고, 주위에 나와 비슷한 건물들을 찾게 해 줬다. 나도 그가 가진 것을 갖고 싶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의 아저씨”가 되고 싶다. 



그렇게 좋은 친구와 좋은 어른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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