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뗀뽀 걸스> 리뷰 -
거제도. 내가 사는 부산에서 한 시간반. 2015년 처음 방문한 거제는 식당마다 사람이 가득하고 활기 가득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의 오토바이 행렬이 끝나지 않게 쏟아지던 곳이었다.
“거제의 거지들은 천 원짜리를 안 받는다.
거제의 개들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라고 할 정도로 지역 경제에 활력이 넘치던 그 시절. 요즘 출산율 높다는 세종보다 더 출산율이 높았던 그런 도시 거제. 그러나 급작스레 찾아온 조선업의 위기. 거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직·간접으로 조선업에 기대어 살아가던 그들에게 조선업의 몰락은 곧 거제시의 인구 절감으로 드러났다. 한 때 30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이미 5만 명 넘게 줄었고, 집값은 반 토막 난 지 오래고, 끊임없이 지어지던 아팥트는 미분양 사태가 속출되었다.
이런 거제의 어려움이 한참 시작되던 2016년 무렵. 블랙홀 같이 빨아들이는 조선업의 몰락 속에 노동자들의 아픔을 렌즈에 담으려 했던 KBS 이승문 PD. 연일 계속되는 어려움에 다른 직장을 구하고, 잘 다니던 회사에서 예상치 쫓겨난 사람들. 그들의 힘듬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건 바로 자녀들이었다. 특히 취업의 전선에서 가장 큰 타격을 경험하고 있는 거제 여자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PD는 취업의 불안함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댄스 스포츠 동아리 일명 ‘땐뽀반’을 만나게 되었다.
다수의 학생들이 불안함에 무기력해 있거나, 벌써부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모습들이 속에서 한 선생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취업에 어려워하는 상황에서도, 시험기간을 앞두고 있는 시간에도, 변함없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그런 상황 속에 평소에 지각하고, 학교에 잘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뗀뽀반’을 통해 학교에 적응해 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다 지쳐 무기력한 아이들이 ‘뗀뽀반’에서 만큼은 춤 선을 위한 힘을 내고, 손동작에 각이 생긴다.
때로 밤늦게 연습이 끝난 뒤 집에 가는 아이들에게 교통비를 쥐어주고, 전날 늦게까지 술을 먹고 온 아이에게 숙취해소제를 내미는 선생님. 영화는 이 선생님을 과장하지도, 또 축소시키지도 않게 보여준다. 때로 사려 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에게도 너무 들이밀지도, 또 애매하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이규호 선생님의 모습은 굉장히 신선하다. 아이들을 향해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끊임없는 지지로 아이들을 대한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들은 선생님이 깔아놓은 사랑 가득한 무대에서 꿈과 미래, 비전과 목표는 내려놓고, 춤이 가져다주는 힘과 즐거움에 매료되어, 땀을 흘리고, 집중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제자들과 친해지려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하나 된 모습이 녹아져 있음을 느꼈다.
영화의 한 대목 중에 후배 교사가 이규호 선생님에게 물었다.
“승진은 이제 생각은 아예 접으신 거예요?”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우리가 승진하려고 선생 아는 건 아니다.아이가.
맞제?
아들 가르칠라고 하는 거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담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규호 선생님의 가르침과 사랑은 한동안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했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가장 큰 배움들은 늘 삶으로 가르쳐주신 분들로 인해 형성되었다.
나도 그분들 처럼, 이규호 선생님처럼.
삶으로 가르치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